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Special Report]AI 프로젝트, 코딩전문가 아닌 기업관리자에 맡겨라

손진호 알고리즘랩스 대표 , 정리=조진서 기자

입력 2019-11-20 03:00 수정 2019-11-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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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업무 혁신’ 누가 주도해야 하나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온라인 서비스센터를 운영하고, 법조문이나 의료기록을 분석하고, 금융상품을 거래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첨단 기능을 도입하려면 고도의 공학적 지식이 필요한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AI는 소수의 전문가 집단만을 위한 분야가 아니다. 철학, 문학, 예술을 전공한 사람도 교육만 받으면 얼마든지 AI를 활용해 기업 활동을 혁신하고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법률회사에서 AI를 도입해 업무 혁신을 추진한다면 누가 그 프로젝트를 주도해야 할까. AI 전문가를 채용해서 지휘권을 맡길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법을 잘 아는 변호사 직원에게 AI를 교육해서 이 프로젝트를 이끌도록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라도 두 방법 중 후자가 더 바람직하다.

기업에서의 AI 도입을 위한 필수 역량은 컴퓨터 프로그래밍 능력이 아니라, 해당 산업과 직무에 대한 이해력이기 때문이다. 현업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의 인과관계를 인지하고 있어야 AI를 비즈니스에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

또 요즘은 정보기술 선도 기업들이 앞장서서 AI 기술의 대중화와 보편화를 이끌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애저(Azure) 머신러닝 스튜디오나 삼성SDS의 브라이틱스(Brightics) AI 등의 도구를 활용하면 코딩(프로그래밍)을 할 줄 모르는 기업 관리자들도 얼마든지 AI 프로젝트의 매니저가 될 수 있다. 즉, 기업이 굳이 AI 전문가를 채용하지 않고도 내부 직원 육성을 통해 AI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다.


○ AI 지식보다 중요한 건 산업 전문성


뉴질랜드의 한 낙농 기업에서 있었던 사례를 보자. 생우유를 가공해 가루우유를 생산하는 업체다. 이 회사는 생우유의 지방과 단백질 성분의 비율, 묽기, 공장의 내외부 온도 등을 입력하면 최종 생산되는 가루우유의 품질을 예측해주는 AI 프로그램을 구축하기로 했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가루우유 품질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세 곳의 공장에서 무려 6년 동안 수집해 두었던 데이터를 투입했다.

기대는 컸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AI 프로그램은 정확도가 심각하게 떨어져서 현업에서 활용할 수가 없었다. 외부에서 온 컴퓨터 전문가들만 있었다면 그 이유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다행히 이 회사 내부의 유제품 전문가들이 신속하게 개선안을 제시했다.

유제품 전문가들은 우선 세 곳의 공장마다 환경과 운영 상태가 각기 다른 것이 문제일 것이라고 봤다. 그래서 공장마다 AI 예측 모델을 독립적으로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또 같은 공장이라 하더라도 해마다 기후가 바뀌기 때문에 연도별 기후 데이터도 추가 변수로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 두 가지 제안 사항을 반영하자 예측 정확도가 평균 93% 이상으로 껑충 뛰었다. 회사의 실적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됐다. 만일 유제품 제조 경험이 없고 공장의 현실을 잘 모르는 컴퓨터 전문가들이 개선 작업을 주도했다면 어떤 데이터가 부족한지 알아채기 어려웠을 것이다. 시행착오 기간이 길어지고 비용도 훨씬 더 많이 들었을 것이다. 프로젝트가 좌초했을 수도 있다.

이 사례에서 보듯, 기업에서 AI를 도입할 때 대부분의 일은 해당 기업의 경영 관리자들이 주도할 수 있고, 또 주도해야 한다. 우리 회사의 어떤 비즈니스에 AI를 적용할 수 있을지, AI 도입으로 우리가 이루려 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AI 활용을 위해 어떤 데이터를 수집해야 하는지, 시범 모델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등을 판단하는 것은 모두 경영 관리자들의 몫이 되어야 한다. 이런 작업들이 모두 완료되고 나서 마지막으로 AI 상용화 모델을 구축할 때만 AI 전문가, 즉 엔지니어들이 지휘권을 잡는 것이 바람직하다.


○ 조직원 부담 적은 사업부터 단계적 도입해야


기업이 AI를 실무에 도입할 때 또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내부 반발 문제다. 처음에는 사내에서 여러 이견(異見)이 제기될 것이다. 심지어 AI에서 가장 앞서가는 구글에서도 최신 딥러닝(deep learning) 기술을 핵심 사업에 적용하는 것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직원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구글 경영진은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는 사업 분야인 음성인식에 AI를 먼저 도입했다고 한다. AI의 힘을 전 조직원이 큰 부담 없이 체감할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이다. 그런 다음에야 자사의 핵심 비즈니스인 광고, 지도 등의 분야로 AI 도입 프로젝트를 확장해갔다.

기업은 왜 AI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걸까? 현대 기업 간 경쟁에서 AI가 진짜 무서운 이유는 선순환 구조다. AI 기술은 경쟁사보다 나은 제품과 서비스의 출시를 가능케 하고, 이로 인해 더 많은 고객과 더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게 한다. 데이터가 많아지면 AI를 더욱 고도화시킬 수 있고 이는 다시 더 나은 제품과 서비스로 이어진다. 네트워크 시대에는 데이터를 얼마나 확보했느냐가 곧 시장 경쟁력이다.

손진호 알고리즘랩스 대표 sjhfam@algorithmlabs.co.kr

정리=조진서 기자 cj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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