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멀리건이 주어진다면…’ 김비오 손가락이 던진 파문[김종석의 TNT 타임]

김종석기자

입력 2019-10-03 08:52 수정 2019-10-03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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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도중 갤러리 향한 거친 매너와 징계 국내외 논란
-스타와 팬들의 올바른 관계 정립 요청
-제주 CJ컵 출전 가르시아 관심 증폭
-어릴 적 심장병에 쓰레기 줍는 매너로 화제


올 시즌 KPGA 코리안투어에서 2승을 거두며 전성기를 맞은 김비오는 손가락 욕설 파문으로 자격정지 3년에 벌금 1000만원의 중징계로 선수 생활 최대 위기를 맞았다. 동아일보 DB
‘배구 여제’ 김연경은 ‘식빵 언니’로 불린다. 그 유래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국과 일본의 경기 도중 김연경이 승부욕을 참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는 장면이 TV 중계화면에 잡히면서 붙었다.

프로야구 두산 간판스타 오재원도 ‘식빵’과 연관이 깊다. 불같은 성격을 지닌 그는 플레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글러브를 패대기치거나 욕을 내뱉는다. 식빵의 어원은 욕이여서 달갑지 않게 들린다.

하지만 김연경과 오재원에게 식빵은 어느새 열정과 투혼의 상징처럼 됐다. 김연경은 지난달 개설한 유튜브 채널 이름도 ‘식빵 언니’라고 지었다. 오재원은 국가대표로 활약하면서 ‘국민 식빵’이라는 영광스러운 타이틀까지 얻었다.

물론 식빵은 공인 취급을 받는 스포츠 스타가 쉽게 입에 담아선 안 될 육두문자가 분명하지만 그 대상이 경기장을 찾은 관중이나 게임을 지켜보는 팬은 아니다… 자신의 어이 없는 실수나 모호한 판정 등에 대한 감정 폭발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김연경과 오재원 모두 이 같은 이유에서 나오는 ‘식빵’이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자주 밝히며 실천하려 하고 있다. 무엇보다 김연경과 오재원은 팬들과 자주 소통하며 남다른 팬 서비스로도 유명하다.

필드의 악동으로 유명한 세르히오 가르시아. 이달 중순 제주 CJ컵에 출전할 예정이다. AP

프로골퍼 김비오(29)의 손가락 욕설 파문이 국내를 뛰어 넘어 해외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 자격정지 3년이 가혹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비오보다 더 한 행동을 한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 등은 별 징계가 없었다는 걸 근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가르시아는 이달 국내에서 유일하게 열리는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대회인 제주 CJ컵에 출전하게 돼 더 화제가 될 전망이다. 가르시아와 김비오가 맞붙을 가능성도 있었다.

세계 3대 투어를 지향한다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와 달리 변방 취급을 받는 군소 투어인 한국프로골프(KPGA)가 이렇게 주목받는 현실이 씁쓸하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하지만 십 센티도 안 되는 김비오의 손가락이 만약 갤러리가 아닌 다른 곳을 향했더라면 어땠을까. 갤러리에게 적개심을 드러낸 듯한 행동을 보인데는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어 보인다.

갤러리 방해와 징계 과정에는 이런 저런 소문이 무성하다. 특정 선수를 응원하는 팬들이 의도적으로 방해할 목적으로 휴대전화 촬영에 나섰다거나, KPGA가 과거 김비오가 디펜딩 챔피언인데도 국내 대회에 나오지 않아 불편한 심기를 갖고 있었던 게 중징계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말도 나온다.

손가락 욕설을 사과하고 있는 김비오. 성남=뉴스1

흔히 프로스포츠 존재 이유는 바로 팬에 있다고 한다. 골프 규칙 제1장은 에티켓이다. 김비오가 넘지 않아야 될 선을 넘은 건 분명하다. 김비오 역시 KPGA 상벌위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쏟았다. “나로 인해 상처받으신 갤러리 분들을 비롯해 동료 선수와 스폰서, 협회 등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많은 분께 죄송한 마음뿐이다. 모든 것은 협회의 결정에 따를 것이다. 잘못된 행동으로 심려를 끼쳐 정말 죄송하다.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다. 앞으로는 모든 분들에게 죄송함을 가지고, 프로 선수이기 전에 더 나은 사람으로 변하겠다.”

김비오를 어릴 적부터 봐온 지인들은 누구보다 안타까움을 표시하고 있다. 주니어 시절 골프 천재로 이름을 날린 뒤 프로에서도 성공적으로 데뷔했던 그는 오랜 슬럼프 끝에 올해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는 평가를 듣고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골프를 시작한 김비오는 6학년 때 심장박동수가 급격하게 빨라지는 빈맥성 부정맥이라는 심장질환을 앓은 뒤 수술까지 받았지만 재발했다. 이로 인해 군 면제까지 받은 그는 만성 질환으로 요즘도 긴장을 하거나 무리를 하면 심장 박동에 이상을 느끼는 것으로 알려졌다.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나 세례명을 이름으로 쓰는 김비오는 ‘BIO’라고 새겨진 큼지막한 벨트 버클을 차고 대회에 나선다. 2009년 프로에 데뷔할 당시 그가 벨트에 얽힌 사연을 밝힌 기억이 난다. “언제가 이름을 크게 날리고 싶어 서울 동대문 시장에서 특별히 맞췄다.”

라운드 도중 쓰레기를 자주 주워 관심을 끈 김비오는 “코스를 아끼면 잘 못 친 공도 좋은 곳에 떨어지는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2008년 국내 최고권위 허정구배 한국아마추어 골프선수권에서 우승한 김비오. 동아일보 DB

김비오는 신성고에 다니던 2008년 허정구배 제55회 한국아마추어골프선수권에서 우승했다. 국가대표 에이스로 이름을 날리던 그는 그해 일본아마추어선수권에서 정상에 올라 한국과 일본의 최고 권위 아마추어 대회를 연이어 제패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2010년 KPGA투어 조니워커오픈에서 우승하며 당시 KPGA투어 최연소(19세 11개월 19일) 챔피언에 등극했다. 그해 신인상 뿐 아니라 대상, 평균타수 1위까지 3관왕을 차지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2011년 미국PGA투어에서 활동하던 김비오. 동아일보 DB

2011년 미국PGA투어에 역대 한국 선수 최연소로 진출했으나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빅리그’의 꿈을 이어 가던 그는 올해 4월 KPGA투어 군산CC 전북오픈에서 7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안았다. 오랜 침체에서 벗어난 그는 경북오픈에서 시즌 2승째를 거두며 재기하는 듯 했으나 손가락 파문으로 큰 상처만 남겼다.

누구나 살면서 딱 한번 만이라도 ‘멀리건’을 쓸 수 있으면 어떨까 생각하는 후회의 순간이 있다. 김비오도 그럴 것 같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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