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이윤화의 오늘 뭐 먹지?]뭇국-무채-무밥… 무 없는 식탁은 무미건조

이윤화 레스토랑가이드 다이어리알 대표

입력 2019-11-07 03:00 수정 2019-11-0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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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없는 식탁을 상상해봤다. 국물에서 나오는 시원함은 상당 부분 포기해야 될지 모른다. 잘 익은 새콤한 큰 깍두기를 한 입 와작 베어 먹는 즐거움이나 무말랭이 무침을 오돌오돌 씹는 맛도 접어둬야 한다.

어릴 적 먹은 엄마의 뭇국은 단순했다. 무를 도마에 놓고 가지런히 썰지 않고 어슷어슷 크게 돌려 깎았다. 무를 냄비에 넣고 기름에 볶다 고춧가루를 넣어 끓인 단출한 국은 신기하게도 깊은 단맛이 났다. 어른이 돼서도 찬바람이 코끝을 스치면 뜨끈한 뭇국이 생각난다. 무만으로 국물 맛을 내려면 단맛이 든 ‘겨울 무’가 기본이었고, 엄마의 뭇국은 늘 겨울에 등장했다.

한식 요리를 배울 때 무요리가 상당한 고난도 요리임을 알게 됐다. 특히 무나물은 요리 실력을 간파하기 좋은 지표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무나물 스타일은 지역마다 다르다. 기름을 사용하기도 하고 또는 물로 볶는다는 표현을 하는 무나물도 있는데, 어쨌든 무가 곤죽이 되지 않으면서도 씹는 맛은 남겨야 한다. 무나물 완성도를 보면 요리 내공도 슬쩍 엿본 듯했다.

제주도에선 무채나물만 넣어 돌돌 만 메밀전을 ‘빙떡’이라 부른다. 처음 먹어본 사람은 제주도에서 제일 맛없는 음식이라 꼽을지 모르지만, 토박이에게는 옛 추억을 상기시키는 입맛 당기는 음식이다.

일본도 한국처럼 무 사랑이 깊다. 오뎅(어묵) 집에서 고수가 꼭 시키는 품목이 큰 덩어리의 무다. 국물의 간장 맛이 은은히 밴 무를 한쪽 떼어 먹으며 그날의 어묵 코스 서막을 연다. 오래된 이자카야(선술집)에선 기본 메뉴로 무 샐러드를 내놓는다. 채를 썬 생 무에 소스를 얹어 나오기에 처음엔 돈 주고 사먹어야 하느냐는 생각까지 들었는데, 나이든 일본인일수록 무 샐러드를 곧잘 시킨다.

무는 음식의 메인 역할보다 듬직한 디딤돌 역할을 할 때가 많다. 그렇기에 실컷 쓰이고도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알아주지 않을 때가 있다. 요즘은 무가 왕성하게 출하되고 단맛이 배어들 때다. 무를 주인공 메뉴로 성업하는 맛집을 찾아봤다.

군산 한일옥의 ‘무우국’ 인기를 현지인들은 신기해한다. 옛날 작은 집에서 옮겨온 대형 가옥엔 뭇국을 먹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다. 무와 소고기가 든 맑은 국은 제삿날 탕국과도 유사하다. 간단한 모양새의 국이 꽤 시원하다.

원강은 주문 뒤 바로 짓는 ‘무밥’이 인기다. 무채와 다진 소고기가 든 무밥에 양념장을 넣어 비빈 다음 구운 김에 싸먹는 맛은 중독성이 있다. 시래기 지짐, 국물자작두부조림 등 추억을 소환하는 반찬도 맛깔스럽다.

유프로네는 골프장 인근에 있어 운동 뒤 한 그릇 든든히 먹을 사람들이 주로 들른다. 무가 큼직하고 고기가 부드럽다. 고기국물의 주역이 무임을 먹다 보면 알게 된다.

이윤화 레스토랑가이드 다이어리알 대표

○ 한일옥=전북 군산시 구영3길 63. 무우국 9000원

○ 원강=서울 강남구 학동로6길 16. 무밥 1만1000원(2인 이상 주문)

○ 유프로네=경기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로 33. 가을무와 한우암소뭇국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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