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막서 묵언수행… 90일간의 고행길

정양환 기자

입력 2019-10-30 03:00 수정 2019-10-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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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 전 조계종 총무원장 등 9명…내달부터 ‘상월선원 천막결사’
1일1식하며 외부와 접촉 차단… “한국 불교 중흥의 전기 되길”


조계종의 저명한 스님들이 다음 달 11일 사상 초유의 동안거에 들어간다. 자승 성곡 진각 호산 스님(왼쪽부터) 등 9명은 야외 천막에서 추위와 싸우며 묵언 수행에 나설 예정이다. 동아일보DB

자승 전 조계종 총무원장 등 불교계에서 저명한 스님들이 한겨울에 야외 천막에서 90일 동안 안거하며 수행한다. 겨울에 여러 스님들이 1일 1식하며 함께 묵언 수행하는 것은 한국불교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다.

대한불교조계종에 따르면 다음 달 11일 오후부터 경기 위례신도시 포교도량 부지에서 2019년 동안거 ‘상월선원(霜月禪院) 천막결사’가 시작된다. 상월은 서리를 맞으며 달을 벗 삼는다는 뜻에서 지었다.

이번 결사에는 자승 전 원장을 비롯해 정묵 동광 성곡 진각 호산 심우 재현 도림 등 9명이 참여한다. 전현직 중앙종회 의원들이 많다. 최고령인 성곡 스님은 세수 73세다. 중앙종회 사무처장으로 이번 결사의 지객(知客) 소임을 맡은 호산 스님은 “난방도 없는 천막에서 한겨울을 보내는 것이라 스님들 건강이 제일 걱정이다. 따뜻한 물 등을 준비해 만전을 기하겠다”고 했다.

고행은 그뿐만이 아니다. 외부와는 아예 접촉을 끊고, 바깥에서 하루에 한 번 넣어주는 도시락으로 버틴다. 옷은 한 벌만 허용하고, 삭발과 목욕도 할 수 없다. 물품도 침낭 1개와 치약, 칫솔, 효자손 정도. 천막 안에서도 일절 대화를 할 수 없다. 만약 견디지 못하고 퇴방하면 출가수행원으로 살지 않겠다는 서약서도 미리 제출할 예정이다.

일찍이 전례가 없는 수행에 나서는 이유는 뭘까. 일각에선 최근 조계종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자 ‘이벤트’를 벌인단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호산 스님은 “가장 우려하는 게 그 대목이다. 하지만 다른 뜻이 있다면 조용히 칩거하는 게 낫지, 왜 굳이 이런 큰일을 벌이겠느냐”고 답했다.

호산 스님에 따르면 자승 스님의 결의가 이번 결사의 도화선이었다. 총무원장을 물러난 뒤 백담사 무문관(無門關) 수행에 들어갔던 스님은 주위에 서울역 노숙 정진의 뜻을 밝혔다. 이에 스님들이 동참 의사를 밝혔고, 장소를 원각사지가 있는 서울 탑골공원으로 바꿨다가 여의치 않자 위례신도시 부지로 재차 바꿨다. 이곳이 조만간 사부대중을 위한 포교도량을 지을, 뜻깊은 장소라 본 것.

“스님 개개인으로는 수행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목마름이, 불교계에는 새로운 중흥의 전기를 마련하길 바라는 순수한 마음입니다. 불자가 아니더라도 한국불교가 이렇게 생사를 내놓고 노력한다는 점만 알아주시면 바랄 게 없습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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