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장기’로 항암제 부작용 줄인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입력 2020-01-06 03:00 수정 2020-01-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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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의학분야 ‘인공장기’ 활용 활발

지난달 26일 서울 관악구 인터파크홀딩스 바이오융합연구소에서 만난 오가노이드 전문가 구본경 오스트리아 분자생명공학연구소 교수는 “오가노이드는 환자 개인별 약효를 시험하는 정밀의학과 미래 재생의학에 폭넓게 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동그라미 안 사진은 구 교수팀이 만든 소장 오가노이드. 인터파크·구본경 교수 제공
2020년 쥐의 해를 맞아 대표적인 실험동물인 쥐가 주목받고 있다. 쥐는 인간과 생김새가 완전히 다르지만 유전자의 99%가 같아 인류의 질병을 극복하는 연구에 자주 이용된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2018년 국내에서 실험동물로 사용된 쥐는 313만 마리에 이른다. 국내에서 이뤄지는 동물실험의 84%에 해당한다. 쥐 연구는 그동안 인류 건강과 복지 향상을 위한 불가피한 희생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 실험동물의 희생을 줄이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으면서 과학계는 대안을 찾고 있다.

구본경 오스트리아 분자생명공학연구소(IMBA) 교수는 가장 확실한 대안인 ‘오가노이드’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로 꼽힌다. 오가노이드는 사람이나 동물 세포를 배양해 만든 일종의 ‘미니 인공장기’다. 구 교수는 오가노이드 연구에 속도를 내고 있는 인터파크홀딩스 바이오융합연구소에 지난해 12월 자문교수로 합류했다.


○ 약효 검증, 정밀의학 실현할 확실한 도구


오가노이드는 뼈대라고 할 수 있는 ‘세포 외 지지체’에 세포 50∼500개로 이뤄진 조직 조각을 넣어 만든다. 인체의 다양한 조직으로 분화하는 줄기세포를 지지체에 넣어 키우기도 한다. 미니 장기는 실제 장기보다 작고 단순하지만 동물실험보다 신약 반응과 효과, 부작용을 시험하는 데 정확도가 높다. 최근에는 환자에게서 추출한 줄기세포나 조직을 이용해 맞춤형 미니 장기를 만들기도 한다. 구 교수는 “항암제나 표적항암제는 많아야 70∼80%의 환자에게만 효과가 있고 나머지 20∼30%는 돈과 시간을 낭비하고 암만 키울 우려가 있다”며 “환자 개인에게서 추출해 키운 오가노이드를 이용해 약효를 시험하면 시행착오를 줄이고 치료 효율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구 교수는 포스텍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은 정통 생쥐유전학자다. 네덜란드 휘브레흐트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며 새 기술에 눈을 떴다. 휘브레흐트연구소는 세계 최초로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한 오가노이드를 개발해 주목을 받았다. 구 교수는 2013년 낭포성섬유증 환자의 성체줄기세포로 만든 오가노이드를 유전자 교정기술인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치료한 연구를 주도하며 눈길을 끌었다.

구 교수는 오가노이드가 최근 정밀의학 분야에서 각광받는 인공지능(AI)이나 유전체(게놈) 분석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최근 정밀의학에서는 광범위한 약 반응 데이터를 수집한 뒤 AI를 이용해 특정 환자에게 약이 맞는지 추측하거나, 개인 유전체를 해독해 약효를 예측하는 연구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유전자를 샅샅이 알고 있어도 사람 몸에서는 유전자 특성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AI가 약에 반응할 유전자를 알고 있어도 실제 이 유전자가 몸에서 작동하는지는 알 수 없다. 반면 오가노이드는 환자에게서 떼어낸 세포로 만든 장기여서 실제 약효가 얼마나 있는지 직접 확인이 가능하다. 구 교수는 “오가노이드는 약효가 안 나타나는 사람에게 약을 쓰지 않도록 제외하는 ‘네거티브 실렉션’에 강하다”며 “최근 효과가 더 있는 치료수단을 예측하는 능력도 뛰어나다는 사실이 밝혀진 만큼 정밀의학을 실현할 강력한 후보”라고 강조했다.


○ 암 조직검사와 미니 장기 제작 한 번에

구 교수는 머지않아 병원에서 암 조직검사를 하면 조직 분석과 DNA 해독, 오가노이드 배양을 함께 진행하는 시대가 열릴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과 영국, 네덜란드에서는 이미 병원과 과학자들이 협력해 환자의 시료를 받아 오가노이드를 만드는 단계에 들어섰다. 네덜란드왕립과학원과 위트레흐트대 의대가 설립한 휘브레흐트 오가노이드 테크놀로지(HUB)는 낭포성섬유증 환자의 오가노이드로 약효를 시험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장세진 서울아산병원 교수팀이 지난해 10월 환자별 폐암 조직을 이용해 개인 특성을 살린 오가노이드를 처음으로 만들어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공개했다. 인터파크홀딩스 바이오융합연구소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과 공동으로 폐암과 위암 환자에게 동의를 받고 시료를 가져와 연구 및 사업화 목적의 오가노이드를 만들고 있다. 올해까지 150∼200개의 시료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 부작용 없는 대체 장기 나온다

구 교수는 오가노이드가 재생의학에서도 전망이 밝다고 말했다. 지금은 척수손상 환자나 마비 환자의 줄기세포를 이용해 손상된 세포를 회복시키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인체 모든 조직을 만들 수 있는 배아줄기세포나 역분화줄기세포(iPSc), 몇 가지 조직으로 분화하는 중간엽줄기세포가 중점 연구 대상이다. 하지만 배아줄기세포는 배아(수정란)를 사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윤리적인 논쟁이 있고 역분화줄기세포는 치료 단계에 근접했지만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사용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중간엽줄기세포는 적용 범위가 극히 제한적이다.

반면 성인의 특정 장기나 조직의 성체줄기세포를 빼내 만든 오가노이드는 이런 문제가 없다. 구 교수는 “간이나 소장, 장에서 상피세포를 떼어내 오가노이드로 키운 다음 다시 넣기만 하면 손상된 장기를 대체할 수 있다”며 “위험 물질이나 유전자를 넣을 필요가 없어 다른 방법보다 안전하다”고 말했다. 이미 쥐에게서는 성공했고 사람에게 적용하기 위한 막바지 연구가 한창이다. 오가노이드의 뼈대로 쓰는 지지체를 암세포에서 가져온 탓에 사람에 직접 사용하지 못하던 문제도 최근 암세포를 쓰지 않은 지지체가 개발되면서 해결됐다. 구 교수는 “2029년쯤에는 오가노이드를 활용한 재생의학이 결실을 맺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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