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최고인력”…노조-고임금에도 R&D센터 포기못하는 외국기업

변종국 기자

입력 2019-11-05 17:54 수정 2019-11-05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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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최고의 인력(Super Advanced Person)을 보유했다. 이런 한국을 어찌 선택하지 않겠나?”

미국의 항공기 제작업체인 보잉이 비행기 제작기술을 연구하는 보잉한국기술연구소(BKETC) 개소식을 연 1일. 에릭 존 보잉코리아 사장은 “왜 한국에 연구개발(R&D) 센터를 열었느냐”는 질문에 이 같이 답했다.

보잉한국기술연구소에서는 보잉의 12번째 글로벌 연구소이자 아시아에서는 2번째다. 미래 항공 시장을 선도할 자율 비행, 인공지능(AI), 미래형 객실 등 차세대 항공 기술 개발을 맡는 핵심적인 곳이다. 보잉은 2015년 경북 영천시에 있던 항공기 유지보수정비센터를 올 초 철수했다. 하지만 R&D에는 오히려 투자를 늘리고 있다.

존 사장은 “구체적인 기술을 밝힐 순 없지만 한국 인력들이 단 기간에 항공전자와 AI분야에서 성과를 내면서 본사가 매우 놀랐다. 보잉에서 인턴을 하는 한국인은 대부분 직원으로 채용된다”고 말했다.

최근 글로벌 기업들은 한국에서 강성 노조와 고임금 등의 여파로 생산시설을 철수하거나 물량을 줄이지만 R&D 투자는 오히려 늘리고 있다. 세계적 수준의 국내 대기업과의 협력도 매력적이지만 한국인의 기술이나 업무에 대한 태도를 큰 장점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국내 고급 R&D인력을 활용하려는 글로벌기업의 움직임은 외국인직접투자 추이에서도 드러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외국인직접투자액 중 첨단 기술 및 신사업에 투자하는 액수는 2015년 약 2300억 원에서 올해 약 4400억으로 증가했다. 대표적인 고부가가치 산업인 제약분야에서 지난해 한국에 진출한 글로벌 제약사의 R&D 규모는 약 4700억 원으로 2017년(약 4000억 원)보다 약 16% 늘었다.

지난해 군산공장을 폐쇄한 한국GM도 올 초 인천에 GM테크니컬센터코리아(GMTCK)를 설립했다. GMTCK에는 약 3300명의 엔지니어들이 근무하면서 미국GM의 신차와 엔진, 변속기 기술, 전기차 등 핵심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벤츠와 BMW 등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도 한국에 R&D센터를 운영 중이다.

카허카젬 GM코리아 사장은 한국에 잔류하려는 이유에 대해 “우수한 기술을 가진 협력업체뿐 아니라 뛰어난 기술을 가진 인재들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국GM 관계자도 “외국인 임원들은 회식을 하거나 야근을 해도 다음날 정시에 출근하고 푸쉬를 하면 성과를 내는 한국 사람에게 매우 놀라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 산업계에서는 한국이 제조업 국가를 넘어 부가가치가 높은 기술개발 및 디자인 쪽으로 산업구조가 바뀌는 것은 자연스런 흐름이라고 보고 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임금 상승 등의 여파로 제조업 중심의 산업이 한계에 이르자 고부가가치의 산업으로 이동한 미국 및 유럽과 유사한 패턴으로 새로운 밸류 체인이 한국에 형성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일정 수준의 제조업을 유지해야 한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일자리 때문이다. 실제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는 제조업 강점이 부각되며 각 국들은 제조업 유턴정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정보기술(IT) 업계 관계자는 “독일은 사물인터넷을 통해 전체 생산 과정을 최적화 하겠다는 ‘인더스트리 4.0’ 정책으로 제조업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며 “우수한 한국 인력들이 제조업의 부활을 위해서도 역할을 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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