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산업 ‘오류 제로’ 운동, GE의 식스시그마로 재탄생

김경훈 구글 서울사무소 전무 , 정리=고승연 기자

입력 2019-11-13 03:00 수정 2019-11-13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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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가 가르쳐준 혁신


인류는 자연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었다. 옷에 엉겨붙은 산우엉씨의 갈고리 모양을 본 스위스의 전기 기술자는 우리가 흔히 ‘찍찍이’라고 부르는 벨크로를 만들었고, 상어 비늘의 미세 돌기인 리블렛을 모방한 수영복 회사들은 마찰 저항이 적은 수영복을 제작했다. 하지만 그 어떤 자연보다도 인간의 가슴을 뛰게 하고, 또 창의적인 마음을 갖게 하는 존재는 밤하늘에 펼쳐진 드넓은 우주였다. 20세기에 이르러 급격한 과학의 발달과 함께 우주 기술의 혁신이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인류의 가슴을 가장 크게 흔들어 놓은 게 바로 인류의 달 착륙이다. 이 놀라운 혁신이 인류를 놀라게 한 지 벌써 50년이 됐다. 모든 위대한 혁신이 그렇듯 달 착륙은 인간이 달에 발을 딛는다는 이벤트 하나로 끝나지 않고 여러 분야에 파급력을 미쳤다. 당연히 기업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 2019년 11월 1일자(284호)에 실린 기고문, ‘우주가 가르쳐 준 혁신’의 핵심 내용을 정리했다.


○ 결핍이 불러온 혁신


우주에서는 지구에서의 법칙이 통하지 않는다. 중력도, 대기도, 물도 없고 지구에서라면 당연히 조달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이 없다. 따라서 우주 기술의 중요한 전제 조건은 필요 자원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주 기술에서는 발사체의 kg당 비용이 매우 중요한 지표인데 지상에서 2000km 떨어진 인공위성 궤도인 지구 저궤도까지 1kg을 쏘아 올리는 데 보통 1000만 원에서 4000만 원가량이 소요된다. 그보다 멀리 보내려면 비용이 더 올라간다. 따라서 필요 자원을 줄일 수 있으면 최대한 줄여야 한다. 두 번째로 중요한 조건은 일단 가져간 자원은 최대한 재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우주 기술이 발전시킨 분야가 재활용, 혹은 더 멋진 용어로 ‘라이프사이클 퍼포먼스(lifecycle performance)’라 부르는 기술이다.

모든 물질이 해당 생애주기에 최상의 성과를 내고 이후 다음 생애주기로 옮겨가서도 다시 최상의 성과를 지속적으로 내도록 하는 기술이다. 예를 들면, 우주 정거장에 설치된 필수 시스템인 환경제어와 생명지원 시스템에는 물 회수 시스템이 포함돼 있다. 이 시스템은 우주비행사들이 배출한 땀과 소변은 물론 우주정거장 실내에서 응축된 수분들을 모아서 다시 깨끗한 물을 얻어낸다. 이 기술은 다시 물이 부족한 아프리카 등에서 활용되고 있으며 선진국 대형 건물과 대형 상업 주거단지들을 중심으로 적용되고 있다. 자원이 고갈되고 지속 가능한 환경이 중요해지는 이때, 우주 기술의 라이프사이클 퍼포먼스 혁신은 점점 더 큰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이다.


○ ‘오류 제로’의 힘


우주의 극한 환경에서 귀한 자원인 열을 순환하게 하는 스페이스 블랭킷.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항공 산업에서는 작은 오류만 발생해도 적게는 수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에 달하는 승객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 따라서 절대로 작은 실수도 허용할 수 없다. 우주 산업에서도 특정 프로젝트가 오류로 인해 중도 실패할 수 있다. 이때 발생 가능한 사상자의 수 자체만 보면 항공 산업의 그것보다 적어 보일 수 있지만 프로젝트에 투입된 시간과 비용 투자를 생각하면 보통 일이 아니다. 오류를 줄이려는 항공우주 산업의 노력이 기술 산업에 접목돼 엄청난 혁신 운동으로 번진 사례가 있다. 바로 ‘식스시그마’다. 우주 산업에 참여했던 모토로라가 제안한 것으로, 불량률을 6표준편차, 즉 100만 개당 3, 4개로 줄이는 ‘극단적 불량률 감소 운동’이다. 이후 GE를 통해 더욱 크게 확산됐다. GE는 식스시그마 도입 3년 뒤인 1997년에 10억 달러, 5년 뒤인 1999년에 20억 달러의 비용을 절감했다. 특히 오류가 치명적일 수 있는 항공기 엔진 사업에서 GE가 식스시그마를 통해 엄청난 품질 향상을 이뤄냈다는 성공 사례가 신화처럼 회자되면서 이 혁신 방법론은 여러 기업으로 퍼져 나갔다.

○ 10% 개선 아닌 10배 혁신 추구하는 기업문화


우주 산업은 지구와는 완전히 다른 환경을 고려한 극한의 혁신 기술을 전제로 하기에 흔히 기업들이 추구하는 ‘10% 개선’이 아닌 전혀 다른 관점에서의 ‘10배 혁신’을 추구하도록 만든다. 래리 페이지는 구글X를 이끄는 자신의 동료인 애스트로 텔러가 말했던 “10% 개선보다 10배(10X) 개선이 더 쉽다”는 말로부터 ‘10X 정신’을 강조하며 자신이 평소 주장하던 ‘문샷 싱킹’, 즉 달을 향해 쏘는 과감한 도전정신과 10X 정신을 거의 동의어처럼 사용했다. 널리 알려진 대로 구글X의 대표적인 사업이었다가 웨이모로 독립한 자율주행차 사업 역시 교통사고로 수백만 명이 죽거나 다치는 문제를 차량 안전 기술의 일부 개선이나, 별도의 규제를 도입하는 10% 개선 방식이 아닌, 인공지능에 의한 자율주행이라는 10배 혁신의 개념으로 바꿔 접근한 사례다. 이런 첨단 분야가 아니어도, 구글은 지메일을 처음 출시하면서 기존 e메일 제공 회사들의 250배 용량을 기본으로 제공하면서 사용자 경험을 완전히 바꿔 큰 성공을 거뒀다. 급변하는 시장,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아남는 방법은 10%의 개선이 아닌 10배의 개선이라는 걸 잘 보여주는 사례다.

김경훈 구글 서울사무소 전무 harrisonkim@google.com

정리=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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