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비슷하다고 엉뚱한 종목 투자… ‘묻지마’ 테마주

이건혁 기자

입력 2019-11-26 03:00 수정 2019-11-26 11:4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커버스토리]



“뇌전증 신약 ‘엑스코프리’(성분명 세노바메이트)를 개발한 회사는 SK바이오랜드가 아니라 SK바이오팜 아닌가요?” “그런 거 따질 시간에도 주식은 계속 오르니 일단 사고 봅시다.”

SK그룹 자회사 SK바이오팜의 독자 개발 신약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공식 판매 허가를 받았다는 발표가 났던 22일. SK바이오팜과 사명(社名)이 비슷한 코스닥 상장사 SK바이오랜드의 주가가 가격제한폭(30%)까지 오르자 주식투자 관련 인터넷 카페에는 혼란스러워하는 투자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SK바이오랜드의 주가는 다음 거래일인 25일에도 투자자들의 ‘묻지마 투자’ 행진이 이어지며 2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 회사 이름 비슷하다고 엉뚱한 회사에 투자자 몰려

SK바이오팜은 SK바이오랜드와 이름만 비슷할 뿐 연관성이 거의 없는 회사다. 아직 증시에 상장되지 않은 SK바이오팜은 SK㈜가 지분 100%를 갖고 있는 제약사다. 반면 SK바이오랜드는 SKC가 지분 32.4%를 보유해 최대주주로 있는 화장품 재료 생산업체다.

SK그룹 관계자는 “SK바이오랜드는 뇌전증 신약과 어떤 관계도 없다. SK바이오랜드가 SK바이오팜의 신약 개발과 관련해 앞으로 협력할 가능성을 현 시점에서 예측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개인투자자들은 ‘SK’와 ‘바이오’라는 이름만 보고 SK바이오랜드 주식을 사들였다. 22일과 25일 이틀 동안 개인투자자들은 SK바이오랜드 주식을 약 63억 원어치 순매수했다. 반면 기관과 외국인은 각각 약 16억 원, 40억 원어치를 순매도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정확하지 않은 정보에 개미(개인투자자)들이 엉뚱한 종목에 몰리고, 주가가 오르니 또 몰려드는 전형적인 테마주 현상”이라고 말했다. 한국거래소는 SK바이오랜드 주가가 과도하게 오르자 26일 하루 동안 투자 경고종목으로 지정한다고 공시했다.


○ 넘쳐나는 테마주들에 결국 투자자 손해

기업 가치와 관련 없는 소식에 과잉 반응하는 개인투자자들의 테마주 투자 행태는 이뿐만이 아니다. 개인투자자 비중이 85% 안팎을 차지하는 코스닥시장에는 수많은 테마주가 넘쳐나고 있다.

대표적인 건 정치인 테마주다. ‘이낙연 테마주’, ‘황교안 테마주’ 등 차기 대선 출마가 거론되는 유력 정치인들의 지지율에 따라 주가가 오르내리는 종목이 적지 않다. 이 회사들은 대부분 회사 임직원이 특정 후보의 친인척 또는 학교 동문이라는 이유만으로 투자자들 사이에서 ‘테마주’로 분류되고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이 투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코스닥 상장사 WFM도 ‘조국 테마주’로 분류돼 개인투자자의 돈을 빨아들이기도 했다. 이 회사 주가는 ‘조국 사태’가 확산되며 크게 떨어졌고 현재는 거래정지 상태다.

국내에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병했을 때도 개인투자자들은 ‘ASF 테마주’ 목록을 만들어 공유했다. 이 목록에는 방역과 무관한 고려시멘트 같은 회사도 이름이 올라가 주가가 큰 폭으로 오르내리기도 했다.

특히 최근에는 개인 방송, 텔레그램이나 카카오톡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오픈 채팅방 등을 통해 투자 정보가 오가면서 개인투자자들의 테마주 쏠림 현상도 심해지고 있다. 본보 기자가 들어가 본 투자 관련 채팅방에는 “A사 ‘미중 무역협상 테마주’로 상승 예고” “B사 ‘방사능 테마주’로 신규 편입” 같은 글이 수시로 올라왔다.

전문가들은 테마주는 기업가치와 무관하게 주가가 움직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투자자들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개인투자자들은 단기 차익을 노리는 성향이 짙다 보니 주가 움직임이 큰 테마주로 쏠리는 모습을 보인다”며 “테마주로 잘못 분류된 기업들도 오해를 막기 위해 정보를 보다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