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 배상 수용 땐 분쟁 줄이을 텐데…” 몸 사리는 은행들

이건혁 기자 , 장윤정 기자 , 김형민 기자

입력 2020-01-07 03:00 수정 2020-01-0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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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여부 검토할 시간 더 달라” 금감원에 요청해 20일 시간 벌어
배임 논란 가능성에 신중한 행보
“한 곳이 수용하면 따라갈 수도”… 다른 은행 동태 살피며 결정 미뤄
손배 시효 지나 강제이행은 불가능


파생금융상품 키코(KIKO)에 가입했다가 손해를 본 기업 4곳에 대한 은행의 배상 여부가 이달 말에 판가름 난다. 배상 권고를 받은 은행들이 분쟁조정안 검토 기한을 연장해 달라고 요청했고 금감원이 이를 받아들일 방침이다. 은행들이 배상 권고안을 수용할 경우 다른 기업들도 추가로 분쟁조정에 나설 것으로 보여 파장이 커질 수 있다.

6일 금감원에 따르면 금융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로부터 키코 불완전 판매에 따른 손해 배상 권고를 받은 6개 은행 모두 구두 또는 서면으로 검토 기한을 20일 더 연장해 달라고 요청했다. 금감원은 지난해 12월 20일 은행들에 분조위 권고안을 통보하며 8일까지 권고안에 대한 수용 여부를 결정하라고 전달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연말 연초 바쁜 일정을 고려해 내부 검토를 할 시간을 더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분조위 권고안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이전에 키코에 가입했다가 피해를 본 4개 수출기업에 판매 은행들이 손실액의 15∼41%를 배상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키코 판매 과정에서 환율 상승 예측치를 뺀 자료를 제공하는 등 불완전판매 정황이 있다고 본 것이다.

은행별로는 신한은행 150억 원, 우리은행 42억 원, KDB산업은행 28억 원 등 총 255억 원이다. 배상을 위한 마지막 수단인 이번 조정안이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은행은 물론 기업도 수용해야 한다. 현재까지 수용 의사를 밝힌 기업은 한 곳뿐이다.

권고안을 받아든 은행들은 일단 기한 연장을 요청했지만 결론을 내리기까지 적잖은 고민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은행은 6일에야 사외이사들과의 간담회가 이루어졌고 신한은행은 내부 법률 검토를 마무리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국계인 씨티은행도 본사와의 의견 조율이 마무리되지 않았다.

은행들은 권고안을 수용했을 경우 적잖은 후폭풍이 불 것을 우려하고 있다. 권고를 받아들이면 4개 기업 외에도 150여 개에 이르는 기업들이 추가로 분쟁조정에 나설 수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이번 분조위 배상비율을 적용하면 은행권의 배상 총액은 2000억 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미 키코에 대한 손해배상 시효가 지나 은행들에 대한 강제이행은 불가능한 만큼 수용을 결정할 유인이 적고, 배임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어 은행들은 신중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은행 6곳의 ‘눈치 싸움’도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도 단번에 배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며 “한 곳이 수용 의사를 밝히면 마지못해 따라가는 모양새를 취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먼저 움직이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파생결합펀드(DLF) 판매로 금감원의 제재를 앞두고 있는 우리은행, 하나은행 등은 권고안을 수용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금감원은 은행들의 기한 연장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권고안 수용을 기대하고 있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지난해 12월 송년 간담회에서 “키코 배상에 대해 은행들이 대승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고객과의 신뢰 형성을 통해 금융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라며 은행들의 수용을 간접적으로 촉구하기도 했다.

이건혁 gun@donga.com·장윤정·김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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