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안 지는 재벌 ‘회장님’들…이사 등재 비율 5년째 감소

뉴시스

입력 2019-12-09 12:04 수정 2019-12-09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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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배구조 분석
총수 일가 이사 등재 비율은 5년째 내리막
미래에셋·삼천리·한화·DB, 등재 비율 '0%'
안건 원안 가결률 100% 육박…거수기 여전
기관, 안건 '반대'표 줄어…"추세 분석해야"



법적 책임을 지는 ‘등기 이사’ 명단에 총수 일가가 직접 이름을 올리는 경우가 최근 5년째 연이어 하락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벌 회장들이 책임 경영과 거리가 먼 행태를 보인다는 지적이다.

사외 이사 비중이 이사회의 절반을 넘는 등 표면적 지표는 긍정적이지만 이사회·위원회 안건 대부분은 원안 그대로 가결되고 있었다. 사외 이사가 여전히 ‘거수기’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인 셈이다.

의결권을 행사하는 기관 투자자는 점차 늘어나고 있지만 ‘반대’표를 던진 비율은 오히려 낮아졌다. 소액 주주의 권리를 보장하는 소수 주주권 활용도도 낮았다. 관련 제도의 실질적 운영이 미흡해 지배 구조를 개선할 여지가 크다는 평가다.

정창욱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정책과장은 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런 내용을 담은 ‘2019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배 구조 현황’을 공개했다.

공정위는 올해 지정한 59개 공시대상기업집단 중 새로 지정된 애경·다우키움과 동일인이 특별법에 의해 설립된 농협을 제외한 56곳의 소속 회사 1914개를 분석했다. 분석 기간은 지난 2018년 5월1일~2019년 5월15일이다.

◇등재 비율 5년째 내리막…한화·미래에셋 ‘0%’

이번 조사 대상 집단 56곳 중 총수가 있는 곳은 49곳이다. 공정위 분석 결과 이들의 상장·비상장 계열회사 1801개 중 총수 일가가 1명 이상 이사로 등재돼있는 회사는 321개뿐이었다. 전체의 17.8%다. 총수 본인이 이사로 등재된 회사는 133개로 전체의 7.4%에 그쳤다.

이 비율은 지난 2015년 이래로 최근 5년간 매년 하락하고 있다. 총수 일가가 이사로 등재한 회사 비율은 2015년 18.4%→2016년 17.8%→2017년 17.3%→2018년 15.8%→14.3%로, 총수 본인이 등재한 비율은 5.4%→5.2%→5.1%→5.4%→4.7%로 변화했다. 총수 일가 등재 비율은 15% 선이, 총수 본인 등재 비율은 5% 선이 올해 들어 처음 깨졌다.

특히 미래에셋·삼천리·한화·DB 4개 집단은 총수 일가 등재 비율이 0%다. 코오롱은 계열사 41개 중 1곳에만 총수 일가가 등재, 그 비율이 2.4%에 머물렀다. 전체 등기 이사 중 총수 일가 등재 비중은 LG가 0.7%(304명 중 2명)로 낮았다.

총수 본인이 이사로 등재돼있지 않은 집단은 19개다. 이중 네이버·대림·동국제강·미래에셋·신세계·이랜드·태광·효성·CJ·DB 등 10개는 총수 2·3세마저도 이사로 등재돼있지 않았다.

부영(79.2%)·KCC(78.6%)·셀트리온(70.0%)·SM(69.2%)·OCI(57.9%) 등은 총수 일가 등재 비율이 높았다.

총수 일가가 이사로 등재돼있는 경우는 대부분 주력 회사·지주사·사익 편취 규제 대상 회사·사각 지대 회사에 집중돼있다. 총수 일가 주력 회사 등재 비율은 41.7%로 전체 회사(17.8%)나 기타 회사(16.1%) 대비 큰 폭으로 높았다.

총수 일가 지주사 등재 비율 역시 84.6%로 지주사 체제가 아닌 일반 집단의 대표 회사(60.7%)나 전체 회사(19.7%) 대비 월등히 높았다.

◇‘거수기’ 역할 여전…안건 원안 가결률 높아

조사 대상 집단 56곳 중 상장 계열사가 없는 부영·중흥건설·한국GM을 제외한 53곳을 조사한 결과 전체 이사 중 810명(51.3%)이 사외 이사다. 법상 의무 선임 사외 이사 수(725명)보다 85명 많다.

사외 이사 수는 많지만 이사회 안건의 원안 가결률은 높다. 최근 1년간 이사회 안건 6722건 중 사외 이사 반대 등으로 통과되지 않은 것은 24건에 불과하다. 전체의 0.36%다.

이사회 안건 중 대규모 내부 거래 관련 안건은 755건(11.2%)이다. 이 안건은 부결 없이 755건 모두 원안대로 가결됐다. 사익 편취 규제 대상 상장사의 경우에도 이사회 안건 원안 가결률이 100%다.

계열사끼리 제품·서비스를 사주는 ‘집단 내 거래액’이 50억원 이상이면 대규모 내부 거래로 본다. 거래액이 50억원을 넘지 않더라도 소속 회사 자본금이나 자본 총계의 5%를 초과하면 공시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정 과장은 “대규모 내부 거래는 합리적 고려 등 과정이 없이 이뤄지는 일감 몰아주기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면서 “대규모 내부 거래 안건이 100% 원안대로 가결됐다는 점은 이와 관련한 의사 결정이 형식적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 이 부분은 관련 제도를 개선하거나 사후적으로라도 점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사회 내 추천위원회·감사위원회·보상위원회·내부거래위원회 등 위원회 설치 비율은 증가하는 추세다. 그러나 최근 1년간 4개 위원회에 상정된 안건 2051건 중 원안대로 통과되지 않은 안건은 겨우 12건이다.

이사회 내 위원회의 원안 가결률은 총수 있는 집단이 99.6%로 총수 없는 집단(97.0%)보다 2.6%포인트(p) 높다.

◇기관 ‘반대’ 비율 하락…소수 주주권 활용 미흡

최근 1년간 국내 기관 투자자는 53개 집단 235개 상장사의 주주 총회 안건 1670건에 의결권을 행사했다. 의결권이 행사된 국내 기관 투자자의 지분은 찬성 92.7%, 반대 7.3%다. 지난해 국내 기관 투자자의 반대 비율은 9.5%였다.

공정위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국내 기관 투자자의 의결권 행사가 점진적으로 활성화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반대 비율이 낮아진 점에 관해서는 아쉬움을 표했다. 정 과장은 “(국내 기관 투자자의 반대 비율이 낮아지는) 부분이 추세적인 현상으로 나타나는지 분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1년간 임시 총회 소집 청구권·주주 제안권·이사 해임 청구권·대표 소송 제기권·회계장부 열람 청구권 등은 모두 20차례 행사됐다.

집중 투표제를 통해 의결권이 행사된 사례는 없다. 서면 투표제에 의한 의결권 행사 비율은 전체 상장사 중 5.6%에, 전자 투표제는 28.8%에 머물렀다.

[세종=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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