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2시간에 공사기일 못맞춰” “화학물질 등록비 때문에 폐업할 판”

유근형 기자 , 허동준 기자 , 김호경 기자

입력 2019-11-07 03:00 수정 2019-11-07 03: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경제5단체, 文정부 첫 공동회견

김용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왼쪽에서 세 번째)이 6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주요 경제관련법의 조속 입법화 촉구’ 기자회견에서 입장문을 읽고 있다. 이날 경총 등 경제 5단체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주 52시간 근무제 보완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국내 한 중견건설사의 고위관계자는 용건을 밝히자 한숨부터 쉬었다. “안 그래도 실적이 나쁜데 주 52시간 근무제 여파로 공사기일을 맞추지 못해 보상금을 내야 할 판입니다. 업종별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제도부터 덜컥 시행해놓고 이걸 보완하는 법은 언제 통과될지 알 수 없고…. 의원들이 기업 현장에서 한 번이라도 일해 봤다면 이렇게는 못 할 겁니다.”

이 회사는 지난해 초에 지방에서 공사 계약을 맺었다가 지난해 7월 주 52시간 근로제가 시행되면서 공기를 못 맞추고 있다.

한 염료 제조업체 대표는 “올해 시행된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법(화평법)에 따르면 연간 1t 이상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기업들은 모든 화학물질을 사전에 등록해야 한다. 컨설팅을 받아 보니 등록 비용이 물질당 수천만 원에서 1억 원까지 나왔다”며 “법을 고치거나 정부에서 지원해주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폐업까지 생각해야 할 판”이라고 했다.

6일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5개 경제단체가 이례적으로 공동 기자회견을 연 배경은 “이대로는 못 버틴다”는 기업들의 절박함이 크기 때문이다.


주 52시간 근로제는 내년부터 30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도 비명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중소기업들은 “시행을 유예하거나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관련 보완입법은 잠자고 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2월에 합의한 탄력근로제 단위시간 확대(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안은 여야 입장 차가 크다.

특히 연구개발(R&D)이 핵심인 전자, 반도체, 바이오, 제약업계는 현재 논의되고 있는 보완법안으로도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국내 한 제약기업의 대표는 “신약 개발은 최소 주 80시간의 집중노동이 6개월 이상 필요하다”며 “국회 논의가 잘돼 탄력근로제가 확대되더라도 노사합의 등 절차가 복잡해 실효성이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해야 국내 R&D 기업의 경쟁력이 확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 말 유예기간이 종료되는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은 관련 중소기업들의 발등의 불이다. 서승원 중기중앙회 상근부회장은 “자체 조사해 보니 화관법을 지키기 어렵다는 기업이 43%에 이른다. 안전 기준이 72개에서 5배 이상인 413개로 늘어나는데 영세한 기업들이 갑자기 이런 비용을 어떻게 감당하나”라고 했다.

경제단체들은 급격히 도래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신성장동력을 확보하자는 구호만 난무하면서 실제로는 데이터 규제 완화 관련 3법(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보호법)은 사실상 국회에서 논의조차 안되고 있다고 질타했다.

한 스타트업은 스마트체온계와 애플리케이션을 연동한 영유아 건강관리 서비스를 개발했지만 창업 6년 만에 회사를 매각할 위기에 놓여 있다. 개인이 자신의 체온을 스마트폰에 기록은 할 수 있지만 기업이 개인에게 일일이 동의를 받지 않는 한 이 정보를 취합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40대 여성 체온’ 같은 식으로 개인을 특정할 수 없는 ‘가명 정보’는 일일이 동의를 받지 않고도 상업 활동에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개정안이 지난해부터 국회 계류 중이다.

김준동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한국은 4차 산업혁명을 가장 빨리 시작했지만 여러 법으로 발이 묶여 있는 상황에서 선진국들이 앞서가고 있다”며 “긴 안목에서 기업이 돌아가게 하는 길을 터줘야 한다”고 말했다.

유근형 noel@donga.com·허동준·김호경 기자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