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직접고용명령 남발… 근로자가 거부하기도

유성열 기자 , 송혜미 기자

입력 2019-11-28 03:00 수정 2019-11-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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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회사가 하청직 지휘-감독땐 고용부, 시정명령… 불복땐 과태료
최근 3년간 1만6693명 고용명령, 이중 25%는 기업-근로자가 거부
최저임금 올라 임금격차 줄고 육아-취업준비 등 개인사정 다른탓
“사회갈등 줄이려면 조치 신중해야”


직원 20여 명이 근무하는 중소기업 A사는 올해 초 고용노동부의 불시 점검을 받았다. 고용부는 사내에서 일하는 하청 근로자 3명에 대해 직접고용을 하라고 명령했다. 원청인 A사가 하청근로자들을 사실상 지휘하고 감독하고 있기 때문에 ‘불법파견’이라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하청 근로자들이 직접고용을 거부했다. 20대 남성인 이들은 “한 달 간 잠시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뿐이다. 우린 공무원 시험을 봐야 한다”며 일을 그만뒀다. A사는 이 사실을 그대로 고용부에 보고했고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당사자들이 직접고용을 원하지 않으면 고용부 명령과 상관없이 직접고용 의무가 사라진다. A사 관계자는 “아르바이트생들까지 직접고용을 하라는 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 소송까지 불사하는 ‘직접고용 명령’

대기업인 B사의 지방공장도 올 초 고용부로부터 “하청근로자 24명을 직접고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B사는 직무에 따라 정규직이나 기간제로 채용하겠다고 밝혔지만 24명 전원이 직접고용을 거부했다. 최저임금(올해 시급 8350원)이 2년간 29.1% 급등하면서 하청업체의 임금과 B사의 임금 차이가 크지 않다보니 하청업체의 정규직으로 남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B사 관계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간극이 줄어들다보니 직접고용의 이점이 크지 않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2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김학용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고용부는 2017년 1월부터 올해 9월까지 1만6693명을 직접고용하라고 513개 기업에 명령했다. 하지만 이 가운데 74.8%에 해당하는 1만2480명만 실제 직접고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4213명은 회사가 고용부 명령에 불복해 소송을 벌이거나 해당 근로자가 직접고용을 거부한 것이었다.

기업이 고용부로부터 직접고용 명령을 받으면 해당 근로자를 정규직이나 계약직으로 고용해야 한다. 하청근로자들이 원청업체에 직접고용되면 처우가 개선되고 고용이 안정되지만 기업은 퇴직금 등 인건비가 급증하고 정리해고 같은 긴박한 경영상 대처가 어려워 부담이 커진다. 특히 직접고용을 거부한 사업장은 근로자 1인당 1000만 원의 과태료를 내야 하고 파견법 위반으로 기소되면 사업주가 형사처벌(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한국GM, 아사히글라스 등 일부 기업은 직접고용을 아예 거부하고 과태료까지 각오하며 정부와 소송을 벌이고 있다. 한국GM 측은 “고용부가 우리를 비정규직 우수사업장으로 선정해놓고, 갑자기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 “당사자들이 직접고용 거부”

특히 A사와 B사처럼 정작 해당 근로자들이 직접고용을 거부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본보 취재 결과 확인됐다. 유통회사인 C사도 올해 5명을 직접고용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당사자들이 거부했다. C사 관계자는 “고용부가 우리 업계에 정규직화하라고 하는 대표적인 직종은 특수고용직인데, 육아 등을 위해 정규직이 되는 것을 거부하는 분이 많다”며 “이런 분들에 대한 직접고용 명령은 현실과 잘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사측이 근로자에게 직접고용을 거부하라고 은밀히 강요하는 사례도 있기 때문에 명령을 내리기 전에 근로자 의사를 일일이 다 확인할 수는 없다”며 “정부는 규정대로 조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는 근로조건 개선, 양질의 일자리를 기치로 내걸고 (직접고용) 명령을 내리겠지만, 이런 조치로 얼마나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불필요한 갈등이나 사회적 비용이 많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가 신중히 조치를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유성열 ryu@donga.com·송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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