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한점 없는 바닥… 로봇이 온도 조절… 실험실인지 농장인지

익산=황재성 기자

입력 2019-10-15 03:00 수정 2019-10-15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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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에서 미래를 찾는다 / 동아일보-농림축산식품부 공동기획]
익산 스마트팜 ‘로즈밸리’ 가보니


정병두 대표가 리프트에 올라 스마트팜 로즈밸리의 가동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리프트는 토마토가 수확기 때 4m 이상 성장하는 점을 고려해 작업자들이 이용하는 장비이다. 익산=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농사는 사람의 손을 빌려 하늘과 땅이 짓는 일’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제 이 명제는 수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면서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로 ‘사람과 로봇과 컴퓨터의 힘을 빌려 짓는 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땅은 필요 요소에서 제외됐고, 하늘의 비중은 크게 줄고 있다. 농사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셈이다.

전북 익산시 왕궁면 흥암리에 위치한 농업회사법인 로즈밸리도 농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곳 중 하나다. 승용차를 타고 호남고속도로 익산 나들목에서 빠져나와 10분 정도 거리에 있다. 이름에 ‘로즈(장미)’라는 단어가 있어 장미 관련 농장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로즈밸리는 정부가 ‘토마토 작물 재배 시범 사업자’로 선정할 만큼 높은 기술력을 인정받은 스마트팜이다.

햇볕이 따갑던 11일 로즈밸리를 찾았다. 커다란 식물실험실을 연상케 할 정도로 농장 내부는 깨끗하고 쾌적했다. 입고 있는 재킷이 전혀 거추장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바닥은 흙 한 점 보이지 않게 시멘트로 덮여 있었고, 토마토는 50cm 높이의 받침대에 올려져 키워지고 있었다.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365일 24시간 토마토의 생육 상황을 체크하는 센서와 로봇이 실내 온도와 습도, 이산화탄도(CO₂) 농도를 완벽하게 관리하고 있었다.


○ 반도체 부품 제조에서 토마토 재배 사업자로


로즈밸리를 만들고 운영하는 주인공은 정병두 대표(48). 그는 2007년 잘 다니던 회사(반도체 부품 제조업체)를 그만둔다. 아프신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 부모님은 “멀쩡하게 좋은 회사에서 편안한 생활을 하던 아들이 자신들 때문에 농사일을 하게 됐다”며 반대했지만 그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그는 복숭아농장을 하던 부친의 어깨너머로 배운 경험을 바탕으로 국화, 프리지어 등을 키우는 비닐하우스 농가를 인수했다.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내린 결정이었지만 잘못된 판단이었다. 땅을 일구고, 풀을 뽑고, 퇴비를 주는 일은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일 구덩이라는 말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노동 효율은 떨어졌고, 무엇보다 소득이 너무 적었다. 결국 그는 2010년 비닐하우스 화훼를 포기했다. 대신 그 자리에 수경재배로 장미를 키우기로 하고, 거금 7억 원을 들여 대규모 시설 투자에 나섰다. 흙을 걷어내고 시멘트로 바닥을 덮었다. 일조량과 물 주기 등을 자동으로 제어하는 ‘복합 환경 제어 시스템’도 설치했다. 일본과 러시아를 겨냥한 품종을 골라 재배했다. 당시 일본에서 한국산 장미가 인기를 끌던 때라 수출 물량은 꾸준히 늘어났다. 하지만 ‘장밋빛 계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및 쓰나미로 일본에서 장미 수요가 급감하면서 위기에 직면했다.

2년 가까이 고민하던 정 대표는 2013년 장미에서 토마토로 품목을 다시 한번 바꾼다. 지인의 권유로 농업 선진국인 네덜란드에 갔다가 접한 토마토 농장에서 미래를 발견한 것이다.


○ 로봇부터 3D 프린터까지 동원한 최첨단 농법

로즈밸리에서는 햇볕 대신 LED를 이용해 토마토를 씨앗 상태에서 발아시켜 일정 크기로 키우는 실내LED육묘장도 운영하고 있다. 정병두 대표가 발아 중인 토마토 씨앗들을 보고 있다. 익산=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스마트팜의 핵심은 정확성이다. 일사량과 비, 풍향, 풍속, 온도, 습도를 모두 측정해 한 시스템으로 관리해야 한다. 정 대표는 이를 위해 ‘복합 환경 제어 시스템’을 직접 개발했다. “예전에는 온도를 잴 때 막대온도계를 사용했습니다만 정보 수집에 제한이 있었어요. 시스템을 사용하면서부터 농장 내 온도, 습도, 일사량을 한 번에 알 수 있고 관리가 쉬워졌습니다.”

정 대표는 반도체 회사에서 근무했던 경력을 활용해 물을 관리하는 ‘배지 중량 모니터링 시스템’을 개발했다. “저울의 원리를 이용해 배지 밑에 무게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센서를 설치했습니다.”

이파리 온도나 상태 등을 측정하는 ‘생육 측정 로봇’을 설치하고 온도와 습도, 광합성에 필수적인 CO₂ 농도를 관리했다. 3차원(3D) 프린터로 토마토 잎을 자르는 데 필요한 가위 등을 직접 만들어 쓰기도 한다.

스마트팜 기술을 등에 업은 로즈밸리는 매출은 물론이고 농장 운영 효율성도 높였다. 그 결과 생산량은 60% 이상 늘었고, 인건비 등을 포함한 경영비는 20% 이상 줄었다. 약 1만 m² 규모의 농지에서 토마토가 연간 360∼390t 수확되고 연간 매출은 6억 원을 넘어섰다.

정 대표는 최근 초분광 카메라를 이용한 방제 기술 개발에 나섰다. 드론을 이용해 초분광 카메라로 작물을 촬영해 병충해 작물을 파악하고, 뒤따라오는 방제 비행기가 해당 정보에 따라 선택적으로 약을 살포하는 기술이다. “초분광 카메라 기술을 이용하면 다양한 작물 바이러스를 보다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 최소 3년은 준비하고, 끊임없이 공부해야

정 대표는 스마트팜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막연한 이해로는 부족하다”며 “최소 3년 정도의 준비와 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스마트팜을 시작할 때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이었다”고 했다. 그 결과 실수는 불가피했다. 요즘은 스마트팜 관련 다양한 소프트웨어가 개발되고 정부 차원의 지원도 있지만, 정 대표는 본인이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을 직접 개발해야만 했다. 이런 이유로 그는 지금도 스마트팜 관련 각종 교육 행사를 부지런히 쫓아다닌다. 그는 “이런 게 모두 반도체 회사를 다녔던 경험이 있었기에 그나마 가능했다”며 “이에 대한 충분한 사전 교육이 필요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또 이런 과정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지원도 당부했다.

꼼꼼한 자금 조달 계획도 필수다. 그는 “지금의 시설을 만드는 데 당시 투입 비용이 땅값을 제외하고 7억 원 정도가 들었는데 지금 한다면 20억 원 이상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토마토를 가공해 각종 요리에 들어가는 소스를 개발해 다음 달부터 ‘레드닥터’라는 브랜드로 판매에 들어간다. 또 2022년부터는 체험학습장도 운영할 계획이다. “(로즈밸리가) 농업 선진국 네덜란드 스마트팜의 80% 수준이며, 100%를 넘어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그의 모습에서 한국 농업의 밝은 미래가 그려졌다.


▼ 스마트팜 진입장벽 낮추기… 정부, 사업비 60% 지원 ▼

‘로즈밸리’와 같은 스마트팜을 시작하는 데에는 적잖은 시설 투자와 사전 교육 등이 필요하다. 진입 장벽이 그만큼 높다. 정부는 이를 해소하기 위해 ‘ICT(정보통신기술) 융복합 확산―스마트팜 시설 보급’ 사업을 벌이고 있다. 한마디로 스마트팜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대상자는 채소·화훼류 등(육묘, 버섯, 인삼, 인삼·약용채소) 자동화 재배 시설을 운영하는 농업인과 농업법인, 생산자단체 등이다. ‘시설원예 현대화 사업’과 동시 추진도 가능하다.

사업 신청은 사업 예정지 관할 시군의 농정과에 신청하면 된다. 이를 예비 신청이라고 한다. 이후 컨설턴트가 사업 예정지를 방문해 사전 컨설팅을 한 뒤 지원 대상자로 적합하다는 판정을 내려야만 본신청 자격이 주어진다. 다만 해당 시군으로부터 지방비 확보나 지원 가능성을 사전에 확인하는 게 좋다.

절차를 거쳐 지원 대상자로 선정되면 사업 계획에 따라 정부는 시설원예 분야의 ICT 융복합 시설 장비 및 정보 시스템 설치 등과 관련해서 사업비 보조나 융자를 해준다. 국가 보조금 30%, 지방비 30% 등 총 60%가 지원된다. 이 외의 40%(컨설팅 20% 포함)는 본인 부담이다. 사업비 상한액은 2억 원이며, 총 사업비 기준 100만 원 미만의 사업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익산=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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