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하게 차곡차곡 쌓아온 성소수자의 역사…서울 합정지구 기획전 ‘퀴어락’
김민 기자
입력 2019-10-13 21:59 수정 2019-10-14 10:50
“가면을 벗읍시다!”
한국에서 첫 성적소수자 단체로 알려진 ‘초동회’의 소식지 1호에 실린 문구다. 1994년 1월 25일 발간한 이 소식지에서 초동회란 “‘초록은 동색이다’의 앞 글자를 딴 것으로, 흩어진 그룹을 연결해 동성애자로서 떳떳하게 살아갈 여건을 마련하기 위한 단체”라고 적혀있다. 원본이 한 장밖에 남지 않은 이 자료의 복사판을 서울 마포구 ‘합정지구’에서 열리는 전시 ‘퀴어락’에서 볼 수 있다.
‘퀴어락’ 전시의 출발점은 2009년 정식으로 문을 연 ‘한국퀴어아카이브(퀴어락)’다. 2002년 설립한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가 수집한 2000여 편의 국내외 성소수자 관련 도서, 문서, 영상을 열람할 수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서울에서 활동하는 이강승 작가는 퀴어락에서 우연히 발견한 트랜스젠더 여성의 일기장을 보고 전시를 기획했다. 일기장 속 자기혐오와 희망을 보며 “성소수자의 이야기가 젠더 차원이 아닌 역사의 일부로 다뤄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아카이브 자체를 전시 소재로 삼았다.
가장 흥미로운 건 전시장 속 아카이브에서 만나는 개인의 이야기들이다. ‘성소수자’에 관한 추상적 정의가 아닌 구체적 사례가 펼쳐지면서, 그것이 승인·거부의 문제가 아닌 실존하는 사실임을 담백하게 드러낸다. 다음달 2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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