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광풍이 멈춘 후… 빛과 움직임으로 예술 리부팅

김민 기자

입력 2019-10-08 03:00 수정 2019-10-0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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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립미술관 ‘제로 ZERO’전… 독일미술운동의 새출발 담아

파시즘의 광풍이 낳은 비극인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예술가들은 모든 것을 원점에서 생각했다. 프랑스 화가 이브 클랭(1928∼1962)은 1958년 텅 빈 전시장을 ‘허공’이라 이름 붙여 전시했고, 이탈리아 화가인 피에로 만초니(1933∼1963)는 자신의 배설물을 통조림에 담아 만든 작품 ‘예술가의 똥’을 1961년 발표했다. 이들처럼 과거와 결별하고 완전히 새롭게 출발하자는 염원을 담은 독일 미술운동 ‘제로’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포항시립미술관과 제로파운데이션이 공동 기획한 전시 ‘제로 ZERO’는 주요 참여 작가의 대표작 48점을 소개한다. ‘제로’는 1950년대 후반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태동한 ‘국제미술운동’으로 독일 출신 미술가 하인츠 마크, 오토 피네, 귄터 위커가 주축이었다. 1958년부터 1961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미술 잡지 ‘제로’를 발간하고, 국제적 미술가 네트워크를 형성해 전시를 열었다.

제로는 전통 회화나 상업 예술과 거리를 둔 것이 특징이다. 빛이나 움직임 등의 비물질적인 재료나 기술을 활용했다. 마크는 알루미늄을 이용해 빛의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가 하면, 위커는 무한하게 반복되는 기계의 움직임 자체를 작품으로 표현했다. 조명장치를 활용해 우주적 공간을 연출한 피네는 제로 운동이 중단된 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로 재직하며 환경 미술, 키네틱 예술 등의 전개에 영향을 미쳤다.

이들의 활동은 최근 영미권 중심의 미술사를 다시 돌아보는 흐름과 맞물려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2014년에는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다.

새로운 출발을 모색했던 예술가들의 흔적을 포항에서 소개하는 이유도 곱씹을 만하다. 김석모 학예실장은 “한국 산업화의 상징이었던 포항도 벌써 시 승격 70주년을 맞는다. 철강산업이 포항을 이끌어왔지만 산업 전환으로 도시가 혼란기를 겪는 상황이다. 예술가들처럼 미래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보자는 것이 기획 의도”라고 설명했다. 추석 연휴 4일간 예년에 비해 3배 이상 많은 3000여 명의 관객이 미술관을 찾았다고 한다. 내년 1월 27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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