“일한 만큼 주실거죠”…공공기관 ‘철밥통’ 깨는 밀레니얼

뉴스1

입력 2020-01-14 10:40 수정 2020-01-14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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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차에 따라 급여가 자동 상승하는 연공서열식 ‘호봉제’ 대신 업무의 난이도에 따라 급여를 차등 지급하는 ‘직무급제’를 도입하는 공공기관들이 하나둘씩 늘고 있다.

최근 무역·투자 진흥 업무를 맡고 있는 공기업 코트라(KOTRA)가 올해부터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직무급제를 시행한다고 밝혀 주목받고 있다. 이미 석유관리원, 새만금개발공사, 산림복지진흥원 등 공공기관들이 호봉제 대신 직무급제를 택했다.

올해 10여개 공공기관들이 추가로 직무급제를 도입할 움직임이 포착됐고, 정부 관료 조직도 직무급제 도입을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한 바 있어 제도 확산에 어느 정도 가속도가 붙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일한 만큼의 합리적인 보상과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의 가치를 선호하는 젊은 세대들이 늘면서 철옹성으로 보이던 호봉제도 이들의 외면 속에 서서히 권세를 잃어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직무급제, 박근혜 정부 성과연봉제와 달라

코트라는 최근 노사 협의를 거쳐 60여년간 이어온 호봉제 대신 직무급제를 중심으로 한 보수·직무체계 합리화 방안을 의결했다고 14일 밝혔다.

국내외 많은 조직과 잦은 인력 교류, 다양한 업무의 특성을 감안해 역할 중심의 보수체계인 직무급제를 널리 적용한다는 것이 제도 변화의 핵심 내용이다.

직무급제는 일의 중요도와 난이도, 업무 책임 정도에 따라 급여를 차등 지급하는 제도를 말한다. 직무의 상대적 가치를 분석·평가해 직무를 세분하고 상위 직무를 수행하는 직원에게 더 많은 보상을 준다.

코트라의 경우 직원들이 수행하는 업무의 난이도, 중요성, 책임 범위 등을 기준으로 4개 등급(기획예산, 사업담당, 실무추진, 조직적응)으로 나눴다.

기본급(75%)은 현행 40호봉 체계에서 직무급 16단계로 대폭 축소하고 담당업무에 따라 임금에 차등을 두도록 했고, 성과급(25%)은 직무 성과나 역할 등에 따라 차등폭을 조정해 간부는 최대 2배, 직원은 1.1~1.3배 차이가 난다.

직무급제는 지난 박근혜 정부 때 추진했던 공공기관 ‘성과연봉제’와는 다르다.

성과연봉제는 매해 직원을 상대로 성과평가를 해 연봉이 차등 지급된다. 공정한 평가를 기반으로 운영이 된다면 성과 창출에 대한 충분한 동기부여 효과를 낼 수 있지만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

특히 경영진의 입맛에 맞는 평가로 사내 줄 세우기가 만연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당시 노동계가 성과연봉제 도입을 반대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반면 직무급제는 객관적인 직무의 중요도·고난도에 따라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기 때문에 체계적인 직무 관리나 조직 운영이 가능하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도 부합한다. 문재인 정부가 성과연봉제의 새로운 대안으로 직무급제 도입을 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은 13일 ‘직무중심 인사관리 따라잡기’ 설명자료를 제작·배포하면서 “임금의 지나친 연공성을 줄여 격차를 완화하고 일의 가치와 능력에 기반을 둔 공정한 임금체계가 확산될 수 있도록 노사가 함께 노력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호봉제 싫어”…밀레니얼세대 의식 변화 한몫

이러한 변화는 이른바 밀레니얼·X세대(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자)를 중심으로 호봉제 같은 낡은 임금 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의식 변화가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코트라가 직무급제 도입을 위한 직원 투표를 실시한 결과 투표 참여자 398명 중 315명(79%)이 찬성을 했다.

코트라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투표가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젊은층들이 참여도가 높다보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며 “아무래도 합리성을 중시 여기는 젊은 세대들의 호봉제에 대한 인식이 좋지는 않기 때문이다”고 짚었다.

국내 최초 전자상거래 ‘옥션’ 창업자로 유명한 이금룡 코글로 닷컴 회장은 “젊은 직원들이 압도적으로 직무급제도에 찬성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며 “대부분 해외근무 경험 등으로 개방적이고 사명감이 높은 이들이 조직이나 국가에 호봉제가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고 평가했다.

정부로서도 호봉제에 따라 동일한 임금을 수령하면서 벌어지는 일부 직원들의 ‘무임승차’ 등 부작용을 없앨 수 있고 공공기관 혁신 방향에도 부합해 직무급제 도입을 적극 독려하는 분위기다.

인사혁신처는 지난해 공무원 호봉제 보수체계를 직무(직책)급으로 바꾸는 내용을 골자로 한 연구용역을 외부 전문기관에 의뢰한 바 있고, 현재 실행 전략 및 로드맵을 마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산하 공공기관 사이에선 올해 10여개 업체가 추가로 직무급제를 도입할 것으로 전망되며 이미 40여개 기관이 직무급제 도입의 첫 단계인 직무평가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한국전력공사, 한국철도공사(코레일) 등 대형 공기업 노조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아 도입 결정까지는 험로가 예상된다.

공공노조 한 관계자는 “직무급제 도입은 (박근혜 정부 때 추진한)성과연봉제 확대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라며 “오히려 더 갈등을 심화할 여지가 높다”라고 주장했다.

(세종=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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