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과 공존 꿈꾸던 ‘鐵의 나라’ 그 찬란한 500년

김기윤 기자

입력 2019-12-03 03:00 수정 2019-12-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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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가야본성―칼과 현’전
새 유물 포함 28년만의 대규모 전시… 국내외 31개 기관서 2600여점 출품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겠다.”

‘구지가(龜旨歌)’를 따라 가야의 신화에서 역사 속으로 걸음을 내디디면 허황옥이 바다 건너 가져왔다는 ‘파사석탑’이 처음 관객을 맞이한다. 붉은 빛깔이 감도는 석탑의 암질은 한반도 남부에서 찾기 힘든 석영질 사암(砂巖). 이 돌들은 먼 타국에서 건국설화 같은 무수한 이야깃거리를 안고 가야 땅에 이르렀다. 해양문화, 다양성을 기반으로 공존과 화합을 꿈꾼 한반도의 은은한 ‘흑진주’, 가야인의 진짜 모습이 펼쳐진다.

국립중앙박물관(서울 용산구)은 3일부터 내년 3월 1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특별전 ‘가야본성―칼과 현’을 연다. 이번 특별전은 1991년 ‘신비한 고대왕국 가야’에 이어 28년 만에 가야를 주제로 개최한 전시다. 현 정부의 ‘가야사 문화권 조사·정비’ 추진과 맞물려 30여 년간 새롭게 발굴한 유적·유물을 소개한다. 아울러 비약적으로 늘어난 가야 연구를 토대로 가야사가 지니는 역사적 의의를 짚는 데 중점을 뒀다. 삼성미술관 리움, 국립경주박물관,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등 국내외 31개 기관이 문화재 2600여 점을 출품했다.

전시는 부제인 ‘칼과 현’이라는 가야의 두 가지 축을 충실히 구현한다. ‘칼과 현’은 각각 가야를 상징하는 ‘강성한 힘’과 가야금으로 대표되는 ‘조화’를 뜻한다. 영어 부제로 ‘Iron and Tune(철과 선율)’을 택해 가야의 강력한 철기 문화와 토기, 교역품을 통한 조화의 의미를 되새기는 데 방점을 뒀다. 네 곳으로 구성된 전시관의 소주제는 각각 공존, 화합, 힘, 번영이다.

여러 장의 긴 철판을 연결해 만든 종장판 갑옷과 투구들은 묵직한 존재감을 뽐낸다. 삼국시대 갑옷 중 가장 화려하다고 평가받는 판갑옷은 가야의 뛰어난 제련술을 여실히 보여준다. 경북 고령에서 출토됐다고 전해지는 금관(국보 138호), 말 탄 무사 모양 뿔잔(국보 275호)에 녹아있는 세련된 가공술은 ‘삼국에 비해 가야는 힘이 없었다’, ‘가야는 한 번도 빛나지 않았다’는 주장을 반박한다. 전시관에는 우리에게 친숙한 ‘가야’ 대신 역사성을 고려해 ‘가락국’ ‘가라국’이라는 명칭을 주로 사용했다.

공존과 조화의 의미는 주로 다양한 무덤, 고분군 출토품을 통해 드러난다.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배 모양 토기, 집 모양 토기를 비롯해 이웃 국가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다양한 양식의 토기들은 개방과 연맹체의 공존을 택한 가야인의 중심 가치를 보여준다. 가야 토기로 만든 높이 3.5m의 ‘가야토기탑’도 주요 볼거리다.

전시관의 조도를 낮춘 건 가야의 은은한 매력을 전하고자 한 국립중앙박물관의 고민이 담겼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2일 언론 공개회에서 “가야의 철, 토기 문화를 강조하기 위해 전시관 색조를 검은색에 가깝게 했다. 공존을 꿈꾸며 번영했던 가야의 가치를 다시 깨닫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3월 1일 전시를 마치면 부산박물관, 일본 지바현, 후쿠오카현 국립박물관에서 순회전을 개최하고 내후년 국립김해박물관에서 마지막 전시를 연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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