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선영 작가의 오늘 뭐 먹지?]가득찬 맛 안동국시, 개운한 맛 멸치국수… 마음속 허기까지 싹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입력 2019-10-03 03:00 수정 2019-10-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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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삶은 지루하지 않았고 온건한 국수는 밋밋하지 않았다. 올해 가을은 혼동과 함께 찾아왔다. 크고 작은 태풍이 수시로 위협했고 반복되는 경보와 주의보에서 가슴을 쓸어내리다가 9월이 다 갔다. 이럴 때 따끈한 국수 한 그릇을 마주하며 위로를 받는다. 고기를 구수하게 우려낸 육수, 잇몸으로 씹어도 버터처럼 녹아드는 면발, 그 위에 잘 삭힌 깻잎을 감싸 먹으면 삶에서 잃어버린 온전함을 회복하는 기분이다. 한쪽으로 삶이 치우친다 싶을 때는 할머님이 끓여 주시는 국숫집으로 찾아간다.

주머니 사정에 따라 찾는 국숫집도 따로 있다. 1만 원짜리 한 장 정도는 넉넉하게 쓰겠다 싶으면 안동국시 집으로 향한다. 한우 양지로 끓여낸 육수는 몸보신으로도 제격이다. 콩가루에 밀가루를 배합해 중면 정도로 밀어낸 면발은 쫀득하게 씹히다가도 부드럽게 녹아 들어간다. 설렁탕에 풀어 먹는 소면과 다른 느낌인 것은 깍두기보다 깻잎과 부추 무침에 더욱 잘 어울린다는 점이다. 쌉싸래한 깻잎은 고깃국의 고소함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면서 자칫 뒤따라올 수 있는 느끼함을 말끔히 털어낸다. 살짝 매콤하게 즐기고 싶을 때는 부추를 올려 먹는다.

주머니가 가벼운 날은 맘 편한 멸치국숫집으로 간다. 가격이 저렴하다고 맛이나 영양조차 저렴한 것은 절대 아니다. 멸치에서 오는 감칠맛이야말로 육수의 정점이니까. 거기에 유부와 달걀이 올려지면 한 끼 단백질로도 충분하다. 깻가루를 솔솔 뿌리고 김을 잘게 부수어 올리니 고소함이 콧구멍으로 향긋하게 들어온다. 예전에는 작은 냄비에 끓여주는 냄비우동집이 많았는데 지금은 자취를 감추어 찾기가 쉽지 않다. 안동국시가 가득 찬 맛이라면 멸치국수는 비 온 후 맑게 갠 맛이다.

서울 교대역 ‘우밀가’는 안동국시를 잘한다. 어복쟁반, 평양냉면도 유명해 저녁 술손님이 많은 곳이다. 반가 음식을 지향하니 맛도 모양새도 정갈하다. 특히 자가 제면의 장점이 돋보이는데 밀가루와 콩가루를 배합해 반죽하고 충분히 숙성시킨다. 면은 쫄깃한 가운데 부드러운 식감이며 먹고 나서도 속이 참 편하다. 육수는 한우 양지를 뭉근히 끓여내어 그 맛이 구수하다. 그런데 뭣보다 이 집을 빛나게 하는 것은 조연인 깻잎이다. 켜켜이 된장을 바르고 푸른색이 감돌도록 저며 낸 깻잎 절임은 중독성이 강하다.

청계산 ‘고씨네국수’는 아는 사람만 찾아가는 간판 없는 식당이다. 청계산 자락에 위치해 등산객들에게 사랑 받는 곳. 산자락에서 직접 농사짓는 채소는 아주머니의 손을 거쳐 바로바로 요리가 된다. 특히 멸치국수는 개운하고 시원하다. 육수에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고명이라고는 김 조금밖에 없다. 야들야들한 소면에 말끔히 젖어드는 육수의 감칠맛. 한 그릇 후루룩 먹고 나면 배는 안 부른데 마음의 허기가 채워진 기분이다. 제주의 ‘춘자멸치국수’는 양은냄비에 나온다. 이곳은 소면 대신 중면을 쓴다. 꽤 묵직한 면발이지만 숙성이 잘돼 속이 편안하다. 칼칼한 깍두기를 올려 먹으면 묵은 갈증까지 시원하게 해소된다.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nalgea@gmail.com

○ 우밀가=서울 서초구 반포대로30길 6, 안동국시 1만2000원

○ 고씨네국수=경기 성남시 수정구 옛골로 30, 멸치국수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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