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출산시대, 성평등에서 길을 찾다

박진경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사무처장

입력 2019-12-19 03:00 수정 2019-12-20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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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저출산 문제 해결하려면

박진경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사무처장
세계 최연소 정부 수반인 34세의 핀란드 여성 총리가 연일 화제다. 산나 마린 핀란드 신임 총리는 장관 19명 중 12명을 여성으로 임명했다. 대표적인 성평등 복지국가인 핀란드의 이 같은 소식에 대한민국의 ‘82년생 김지영들’이 겹쳐 가슴이 먹먹해진다.

핀란드뿐 아니라 유럽 대부분 국가의 여성 고용률과 출산율은 상대적으로 높다. 경제활동과 육아의 갈림길에서 많은 여성이 결혼이나 출산을 포기해야 하는 우리 상황과는 거리가 있다. 유럽의 여성 경제활동과 출산율은 과거 반비례 관계였으나 어느 시점부터 동반 상승하는 정비례 관계로 바뀌었다. 그 배경에는 성평등 사회 환경과 다양한 제도적 지원이 있다.

한국의 여성 고용률은 50.9%에 불과하고 합계출산율은 세계 최저인 0.98을 기록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성별 임금격차 꼴찌로 대표되는 성차별적 노동 환경과 불안정한 고용은 여성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게 하는 주된 원인이다.

5일 인구보건복지협회가 발표한 20대 청년세대의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결혼할 의향이 없다’는 의견이 47.3%나 됐다. 결혼을 꺼리는 이유로 여성은 ‘양성 불평등문화가 싫어서’를 1순위로 꼽았다. 남성의 경우 ‘혼자 사는 것이 행복하다’는 응답이 제일 많았다. 성차별적 사회구조에 대한 불만이 결혼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났다고 해석할 수 있다. 청년 남성에게는 가부장적 질서 속의 생계부양자 역할에 대한 부담감이, 청년 여성에게는 성차별적 노동시장이나 ‘독박 육아’로 대표되는 돌봄에 대한 부담감이 결혼 기피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백약이 무효인 듯한 출산율 저조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유럽 국가처럼 성평등 관점을 바탕으로 한 저출산 대응 정책으로 전면 전환할 필요가 있다. 성차별적 노동시장을 개선해 여성에게는 노동의 권리를, 남성에게는 돌봄의 ‘권리’를 보장해줘야 한다. 남녀가 노동과 돌봄의 책임 및 권리를 공유할 때 비로소 결혼 출산 양육을 삶의 즐거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성평등 구현이 비단 저출산 문제 해결에만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4월 발표된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성평등 사회가 되면 2025년까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9% 성장한다. 저성장의 그늘에서 이보다 더 좋은 성장동력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뒤늦게나마 정부는 국가 주도의 출산장려 정책에서 벗어나 성평등 사회 구현을 통해 개인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저출산 정책을 전면 수정했다. 이제 2021년 시행될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에 이런 방향의 정책을 구체적으로 담아야 할 것이다.

박진경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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