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Special Report]“자신감-동기 심어주니, 선수들 스스로 열정 불살라”

김성모 기자

입력 2019-12-11 03:00 수정 2019-12-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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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0 월드컵축구 준우승 이끈 정정용 서울 이랜드 FC 감독 ‘삼촌 리더십’

최근 경기 파주 축구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정정용 전 U-20 축구대표팀 감독이자신의 리더십 철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승하 포토그래퍼
드라마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야 극적이다. 이들 또한 그랬다. 바로 한국 20세 이하(U-20) 축구 대표팀이다. 올해 초만 해도 해외에선 U-20 한국 축구 대표팀을 약체로 꼽았다. 이강인(스페인 발렌시아)이라는 유망주가 있었지만 나머지 선수들은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대진표가 나오고 나서는 국내에서마저 “축구는 모른다”는 소리가 쏙 들어갔다. 우승 후보로 손꼽히는 아르헨티나, 포르투갈,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한 조를 이루는 등 ‘죽음의 조’에 속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대표팀은 올해 5월 폴란드에서 열린 U-20 월드컵에서 준우승이라는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이뤄냈다. 이번 U-20 선수들은 1999∼2001년 출생한 ‘Z세대’로 구성돼 있었다. 이 세대는 성실하고 미래지향적이지만 권위주의에 반발하고 공정성, 정의 등의 가치를 중시한다. 권위적이고 상명하복 문화가 강한 스포츠계 문화와 상충되는 면이 있다. 이 때문에 대회가 끝나고 정정용 U-20 축구대표팀 감독(현 서울 이랜드 FC 감독)의 ‘수평적 리더십’에 폭발적인 관심이 쏠렸다. 그는 어떻게 Z세대 선수들을 이끌고 성과를 냈을까. 동아비즈니스리뷰(DBR) 12월 1일자(286호)에 실린 정정용 전 U-20 축구대표팀 감독의 인터뷰를 요약 정리했다.


―대부분의 리더가 자신은 수평적이라고 생각하는데 남들은 그렇게 생각해주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다. 수평적 리더십은 왜 어려운가.


“강압과 지시는 쉽지만 ‘이해’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해는 소통과 공감에서 비롯되는데 소통하려면 힘들지 않나, 그러니 쉽게 포기해버리는 거다. 처음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중학교에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화장실에서 우연히 ‘선생님이 하는 말을 절반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아이들끼리 하는 말을 들은 것이다. 최대한 친절하고 자세하게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충격을 받아서 화장실에서 30분 넘게 앉아 있었다. 그다음부터 더 많이 소통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반만 이해하고 넘어갔을 때 학습 효과가 얼마나 떨어졌겠나.”


―어린 선수들을 데리고 수평적 리더십을 한다는 것이 굉장히 어려울 것 같다.


“프로 선수도 그렇지만 어린 선수들은 감독을 더 어려워한다. 그래서 ‘삼촌’으로 콘셉트를 잡았다. 형은 어떻게 보면 무서울 것 같고, 아버지도 엄한 이미지다. 삼촌은 오라고 하면 ‘가기 싫다’고도 할 수 있고, 용돈 준다고 하면 또 오기도 하고. 그런 이미지가 좋을 것 같았다. 최대한 편하게 하고, 그 대신 자발적인 책임감을 강조했다. 어디까지 풀어주고, 어느 선에서는 막을 것인지를 선수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합의가 이뤄진다. 상호 간에 신뢰가 생기는 거다. 그 안에서 스스로 책임감이 생기는데 자율은 보이지 않는 힘을 발산한다.”


―어린 선수들한테는 자신감 부여나 동기부여를 잘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정 감독이 선수들에게 전술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축구협회 제공
“엄청 중요하다. 대회 전 자신감을 심어주는 데 중점을 뒀다. 지난해 프랑스 툴롱컵에 참가해 우리보다 두세 살 위 선수들과 붙었다. 그러고 나서 같은 또래의 선수들과 경기하니 선수들이 ‘해볼 만하다’고 하더라. 자신감은 한 단계씩 성장하고 성숙하면서 발전하는 것이다. 리더의 목표 설정도 중요하다. 월드컵 때 ‘팀이 7경기(3·4위전 또는 결승까지 치렀을 때)를 뛰는 것이 목표’라고 선언했다. 굉장히 큰 목표였다. 집에 오니까 아내가 ‘빨리 축구 공부 더 하라’고 닦달했다. 수평적 리더십은 이런 공동의 지향점이 있어야 가능하다. 자신감을 심어주고, 동기부여를 계속해 주면 아무리 선수들을 풀어줘도 열정을 다한다.”


―코치진(중간관리자)과의 역할은 어떻게 배분하나.


“우리에게 익숙해진 잉글랜드 축구에서는 감독을 ‘매니저’라고 한다. 모든 것을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코칭스태프뿐만 아니라 의무진, 선수까지 다 관리해야 한다. 구단주 등 윗분들도 관리해야 하고, 미디어도 관리해야 한다. 박지성이 뛰었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명장 퍼거슨도 감독을 ‘헤드코치’라 하지 않고 ‘매니저’라 불렀다. 감독은 매니징하는 것이지 위에서 거느리는 것이 아니다. 코치에게도 역할과 책임을 분배해주는 게 맞다. 월드컵 때도 세트피스 공격 상황에서 공격 코치는 공격을 책임지게 하고, 수비 위치는 골키퍼 코치가 책임졌다. 이들을 전문가로 인정해줘야 팀이 더 성장한다.”


―그렇다면 리더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최종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책임을 진다. 그게 리더의 역할이다. 어떤 선수가 못했다고 치자. 컨디션이 안 좋았던 것을 리더가 먼저 알았어야 하는 것 아닐까. 같은 선택이라도 결과가 좋으면 뛰어난 용병술이라고 칭찬받고, 좋지 않으면 욕먹는다. 감독은 조금 더 가능성이 높은 쪽으로 운영하고 책임지는 자리다. 회사에서도 그렇지 않을까. 직원이 실수하고 일을 제대로 못했으면 그 ‘선수’한테 일을 시킨 책임자에게 잘못이 없다고 할 수 있나.”


―정정용이 추구하는 ‘수평적 리더십’이 우리 사회에서도 가능할까.


“하루아침에 가능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고지식하고 딱딱하고 위계질서가 강한 체육계에서부터, 그것도 대표팀에서 조직 문화나 분위기가 바뀌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새 직장인 대상의 리더십 강연을 많이 한다. 막상 가면 곤혹스러운데 새롭고 재미있다. 경기 현장에서 막 부딪치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직장인들의 반응이 뜨거운 것 같다. 체육계가 바뀌면 사회에서도 변화가 더 빠르게 오지 않을까.”

김성모 기자 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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