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목동 전세 호가 1억넘게 껑충… 물건도 없어 이사 포기

김호경 기자 , 정순구 기자

입력 2019-12-27 03:00 수정 2019-12-27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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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6 부동산대책 후폭풍



“씨가 말랐어요.”

26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대표 단지인 ‘도곡렉슬’ 인근 한 공인중개업소 사장은 전세 물량이 얼마나 있는지 문의하자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도곡렉슬은 대치동 학원가 및 유명 고교들과 인접해 있어 강남구에서도 교육 여건이 우수한 단지로 꼽힌다. 새 학기 이사철을 앞두고 전세 수요가 몰린 반면에 매물이 없다 보니 전세금이 급등했다. 이달 중순 8억 원대 중후반에서 거래됐던 도곡렉슬 전용면적 59m² 전세 매물 호가는 현재 10억 원을 넘었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기존 세입자들도 재계약을 서두르다 보니 집주인이 나가는 경우가 아니면 매물이 안 나온다. 인근 다른 단지 사정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서울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2단지’ 전용면적 65m² 전세 매물은 지난달 4억 원대 중반에 거래됐지만 현재 4억 원대 매물은 자취를 감췄고 호가는 5억1000만 원까지 뛰었다.

중학교에 입학하는 아들 때문에 전세를 찾다가 포기한 회사원 이모 씨(43)는 “몇 달 사이에 봐뒀던 강남 아파트 전세금이 2억 원이나 올랐다. 정부가 정시 확대 등으로 강남으로 이사 가라고 부추기며 집값, 전세금 모두 올려놓은 것 같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12월 넷째 주 서울 아파트 전세금은 일주일 전에 비해 0.23% 상승했다. 한 달 내내 전세금이 하락한 지난해 12월과는 대조적이다. ‘12·16대책’ 직후 전세금이 급상승한 셈이다. 송파(0.35%) 서초(0.32%) 강동구(0.20%) 등 강남권은 물론이고 마포(0.19%) 서대문구(0.16%) 등 강북 지역도 지난주보다 상승 폭이 더 커졌다.

전세금 상승 원인으로는 실수요자들이 주택 구입을 포기하고 전세를 택할 수밖에 없게 된 점이 꼽힌다. 12·16대책으로 시가 15억 원 초과 주택에 대한 대출이 막혔고, 9억 원 초과 주택의 경우 대출 가능 금액이 줄어 매매가 어려워졌다. 낮은 금리도 전세금 상승 폭을 키운 원인으로 지목된다.

자율형사립고·특목고 일괄 폐지와 정시 비중 확대를 골자로 한 대입 제도 개편안이 발표되자 미리 좋은 학군과 학원가가 있는 동네로 전입하려는 전세 수요도 늘었다. 지난달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돼 ‘로또 분양’이 가능해지면서 실수요자 상당수가 전세를 더 살면서 청약을 노리는 대기 수요로 전환된 영향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10월 초 5억6000만 원에 거래됐던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면적 84m² 전세금은 이달 23일 6억6000만 원으로 1억 원이 올랐다. 송파구 잠실동 ‘잠실엘스’ 역시 같은 면적 전세금이 2개월 사이 1억5000만 원 올랐다.

국토교통부는 이날 “최근 전세가 상승세는 전세 9억 원을 초과하는 일부 고가 아파트의 영향이 크다”며 “중저가 주택의 전세가는 안정적”이라고 해명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이번 주 전세보증금 9억 원 초과 아파트는 전주 대비 1.27% 올랐고, 6억 원 초과∼9억 원 이하는 0.67%, 3억 원 초과 6억 원 이하 아파트는 0.19% 올랐다.

국토부의 중저가대 전세금은 안정적이라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전세 6억 원 이하 아파트의 전세금 상승률 0.19%는 지난주 서울 전세금 상승률 0.18%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문제는 전세금이 계속 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정부는 12·16대책에서 양도소득세를 깎아주는 ‘장기보유특별공제’ 요건에 실거주 의무를 신설했다. 집주인들이 기존 세입자를 내보내고 실거주하는 경우가 늘어나면 전세 공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상승세가 지속되면 전월세 가격을 잡기 위한 추가 대책이 나올 가능성도 점쳐진다. 전월세 실거래 신고제,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이 대표적이다. 두 제도 모두 당정협의나 법 개정안 제출을 통해 국회 논의가 시작된 상황이다. 하지만 이런 제도들도 도입 초기에는 오히려 전월세 가격을 높이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계약 기간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 집주인이 전월세 가격을 미리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내년 1∼3월 본격적인 이사철이 되면 학군 이전 수요와 주택 구입 대기 수요가 겹쳐 전세금이 계속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김호경 kimhk@donga.com·정순구·유원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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