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차례 머리맞댄 ‘민-관협력 거버넌스’… 발전소 갈등해결 빛 봤다

강홍구 기자

입력 2019-12-03 03:00 수정 2019-12-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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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로 실마리 찾은 나주 고형연료 열병합발전소

2017년 12월 전남 나주시에 준공된 한국지역난방공사 나주 SRF(고형연료) 열병합발전소 전경. 주민 반대 등으로 2년 가까이 가동되지 않고 있지만 올 9월 민·관 협력 거버넌스가 기본합의서를 체결하면서 갈등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민·관 협력 거버넌스는 지역난방공사, 범대위, 산업부, 전남도, 나주시로 구성됐다. 세부사항은 별도의 부속합의서를 통해 정한다. 한국지역난방공사 제공
《엉킨 매듭의 실마리를 찾았다. 한국지역난방공사(이하 한난)는 2017년 12월 전남 나주시 산포면에 나주 SRF(Solid Refuse Fuel·고형연료) 열병합발전소를 완공했다. 그러나 이 발전소는 준공 2년이 지나도록 정상 가동되지 않고 있다. SRF 연료 사용에 따른 환경오염물질 배출과 악취 발생을 우려한 지역 주민들의 반대에 부닥치면서 사업 개시 허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업자인 한난과 지역 주민들의 주장이 평행선을 그리면서 문제 해결의 길도 한동안 요원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이런 교착 상태가 변화할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당사자인 한난과 지역 주민 외에 중재자인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 관련 지방자치단체(전남도, 나주시)까지 포함한 ‘민·관 협력 거버넌스’가 구성되면서 논의가 진전되기 시작했다. 지역 주민들은 ‘나주열병합발전소 쓰레기연료 사용 반대 범시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를 구성해 한난과 대립해 왔다.

민·관 협력 거버넌스는 올 14차까지 이어진 회의 끝에 올 9월 △시민참여형 환경영향조사 △주민수용성 조사 △난방 방식을 액화천연가스(LNG)로 변경 시 한난의 손실보전 방안 마련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기본합의서를 이끌어냈다. 또 향후 1년 안에 세부사항을 담은 별도의 부속합의서에 합의하기로 뜻을 모았다. 여전히 가야 할 길은 남았지만 의미 있는 진전이다.


○ 준공 앞두고 나온 지역 주민 반대 목소리


나주 SRF 열병합발전소의 시작은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7년 당시 정부, 지자체, 공공기관의 폐기물에너지 활용 집단에너지사업 추진 요청에 따라 그해 12월 한난이 사업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집단에너지시설 환경영향평가 협의 등을 거쳐 2014년 5월 첫 삽을 떴다. 2017년 12월 준공되기까지 약 2800억 원이 투자됐다.

SRF는 생활폐기물, 폐합성수지·섬유, 폐고무 및 폐타이어 등 가연성 폐기물을 선별해 파쇄, 건조, 성형을 거쳐 제조한 고체연료를 말한다. 한난에 따르면 나주 SRF 열병합발전소에서는 하루 기준 444t의 SRF가 열과 전기에너지로 탈바꿈한다. 공동주택 1만8000가구에 공급할 것으로 전망된다. SRF는 광주지역에서 70%, 나주 순천 목포 등 전남지역에서 30%를 조달할 방침이다.

갈등이 시작된 건 발전소 준공을 앞두고 2017년 9월 시운전을 하면서다. 생활폐기물 등에서 나온 SRF를 연료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민원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다른 지역의 SRF를 가져오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이 나왔다. 앞서 발전소 인근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명회 등도 진행했지만 주민들의 마음을 온전히 달래진 못했다. 환경오염물질 배출과 악취 발생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범대위도 출범했다. 발전소 운영을 원천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주민 설득을 위한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총리실, 산업부, 환경부, 전남도, 나주시, 광주시, 한난 등이 모여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열었다. 쟁점별로 3개의 태스크포스(TF)를 꾸리기도 했다. 다른 갈등 해결 사례를 벤치마킹하기도 했지만 양측의 입장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 산업부 등 참여 ‘민·관 협력 거버넌스’ 대화 물꼬

본격적인 대화의 물꼬가 터진 것은 2018년 12월 ‘민·관 협력 거버넌스’가 구성되면서부터다. 지자체인 전남도가 앞장서 대화의 장을 마련하면서 주민들로 구성된 범대위가 거버넌스에 참여하게 됐다. 범대위도 대화 창구의 필요성을 느꼈다.

협상 테이블이 마련됐다. 국가 시책의 일환인 만큼 주무 부처인 산업부에서도 참여해 신뢰도를 높였다. 거버넌스는 산업부, 전남도, 나주시, 한난, 범대위 및 외부 전문가 16명으로 구성됐다. 올 1월 시작된 거버넌스 회의는 많게는 한 달에 두 차례까지 진행했다. 좌초 위기도 있었지만 모두 진정성을 갖고 테이블에 나섰다.

이들이 합의한 접점은 크게 세 가지. 첫째는 시민 참여형 환경영향조사. 애초 범대위는 시운전을 위한 가동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민·관 협력 거버넌스를 통해 준비 작업(2개월) 및 조사(30일)를 위해 한시적으로 발전소를 가동하기로 뜻을 모았다. 가동 기간 중 지역 주민이 요구하면 가동 및 조사에 대한 상황을 볼 수 있게끔 했다. 둘째, 주민수용성 조사. 주민 투표와 공론조사 비율 등에 대해 줄다리기가 이어졌지만 주민투표 70%, 공론조사 30%를 반영하기로 합의했다. 환경영향조사 결과를 활용해 SRF와 LNG 사용 방식 중 하나를 결정하기로 했다.


○ 정상화 향한 첫걸음에 큰 의미

난항을 겪었던 건 마지막인 손실보전 방안이었다. 주민수용성 조사 결과 난방 방식이 SRF가 아닌 LNG 방식으로 변경될 경우 그 손실을 어떻게 보전할지에 관한 것이다. 이 문제는 기관마다 입장이 첨예하게 갈렸다. 손실 규모도 크거니와 향후 다른 사업에 있어서도 선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서로 한 발씩 양보해 결국 주민수용성 조사 전까지 LNG로 변경될 경우에 대한 손실보전 방안 기본안을 만들기로 구성원이 합의했다. 민·관 협력 거버넌스에 참여한 5개 기관은 환경영향, 보건 등에 각각 외부 전문가를 추천하기로 했다.

‘큰 그림’에서 기본적인 합의를 이뤘다고 해도 아직은 갈 길이 멀다. 기본합의를 시행하기 위한 세부사항은 1년 안에 별도의 부속합의서를 통해 조율하기로 했다. 주민투표 방식, 손실의 부담 주체 등 아직도 결정해야 할 것들이 많다.

그럼에도 사태 정상화를 위한 첫걸음은 내디뎠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당장 지난달 26일 16차 회의에서도 환경영향조사를 내년 상반기 안에 마무리하기로 하는 등 진전된 합의가 이어졌다. 민·관 협력 거버넌스에 실무자로 참여한 백재승 한난 신성장사업처 신재생사업부 팀장은 “발전소 가동이냐 아니냐만 논의했다면 협의는 끝이 나지 않았을 것이다. 서로가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다양한 접점을 찾아낸 게 주효했다. 지금의 공감대를 앞으로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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