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미래지향적 노사문화 만들겠다”…무노조 원칙 폐기 선언

뉴스1

입력 2019-12-18 17:04 수정 2019-12-18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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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1월 25일 오후 부산 힐튼호텔에서 열린 2019 한·아세안 특별 정상회의 환영 만찬에서 영상을 보고 있다. (2019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제공)

삼성이 ‘비노조 경영’ 원칙 폐기를 선언했다.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 노동조합 와해공작 혐의로 구속된 지 하루 만에 나온 반응이다.

지난해 삼성전자서비스의 협력사 직원 8000여명을 직접고용하며 “합법적 노조활동을 보장한다”고 발표한 이후 노사문제와 관련해 삼성이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간 삼성은 노조활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만큼 임직원들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주겠다는 이른바 ‘비노조 원칙’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2020년부터 삼성의 노사문화에 큰 변화가 생길 것으로 전망된다. ‘상생’을 새로운 삼성의 핵심가치로 강조한 이재용 부회장이 또 한번 거대한 쇄신의 칼을 빼 든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은 18일 “노사문제로 인해 많은 분들께 실망을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밝혔다. 전날 이 의장이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이후 회사의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며 고개를 숙인 것이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임직원 존중의 정신을 바탕으로 미래지향적이고 건강한 노사문화를 정립하겠다”고 덧붙였다. 노조와해 같은 사회적 문제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재발 방지도 약속했다.

전날 창사 이래 이사회 의장이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은 삼성이 노사문제와 관련해 공식입장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관련 재판의 1심 결과가 나온 것이며 최종 법리 판단은 진행중인 사안이지만 “국민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다”면서 그간의 노사문화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특히 삼성은 ‘사회의 기대’에도 부응하지 못했다고 했는데, 이는 최근 달라진 기업 문화와 ‘노동 존중’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인정하고 이를 통해 달라진 전향적 노사관계를 정립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날 삼성의 노사문화 관련 언급은 지난달 양대노총인 한국노총 산하에 삼성전자 노조가 설립된 이후의 첫 사측 입장이기도 하다. 삼성SDI, 삼성생명, 삼성증권, 에스원, 에버랜드 등 다른 계열사에도 노조가 설립돼 있다.

그간 삼성의 비노조 경영원칙은 임직원에 대한 고임금과 복지 같은 처우 문제와 별개로 ‘비민주적’이란 비판을 받아왔다. 삼성은 임직원의 권리와 복리 증진을 위한 선제적인 조치라고 항변했지만 노동계와 사회 각계에선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던 이유다.

일각에선 삼성의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선대회장이 “내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 노조는 허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는 일화가 나돌 정도로 삼성이 비노조 원칙을 고수해왔다는 주장이 있지만, 실제 이같은 발언을 던진 이는 다른 기업의 총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2012년엔 삼성이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기재돼 있던 ‘노조를 조직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이란 비노조 정책 표현을 “근로자 대표를 경영 파트너로 인식한다”는 내용으로 바꾸기도 했다.

중대 변화가 생긴 시점은 지난해 4월이다. 이 부회장이 국정농단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된 지 두달여 만에 삼성전자의 자회사인 삼성전자서비스가 협력사 소속 수리기사 8000여명을 정규직으로 직접고용하겠다고 발표하면서다. 그러면서 삼성은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와 함께 협의해 “합법적 노조활동을 허용한다”고 했다.

이는 반도체 백혈병 사태 사과 및 보상발표와 더불어 이 부회장의 석방 이후 삼성이 발표한 대표적 경영 쇄신안으로 꼽힌다. 당시 재계에서도 8000여명에 달하는 협력사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대거 채용하고 그룹의 경영방식과 노사문화에 큰 변화가 예상될 만한 ‘노조 활동 허용’ 방침이 총수의 결단없이는 불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아울러 건전한 노사문화 정립은 올해 삼성전자가 창립 50주년을 맞이하며 이 부회장이 강조한 ‘상생’이란 새로운 사회적 가치와도 부합한다는 차원에서 앞으로 달라질 삼성의 모습에도 재계와 노동계의 많은 관심이 쏠릴 것으로 예상된다. 당시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전체 임직원에게 보낸 영상 메시지를 통해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세계 최고를 향한 길”이라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당부한 바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삼성의 이날 발표는 노조탄압이란 문제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선언”이라며 “노조 문제가 제기된 삼성전자, 물산 등 일부 계열사가 아니라 그룹 전체로 노사관계가 바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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