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사우디 첨단기술의 메카… ‘원유 테러’ 복구에 AI-로봇 큰 역할

우스마니야·다란=이세형 특파원

입력 2019-11-09 03:00 수정 2019-11-0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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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 앞둔 국영기업 ‘아람코’ 르포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오전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다란.

사우디 정부가 지분 100%를 보유한 국영 석유기업 겸 세계 최대 비상장회사인 아람코의 본사가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남서쪽으로 2시간 반을 차로 이동해 가와르 유전지대의 ‘우스마니야 가스 공장(UGP·Uthmaniyah Gas Plant)’에 도착했다. 이 공장은 올해 9월 14일 이란 소행으로 추정되는 미사일 및 무인기(드론) 공격을 당한 아브까이끄의 원유 탈황·정제 시설과 함께 아람코의 핵심 시설로 꼽힌다. 아람코는 이 공장에서 채취한 천연가스를 다양한 형태로 가공한 후 담수, 전력, 정유 공장 같은 핵심 인프라 등에 공급해 왔다. 특히 드론, 로봇 등 최첨단 정보기술(IT) 기능을 아람코 주요 시설 중 가장 먼저 도입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동아일보는 이날 아브까이끄 피격 사건이 일어난 후 한국 언론 최초로 아람코 우스마니야 공장을 둘러봤다. 탈(脫)석유와 산업 다각화를 추진하는 사우디 정부 행보에 맞춰 아람코가 IT 기업으로도 거듭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 겉은 가스 공장, 속은 IT 회사

사우디의 하루 평균 천연가스 생산량은 약 2억5200만 m³. 우스마니야 공장은 이 중 약 10∼15%를 담당한다. 이 공장은 허허벌판인 사막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었다. 주변에는 송유관과 일부 시추시설만 있어 개미 한 마리 찾아보기 어려웠다. 인근 도로에도 커다란 탱크로리 몇 대만 이따금 지나갈 뿐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형적인 중동의 가스 공장 풍경이었다.

공장 안 통제실로 들어서자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시시각각 화면이 바뀌는 수십 대의 대형 모니터와 직원들이 착용하는 스마트 헬멧 같은 웨어러블 장비 등이 눈에 띄었다. IT 회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공장 외부에 복잡한 형태로 구불구불하게 연결돼 있는 대형 파이프는 흡사 거대한 레고 블록 같았다.

안내를 맡은 공장 관계자는 “특수 제작된 로봇이 파이프 및 저장 탱크 내부의 온도, 마모 상태, 물질 등을 철저히 점검한다. 과거에는 사람이 직접 육안으로 점검하거나, 정확도가 떨어지는 기기를 사용했지만 이제는 정밀한 기능을 갖춘 로봇이 담당하므로 정확도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장 굴뚝에서 생성되는 오염 물질의 성분과 온도 역시 특수 제작된 드론이 파악한다. 로봇과 드론은 각종 원유 및 가스 누출, 화재 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상황을 파악하고 해결하는 데 쓰인다”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현재 사용 중인 드론, 로봇, 스마트 헬멧은 모두 아람코가 설계하고 개발했다고 강조했다.

다만 공장 주변에는 곳곳에 높은 철조망과 차단기가 설치돼 삼엄한 분위기였다. 공장 안에도 구역마다 보안 출입문이 있었다. 사우디 정부는 아브까이끄 피격 후 원래도 삼엄했던 각 지역 생산시설에 대한 보안을 더욱 강화했다. 직원들은 이날 “생산시설과 기기는 물론이고 행정동 건물, 일반 사무실 등에서도 절대 사진 및 동영상을 찍으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 “석유회사로만 보지 마세요”

같은 날 오후 다란 본사로 이동했다. 본사의 ‘4차 산업혁명센터(4IRC·4th Industrial Revolution Center)’는 IT 기업의 면모까지 과시하려는 아람코의 현재와 미래를 잘 보여주는 시설로 꼽힌다.

약 2500m²의 공간에 마련된 4IRC에는 현재 개발 중이거나 사용 중인 드론 및 로봇들이 즐비했다. AI와 빅데이터 기술에 기반한 점검 체계를 통해 각 공장의 가동 현황, 오염물질 배출 정도, 송유관을 통해 이동 중인 원유 및 가스의 양과 속도 등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4IRC 관계자 역시 “이곳에서 쓰이는 점검 기술은 모두 자체 개발했다. 특허도 보유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이날 아람코 관계자는 “현재 사우디의 원유 생산에는 별문제가 없다. 아브까이끄 시설도 피격 후 약 2주 만인 9월 말경 정상적인 생산 체제를 갖췄다”고 말했다. 아람코 안팎에서는 피격 사태를 단기간에 극복한 주요 비결로 인공지능(AI), 데이터 분석, 로봇 같은 4차 산업혁명 기술에 대한 대대적 투자를 꼽는다. 이날 사우디 정부가 동아일보, 뉴욕타임스(NYT), AFP통신 등 주요 언론사에 우스마니야 공장을 공개한 것도 ‘아람코를 석유회사로만 보지 말아 달라’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한 중동 소식통은 “아람코가 피격 사태 후 발달된 IT를 이용해 상황 파악, 수습, 시설 재가동, 원유 생산량 예측 등을 상당히 정확히 해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단순히 넘쳐나는 원유만으로 세계 최대 비상장회사가 된 것이 아니라 그 나름의 기술 및 위험관리 역량을 갖췄음을 보여줬다”고 진단했다.

실제 아람코는 최근 최고디지털책임자(CDO·Chief Digital Officer) 직책도 도입했다. ‘아람코 기업가정신센터’를 만들어 IT 등 신기술 관련 스타트업 육성에도 열심이다. 현재 100개 이상의 사우디 내 다른 스타트업에 대한 재정 및 교육 지원을 맡는다. 이 외에 로봇, 드론, AI 관련 부서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 상장 자금으로 IT 강국 발판 마련 의도


아람코의 변신은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34)가 주도하는 탈석유 및 산업 다각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언제까지 석유에만 의존할 수 없는 만큼 국영기업으로서 정부의 핵심 정책을 앞장서서 실천하겠다는 취지가 담겼다는 뜻이다.

특히 아람코를 제외하면 국제적 수준의 기업이 전무한 사우디의 현실도 이런 변신을 부추기고 있다. 국가 차원의 첨단기술 연구개발(R&D)을 주도할 곳도 이 나라에선 아람코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우디에서 10여 년간 근무한 윤여봉 KOTRA 리야드무역관장도 “이미 각국 기업들이 아람코를 ‘신기술 개발 인큐베이터’로 인식하고 있다. 단순한 석유회사로 보면 안 된다”고 말했다.

아람코가 이달 초에 다음 달 상장을 공식화한 것도 이를 통해 얻은 막대한 자금으로 IT 등 신산업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사우디는 2016년부터 상장을 계획했지만 왕실 내부 이견, 저유가 파장 등으로 여러 차례 연기했다. 사우디 정부는 9월 주무부처인 에너지부 장관까지 교체하며 상장 속도를 앞당기기 위해 노력해 왔다.

각국 투자은행(IB) 업계는 상장 후 아람코의 기업 가치를 약 1조5000억 달러(약 1734조 원) 안팎으로 예상하고 있다. 왕실이 기대하는 2조 달러에는 못 미치지만 저유가와 세계경제 둔화 등을 감안할 때 이 정도도 나쁘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1조 달러가 넘는 상장에 성공하면 아람코는 단숨에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에 오른다. 현재 1위인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의 시가총액은 약 1조 달러이고, 2, 3위인 미국 애플과 아마존은 9000억 달러 정도다.

일각에서는 아람코를 통해 산업 다각화를 추진하는 시도가 모순적이라고 비판한다. 사우디는 하루 평균 약 103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는 세계 최대 산유국이다. 이 산업의 근간인 아람코의 자금을 통해 탈석유를 추진하는 것 자체가 역설적으로 석유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보여준다는 의미다. 이권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아람코에만 의존해선 산업 다각화와 R&D 역량을 키울 수 없다. 아람코 외에도 다양한 첨단기술 기업이 계속 등장하고 이들이 서로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진정한 산업 다각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스마니야·다란=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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