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차 가속페달 밟는데… “부품개발 엄두 못내요”

지민구 기자

입력 2019-10-21 03:00 수정 2019-10-2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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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車부품사, 산업지형 변화에 위기감

울산 북구에 있는 현대모비스 공장에서 직원들이 섀시(차체) 모듈을 생산하는 모습. 현대모비스 제공
친환경 자동차와 자율주행으로 대표되는 미래차의 등장으로 한국의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위기에 직면했다. 기존 내연기관 중심의 완성차 생산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미래차에 필요한 부품 개발에는 뒤처진 탓이다. 국내 부품업계에서는 중소업체들도 미래차 시대를 대비할 수 있는 정부의 현실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20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액 기준으로 세계 100대 자동차 부품업체 중 23곳이 미국 국적으로 집계돼 일본과 함께 공동 1위에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100위 안에 포함된 미국 부품사는 2017년 19곳에 불과했으나 1년 사이에 친환경차나 자율주행 관련 장비·부품을 생산하는 신규 업체가 새로 진입하면서 늘어난 것이다.

중국 기업 역시 6개에서 7개로 늘어 한국을 제치고 4위에 올랐다. 한국은 100위권 밖으로 밀려난 업체는 없었지만 현대차그룹의 부품 계열사인 현대파워텍과 현대다이모스가 합병해 현대트랜시스로 이름을 바꾸면서 7개에서 6개로 줄었다.

일정 규모를 유지하고 있는 글로벌 주요 부품업체들은 이미 선제 구조조정을 통해 내연기관 이후의 시대를 대비해 새로운 부품을 만들어 내는 데 집중해 왔다. 하지만 중소업체가 대부분인 한국은 새로운 투자를 통해 100위권으로 뛰어 오를 준비에 나서지 못한 것이다.

김준규 자동차산업협회 조사연구실장은 “중국은 2011년 처음 100대 부품업체 중 1개사가 포함된 뒤 꾸준히 수를 늘리고 있다”면서 “기술 추격 속도가 빨라지면서 앞으로 더 많은 기업이 100위권으로 진입하면서 한국을 위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완성차의 연간 생산량이 2015년 456만 대(5위)를 기점으로 꾸준히 감소하는 점도 부품업체들의 연쇄적인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완성차 생산량은 지난해에는 403만 대로 떨어지며 생산량 기준으로 멕시코에 밀려 7위로 처졌다. 올해 국내 연간 자동차 생산량은 400만 대를 밑돌 가능성이 커 영세 부품업체들의 위기가 현실화될 우려가 높다.

정부는 15일 발표한 미래차 육성전략을 통해 국내 9000여 개 부품사 중 현재 4%에 불과한 자동차 전장업체 비중을 2030년까지 23%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친환경차와 자율주행 시대에 필요한 전기장치와 시스템인 전장 부품의 증가에 대비해 중소업체의 성장을 돕겠다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2조 원 규모의 금융 지원을 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하지만 자동차 부품업계는 ‘나눠주기식’ 정부 지원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국내 완성차 업체의 2차 협력사 관계자는 “2조 원을 9000여 개 부품사가 나눠 갖는다고 하면 1개사에 2억 원 수준인데 이걸로 어떻게 내연기관 제품만을 만들던 영세한 업체들이 미래차에 대비한 투자에 나설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실제 자동차산업협회 등이 5, 6월 전국 33개 부품사를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를 보면 응답 기업의 55%가 신규 연구개발(R&D)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으로 ‘투자 여력 부족’을 꼽았다. 지난해 평균 영업이익률이 2% 미만인 한국의 영세한 부품업체들이 정부 지원을 받아도 미래를 위한 과감한 투자를 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정만기 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은 “대기업과 부품업체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정부 R&D 사업을 확대해 생산 과정에서도 협력하도록 촉진하면서 투자 세액 공제 혜택도 기존 3∼7% 수준에서 10%까지 높여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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