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프로그램, 전문의가 건강 관리… “실버 삶이 즐거워요”

유재영 기자

입력 2019-12-28 03:00 수정 2019-12-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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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타운 첫 ‘공정위 소비자중심경영 인증’ 노블레스타워

서울 성북구 종암동 ‘노블레스타워’. 실버타운(노인복지주택)인 이곳에는 모든 엘리베이터에 의자 2개가 놓여 있다. 고령 입주자들이 편히 앉을 수 있게 놓아둔 것이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보이스피싱 대응법이 적힌 벽보가 붙어 있다.

백마씨앤엘㈜이 2008년 준공한 노블레스타워 곳곳에는 이처럼 사소한 것부터 작은 배려가 엿보인다. 백마씨앤엘은 12일 실버타운 업계에서는 최초로 공정거래위원회가 인증하는 소비자중심경영(CCM) 인증을 받았다. CCM 인증은 기업의 주된 활동을 소비자 중심으로 구성하면서 관련 경영을 지속적으로 개선하는지를 한국소비자원이 평가하고 공정위가 인증하는 국가공인 제도다.


○ 자식들에게 먼저 소개하는 황혼 독립 공간

“대부분 먼저 자식들에게 적극 이곳을 소개하고 입주를 하셨어요.”

서상수 백마씨앤엘 신사업개발팀 과장은 실버타운을 찾는 트렌드가 예전과는 크게 달라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고령 입주자들이 노인 주거시설로 분류되는 실버타운 입주를 먼저 결정해 자식들에게 알린다는 것. 운영사 입장에선 입주자들의 편의, 건강관리, 여가 수준을 계속 업그레이드, 리모델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서 과장은 “입주자들의 가족이나 자녀들에게도 입주 전에 타워에 와서 모든 서비스를 미리 체험해 보라고 권한다”며 “경험해 본 후에는 상당히 만족스러워한다”고 말했다.

300여 명이 사는 239가구는 걸리거나 미끄러져서 다치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문지방을 없애고 욕조에도 안전봉을 설치했다. 거실과 화장실 벽에는 긴급 호출 버튼이 붙어 있다. 계절별 맞춤 식단이 짜인 식당과 골프연습장, 피트니스센터, 탁구장, 당구장, 수영장, 찜질방, 온천사우나 등 없는 게 없다. 시설마다 전문가들이 배치돼 있다. 전원형 폭포와 연못도 있고, 건물 밖에 있는 둘레길을 걸을 수도 있다. 본관 1층에 자리한 병원은 내과 전문의와 간호사를 상주시키고 ‘노블레스타워 부속의원’으로 명칭을 붙여 입주자들이 믿음을 갖고 방문하도록 했다. 인근 경희의료원과 고려대 안암병원과도 협력 관계를 맺고 전문 치료와 회복에 신경을 쓰고 있다. 최근에는 수면제 및 안정제 사용 빈도가 높은 고령 입주자들의 낙상 사고 위험 대비 차원에서 관리 직원들의 감독과 홍보 횟수를 늘렸다.


○ “우리는 잘 놀고 있다”

‘아들, 딸들아. 행복하게만 잘 살아주렴. 엄마, 아빠는 걱정하지 마라. 우리는 잘 놀고 있다.’

타워 곳곳에서는 한문희 백마씨앤엘 대표(61)가 직접 입주자들의 마음을 대변해 쓴 시나 글을 여럿 볼 수 있다. 그중 본관 한쪽에 붙은 글의 마지막 문구, 자식들에게 전한 솔직한 당부가 매우 인상적이다. 1993년 백마건설을 설립한 한 대표는 2011년 고려대 대학원(지리학)에서 ‘고령화에 따른 실버타운의 개발과 발전 방안’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실버타운 박사 1호’로 불린다.

한국형 실버타운을 정착시키는 게 꿈인 그는 실제 입주자들이 여전히 건강한 사회 일원으로 사는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부대시설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해 내놓고 있다. 부모를 이곳에 실제 모셔보고 얻은 노하우를 밑천 삼아 나이가 들어 입주해도 재미나게 살 만한 프로그램 인프라를 계속 발굴하고 싶다고 했다. 입주자 송송자 씨(75)는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서비스가 너무 많아 사는 재미가 난다. 삶의 질과 만족도가 높아졌다. 다른 입주자들을 보면서 앞으로의 내 삶도 설계하게 됐다”고 치켜세웠다.

주간 프로그램 계획 안내표를 보니 상당히 알차다. 주별로 안내하는 프로그램에 각각 확실한 목표가 수식어로 달려 있다. 요가 수업인데 ‘폼 나는 실버 요가’다. 탁구 교실인데 ‘탁구 달인’을 목표로 내밀었다. 월∼금요일 매일 아침 하는 아침체조와 걷기 운동과는 별도로 운동 프로그램은 요추부 안정화와 어깨 부위 운동, 고령체조 등 부위별로 집중했다. 얼마 전엔 한 대표의 아이디어로 입주자들이 충남 공주 단풍 나들이, 순천·여수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다. 2020년에는 해외여행도 계획 중이다.

식당은 시끌벅적했다. 간호사들이 식당 내를 돌아다니며 입주자들에게 안부를 묻고 대화를 나눴다. 대화를 통해 현재 건강 상태나 원하는 여가 활동 등에 대한 정보가 모아지고 서비스나 프로그램 등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식사를 거르거나 식당에 나오지 않은 입주자들은 기록했다가 바로 가구를 방문해 어떤 일이 있는지 확인한다.

지역 주민이나 젊은 세대들과의 소통 기회도 잦다. 타워 수영장은 인근 고려대와 국민대 학생들이나 지역 어린이 수영반 학생들에게도 개방해서인지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입주자들과 어울린다. 타워의 프로그램에도 대학의 사회복지학 전공 학생들이 수시로 참관해 격 없는 대화를 나눈다. 입주자 신순자 씨(85)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소통 기회가 많아지니 스스로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다”며 뿌듯해했다.


○ 더 나이 많은 입주자의 건강관리 비법도 배운다

40년간 은행원으로 근무하다가 은퇴한 뒤 이곳에 입주한 김상호 씨(72)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취미 생활이라곤 전혀 없었다. 그러던 그가 이곳에 와서 가곡 교실 프로그램에 푹 빠졌다. 그는 실버타운의 큰 장점으로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입주자들을 보고 각성할 수 있다는 것을 꼽았다. 김 씨는 “장수하는 어르신들의 생활, 건강관리 패턴과 마음가짐을 배울 수 있어서 좋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지하철까지 빠르게 걸어가시는 분들을 보면 ‘나도 아직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도전의식이 생긴다”고 했다.

‘노블레스타워’ 입주자 300여 명 중 약 70명이 90대 이상. 김 씨의 말대로 이들의 존재감이 60∼80대 입주자에겐 인생 후반부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또 다른 동기 부여가 되고도 있다. 한 대표는 “직원들이 늘 입주자 자녀와 인터넷 및 ‘입주자 소식 SMS 서비스’로 소통하고 있고 명절에 초대도 한다”며 “자신들도 부모 연세가 될 때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를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가족과 함께하는 도심형 실버타운이 고령화 시대에 던진 가장 큰 기대 효과가 아닐까 하는 것이 그의 분석. 노년의 ‘보금자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실버타운의 한 모습이다.

백마씨앤엘은 실버타운과 요양원 입주 경계에 있는 노년층을 위한 ‘1인 타운’을 세울 부지를 추가로 확보했고 2020년 착공을 앞두고 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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