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서 키우는 채소… 로봇이 씨 뿌리고 수확

한우신 기자

입력 2019-10-04 03:00 수정 2019-10-0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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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도역 메트로팜’ 가보니… 역 유휴공간 활용해 도시농업 실험
기존 스마트팜보다 온도유지 이점… 수확채소 맛보는 ‘팜카페’도 마련
“대학생 등 많은사람에 알리는 계기… 대상역 늘리고 차량기지에도 조성”


서울지하철 7호선 상도역에 조성된 메트로팜 재배시설. 조명, 온도, 습도 등을 자동으로 조절해 작물이 자랄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만든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서울지하철 7호선 상도역 2번 출입구에서 계단을 내려가자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지하 매장이 자리 잡을 만한 곳에 사방에 유리 칸막이가 쳐진 신비한 공간이 있었다. 칸막이 너머에는 채소들이 자라고 있었다. 채소들은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받으며 성장했다. 버터헤드레터스, 카이피라 등 최근 소비가 늘고 있는 고급 샐러드 재료들이다. 원산지가 ‘상도역’인 작물을 길러내는 이곳은 지난달 27일 개장한 ‘상도역 메트로팜’이다. 연면적 395m²로 규모도 상당하다.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가 도시농업에서도 정보기술(IT)을 접목한 도시형 ‘스마트팜’을 본격 추진한다. 그동안 도시농업은 유휴부지에 텃밭을 만들거나 건물 옥상에서 양봉을 하는 정도에 그쳤다. 앞으로는 지하철역에 자동 농작물 재배 시설을 설치하고 미래 도시농업의 실험장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김명호 서울교통공사 스마트팜사업단장은 “지하철역 유휴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항상 고민한다. 메트로팜은 다양한 사업 기회를 이끌어낼 수 있는 새로운 시도”라고 말했다.

메트로팜은 자동으로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고 작물에 물을 주는 등 기존 스마트팜과 시스템은 동일하다. 다만 특유의 장단점이 있다. 스마트팜은 보통 실내 기온을 21∼25도로 유지한다. 메트로팜은 지하에 설치돼 있다 보니 지상보다는 온도 변화가 적다. 항온 관리에 유리하다. 그 대신 습도가 높아 습기 제거엔 항상 신경을 써야 한다. 습도는 65∼75%로 맞춰야 한다.

일부 시설은 씨 뿌리기부터 로봇이 대신하는 ‘오토 팜’으로 조성됐다. 파종부터 재배, 수확까지 로봇이 알아서 하는 완전 자동화를 이룬 셈이다. 오토 팜에선 로메인과 롤라로사처럼 주로 재배 기간이 짧은 작물을 키운다. 수확한 채소들을 바로 맛볼 수 있는 ‘팜카페’도 옆에 따로 마련했다. 이곳에선 상도역산 채소로 만든 샐러드와 주스 등을 판매한다. 1시간 동안 작물 재배와 수확, 시식까지 할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지하철역에 메트로팜과 팜카페를 함께 만든 이유는 스마트팜으로 대표되는 미래 농업을 시민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알리기 위해서다. 메트로팜 운영을 맡은 팜에이트의 양원규 마케팅팀장은 “최첨단 설비를 갖춘 스마트팜이라도 시골에 있다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하철역에 스마트팜을 설치하면 자연스럽게 미래 농업에 대한 인식도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근 대학생과 청년들이 스마트팜을 자주 접하며 농업 분야 창업을 모색할 수도 있다. 서울시와 교통공사는 인근 대학과 협력해 메트로팜 내에 창업공간, 연구시설을 설치하는 방안도 계획하고 있다. 상도역은 중앙대, 숭실대와 가깝다.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는 작물 재배 체험공간도 조성해 시민들이 스마트팜과 미래 도시농업을 친숙하게 느끼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서울시와 교통공사는 을지로3가역, 천왕역, 충정로역 등 5개 지하철역에 메트로팜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메트로팜을 추가로 설치할 다른 역도 찾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차량기지에 스마트팜을 설치하는 방안도 구상 중이다. 차량기지에 스마트팜을 설치하면 규모가 지하철역보다 훨씬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지하철역, 차량기지의 스마트팜에서 재배된 작물들을 지하철로 실어 나를 수 있다. 물류비가 크게 줄어든다. 농산물 가격이 낮아져 소비자에겐 이득이다.

스마트팜에서 키우는 작물은 상당수 외국에서 들여온 고급 품종의 채소다. 상추, 배추 등 일반 농지에서 키우는 작물과는 다르다. 도시에서 스마트팜을 대거 확대해도 기존 농업인의 반발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관계자는 “스마트팜 확산으로 고가 채소의 소비가 늘면 국내에서도 해당 품종을 개발하려는 업체가 늘어날 것이다. 국내 종자산업계가 자극을 받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더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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