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큐패스’로 즐기는 한겨울 온천 여행

동아일보

입력 2019-12-19 03:00 수정 2019-12-19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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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스키 하쿠수이칸 로텐부로에서 볼 수 있는 해맞이 모습.
2004년 한일정상회담장으로 이용됐던 초대형 온천료칸 ‘이부스키 하쿠수이칸’.
기요히메온천 안의 객실에 부속된 로텐부로.
료칸 유모토안(기요히메온천)의 상차림.

최근 여행 트렌드라면 단연 ‘느림’이다. 주마간산(走馬看山) 경치 구경(Sightseeing)에서 탈피가 그것인데 ‘거시(巨視)관광’에서 ‘미시(微視)여행’으로의 변화다. 그런데 이거야말로 국민 모두가 여행 9단의 경지에 오른 덕분. 전 국민 여행 자유화 조치(1989년 1월 1일) 30년의 결과다.

이런 국민 여행 태도의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게 있다. 산큐(SunQ)패스의 판매량 급증이다. 이건 일본 규슈 버스패스로 7년 전 4000장에 불과했던 게 2017년에는 23만 장을 기록했다. 이 패스만 있으면 규슈 7개 현을 거미줄처럼 이어주는 공용버스와 고속버스(총 46개사)를 일정 기간(2∼4일) 마음껏 탄다. 일부 페리는 물론 간몬 해협(규슈 최북단과 혼슈 최남단 사이)을 오가는 보트, 그 건너 시모노세키(혼슈 최남단) 까지도 통용된다. 비싼 일본의 공공 교통요금을 감안하면 이거야말로 일본 여행길에 ‘천하무적’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산큐패스의 막강함, 장거리 이동에서 더욱 빛난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최남단 가고시마(鹿兒島)현으로 떠났다. 이곳은 북위 31도. 서울(37도 33분)보다 한참이나 남쪽이다. 그런데 어느 정도냐, 가로수가 팜트리(Palm tree·야자수)다. 그래서 남국 정취가 물씬 풍긴다. 사쓰마(薩摩)반도의 동중국해변은 하와이를 연상시킬 정도다. 그런 만큼 이 겨울에 산큐패스로 가고시마를 찾음은 옳고도 당연한 결정. 기온은 10도 내외. 날씨는 온화하고 바람은 싱그러우며 햇살은 따사롭다. 1월엔 유채꽃도 만발. 주변이 온통 바다고 산중엔 울창한 숲. 이 겨울에도 녹음 짙으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아니고 ‘동래불사동(冬來不似冬)’.

그런 가고시마에는 특별한 게 있다. 고구마소주와 구로부타(흑돼지) 샤부샤부다. 이 음식을 맛보며 곳곳에 숨겨진 온천 명탕을 찾는 여행으로 안내한다.

호수를 정원 삼은 호젓한 료칸 미도리소(후키아게온천).
미도리소의 객실 내부.

■ 시마즈 가문 발상지 히오키(日置)

가고시마현은 두 반도로 이뤄졌다. 동쪽의 오스미(大隅), 서쪽의 사쓰마. 그 사이 바다가 긴코(錦江)만이다. 가끔 분화하는 사쿠라지마(櫻島)는 가고시마시와 마주한 긴코만의 섬(페리 15분 소요). 가고시마는 ‘사쓰마’라고도 불리는데 1872년 폐번치현(에도 시대 다이묘의 속지 번을 없애고 대신 지방조직을 현 체제로 개편한 조치) 이전 이곳이 사쓰마번(藩)이어서다. 에도 시대엔 전국에서 두 번째로 부강한 영지였다. 가고시마 시내의 ‘센간엔(仙巖園· 1658년 조성한 영주의 별장 정원)’은 그런 사쓰마번 영주 시마즈(島津)가의 저력을 웅변하는 기념물이다.

사쓰마반도 중부의 히오키는 그런 시마즈가의 본산. 오우라(大浦)항으로 통하는 산중 시로야마(城山)에 철벽 요새를 짓고 류큐(오키나와의 옛 지명)섬과 교역하며 힘을 키웠다. 그리고 휴가국(日向國·미야자키현 남부)과 오스미국(大隅國·오스미반도)을 제압하고 가고시마 내성(가고시마시)으로 나와 새 시대(1550년)를 열었다. 그 주인공은 가문의 15대 당주 시마즈 다카히사. 그 한 해 전 말라카(말레이반도)에서 온 예수회 프란치스코 자비에르 신부에게 일본 최초로 천주교 포교를 허락한 개혁 다이묘(大名·영주)다. 하지만 그는 규슈 정벌에 나선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무릎을 꿇고 삭발항복을 당했다. 이어 17대 당주 시마즈 요시히로는 임진, 정유 두 왜란에 참전해 충무공 이순신이 전사한 노량해전을 지휘했다. 거기서 그는 조명 연합군에 대패했지만 왜군의 퇴로를 열어 줘 막부의 칭찬을 받았다.


■ 후키아게(吹上)온천-료칸 미도리소(莊)

적막감이 들 정도로 고요한 산중 울창한 숲의 호반에 자리 잡은 히오키의 명탕. 들리나니 새들의 노랫소리뿐. 호반의 숲가 로텐부로에 몸을 담그니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된 일치감에 엔도르핀이 분수처럼 치솟는다. 일본 전국에 이렇듯 온전히 나를 자연과 동화로 이끌 온천탕을 찾기란 쉽지 않을 듯. 그런데 여기엔 특별한 사연이 있다.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5년 4월, 오키나와 전투를 지원하던 미 군함을 향해 출격시킨 인근 지란(知覽) 육군항공대 소속 가미카제 특공 조종사들이 출격 전 여기서 생애 마지막 휴식을 취한 사실이다. 당시 일본 대본영은 이들이 여기서 묵으며 부모에게 작별편지를 쓰게 했다. 료칸엔 그 영령을 위로하는 관음당이 조성돼 있다.

▶ 가고시마현 히오키시 후키아게초 유노우라 910.
가고시마공항에서 공항연결버스(리무진) 탑승,
히가시혼마치(히오키) 하차(60분 소요).

■ 시로야마 호텔

시로야마는 가고시마 시내의 해발 107m 높이 산. 정면(남쪽)으로 사쿠라지마와 더불어 시가지가 한눈에 조망된다. 그래서 전망대가 마련돼 있다. 호텔은 바로 그 자리에 있다. 그래서 가고시마 최고의 전망 호텔로 이름났다. 이 호텔 로텐부로에 몸을 담그면 사쿠라지마가 정면으로 보이고 산정 화구에서 치솟는 연기도 편안히 볼 수 있다. 예약 시 남향 오션뷰인지 확인한다. 시로야마란 이름은 시미즈 가문이 가고시마 내성으로 나올 때 히오키 요새의 성채에서 가져온 것이다.

▶ 가고시마 시티뷰버스 탑승, 시로야마 하차.


■ 스나무시(砂烝) 명소 이부스키(指宿) 명탕

이부스키는 사쓰마 반도의 남동단 해안도시. 이곳 지형은 기이하다. 서귀포 산방산 같은 거대 육체(陸體) 가이몬다케(開聞岳·해발 924m)가 반도 끄트머리에 불쑥 치솟은 형국인데 기이하다는 표현은 산체 둘레가 이웃한 이케다(池田)호와 얼추 비슷하단 점에서다. 호수가 가이몬다케를 뽑아내는 바람에 생겨난 듯 보여서다. 이 산은 ‘일본 100 명산’에도 들었다.

스나무시는 글자 그대로 ‘모래찜질’인데 여러 곳에 있지만 이부스키만은 특별하다고 한다. 단순 모래가 아니라 화산쇄설물(검은빛)이라서다. 그 효능은 가고시마 의과대학 실험(1985년) 결과로 입증됐다. 모래찜질 15분 후 심장이 내보내는 혈액량이 크게 증가하는 등 혈액순환, 신경통, 관절염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부스키시가 모래찜질회관 ‘사라쿠’를 직영(1995년 개시)하게 된 것도 이런 효과가 확인된 덕분.


■ ‘본토 최남단의 온천 료칸’ 하쿠수이칸(白水館)

일본 전국에서 이만한 규모(205실)의 온천 료칸도, 이렇듯 아름다운 바다 풍광을 지닌 곳도 없을 듯하다. 잔디 정원에 서면 긴코만이 거침없이 시야에 들어오고 옆에선 팜트리 잎사귀가 바람에 살랑댄다. 전 객실 오션뷰(Ocean view·바다 조망)고 400석 영화관 규모 온천욕장 ‘겐로쿠(元祿)’의 천장은 4층 높이다.

로텐부로엔 염수탕과 지붕 덮은 평상이 있는데 신새벽 거기선 긴코만 바다의 해돋이를 정면으로 감상할 수 있다. 로텐부로 온천욕의 의학적 효과는 그 규모가 크면 클수록 크다. 그런 면에서 하쿠수이칸에서의 온천욕은 최고 호사다.

이 온천욕장에선 스나무시도 즐긴다. 대욕장 옆 천연모래 찜질장에서다. 찜질 후 묻은 모래는 샤워로 씻어내고 곧장 온천욕장행. 찜질시간은 15분. 욕장에서 내주는 유카타(浴衣)를 입은 채로 바닥에 누우면 직원이 나무 삽으로 모래를 퍼 전신에 덮어준다.

하쿠수이칸은 2004년 한일 정상회담 장소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제주도와 여길 오가며 회담을 가졌다. 고이즈미는 이곳 사쓰마 출신이다. 일본의 한 조사에서 하쿠수이칸은 ‘다시 찾고 싶은 온천’ 331개 중 7위를 마크.

▶ 가고시마공항에서 공항연결버스로 JR이부스키역 하차(1시간 35분 소요). 호텔까지는 택시 이동.

■ 시미즈 가문의 온천 ‘도노사마유(殿樣湯)’

시내에서 좀 떨어진 니시카타(西方)의 한적한 들녘. 허름한 공동 온천욕탕이 보인다. 그 옆 공터에는 비석이 서 있고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다. 시마즈가 별장 터라고. 1831년에 시마즈 가문 27대 당주(사쓰마번 다이묘)가 조성한 온천탕인데 그들은 가고시마성에서 배를 타고 건너왔다. 지금은 당시 로텐부로 흔적으로 남았을 뿐 공터. 건물이 있던 자리에 공동탕이 들어서 영업 중이다.

▶ 수온 52도. 입욕료 350엔. 금요일 쉼. JR이부스키역
에서 버스(가고시마행)로 6번째 정류장 니가쓰덴(二月田)에서 하차. 니가쓰덴역에서 도보 7분. 금요일 쉼.


■ 기요히메(淸姬)온천의 료칸 유모토안(湯本庵)

1000년 전 한 스님에 의해 발견된 뒤 여태 42도의 온천수가 샘솟는 명탕. 여기선 찬물도 섞지 않고 필터로 거르지도 않은 용출 상태 그대로 공급한다. 알칼리성 수질에 나트륨이 함유돼 미백 보습 효과가 뛰어난데 온몸의 온열 효과가 오래 지속되는 게 특징. 메이지유신 지사인 사이고 다카모리와 사카모토 료마 등도 다녀간 명소. 유모토안은 옛 료칸 자리에 1년 전 다시 지은 료칸(객실 9개)이다.

▶ 가고시마현 기리시마시 하야토초.
가고시마주오역에서 고쿠부역으로 간 뒤 거기서 가고시마 공항연결버스로 히나타야마쇼마에서 하차. 도보 2분.

자료제공: 산큐패스운영위원회 니시테쓰그룹(지원석)


▼ 산큐패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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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처: 디스커버리큐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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