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권하는 난임전문의, 광주 시엘병원 최범채 원장 “NK세포가 유산 원인? 그 불편한 진실”

최호열 기자 |

입력 2019-09-30 03:00 수정 2019-09-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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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ING&ISSUE]독서가 면역력 균형 등 난임 극복에 큰 도움
IVF(시험관아기 시술) 연간 1천 건 이상 시술
진정한 난임 극복은 임신 아닌 건강한 아기 출산


광주 시엘병원 로비는 도서관처럼 책이 많다.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서적을 최범채 원장이 구비한 것이다. 사진 지호영 기자 f3young@donga.com
“언제부터인가 국내 난임 분야에서 NK세포(Natural Killer Cell) 활성도 검사에 따른 처방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데, 이는 과잉이다. 심지어 NK세포를 ‘태아살해세포’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처구니없는 표현이다. 최근 유럽불임학회(ESHRE), 미국생식의학회(ASRM)에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는데 NK세포 수치와 활성도 검사는 면역학적으로 초래되는 유산의 진단과 치료법으로 추천할 만한 근거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런데도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이 검사법이 유행하고 있다. 생식면역학을 전공한 의사로서 이해가 안 된다.”

광주 시엘병원 최범채(59) 원장은 국내 난임전문의로는 최다(最多)인 90여 편의 생식면역학 분야 임상과 논문을 발표한 ‘연구하는 의사’로 잘 알려져 있다. 미국생식의학회, 캐나다불임학회, 일본불임학회에서 논문상을 수상한 바 있고, 국내 난임학회에서도 5차례나 논문상을 수상했다. 오늘 10월에도 필라델피아에서 열리는 2019 미국생식의학회(ASRM)에서 ‘습관성 유산 초래 원인에 단백질 분해효소 프로테아제의 역할’을 주제로 논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습관성 유산 분야에 남다른 열정을 갖고 있는 최 원장은 기자를 만나자마자 난임 의사들의 유산 진단과 치료 방식에 대해 적잖은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지난 25년간 IVF(시험관아기 시술)를 3만 회 이상 시술하며 온갖 예외적 상황을 다 겪어본 베테랑이지만 유독 면역 불균형에 대한 유산 진단과 치료 방식만큼은 지극히 원칙적인 입장을 견지한다. 의료에서 면역학만큼 공부를 할수록 정답을 찾기 힘든 분야가 없다는 게 이유다. “생명잉태를 돕는 난임 의술은 실험적 정신보다는 과학적 접근과 통계를 더 신뢰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그에게 국내 난임 의료계의 유산 치료 문제점에 대해 들어봤다.
환자들을 진료하는 최범채 원장. 사진 지호영 기자 f3young@donga.com


○ NK세포와 유산의 상관관계

―유산율이 통계상 어느 정도인가.


“초혼이 늦어지고 직장여성이 늘면서 점점 더 높아지는 것 같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통계상 직장여성 연간 유산율이 23%에 달한다. 직장여성 나이가 40세를 넘으면 75%가 초기에 유산이 된다는 보고도 있다. 여성 전체로 봐도 임신 초기 유산의 빈도는 35세부터 서서히 증가하다가 40세 이후 급격히 증가한다. 30세 이전엔 7∼15%이던 것이 40세 이상이 되면 34∼52%에 달한다.”


―유산의 원인에서 NK세포 활성화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NK세포가 무엇인가.

“Natural Killer Cell(자연살해세포)이라고 해서, 우리 몸에서 면역을 담당하는 백혈구의 일종이다. 바이러스나 종양(암세포) 같은 비정상 세포를 파괴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 몸에서 하루에 수천 개의 암세포가 발생하지만 NK세포가 이를 퇴치한다. 또한 사이토카인 등을 분비해 다른 면역세포(T세포, B세포)를 활성화시키는 역할도 한다. 고마운 면역세포다.”


―NK세포가 너무 활성화되면 착상된 배아를 적(敵)으로 여기고 공격한다고 들었다.

“잘못된 설명이다. 임신 상태에서는 태반이 태아와 모체의 면역체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해 태아를 보호한다. 물론 반복적으로 유산이 되는 여성의 자궁 영양막에 NK세포 활성이 일반 여성보다 증가되어 있긴 하다. 하지만 NK세포 활성화로 인해 유산이 된 것인지, 유산의 결과물로 NK세포가 늘어난 것인지 규명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궁내막에 존재하는 NK세포의 분포와 말초혈액에 존재하는 NK세포의 분포가 일치하지 않는다. 따라서 혈액 내 NK세포 활성화로 인해 유산이 반복되었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말초혈액의 NK세포 분포로 유산 기전을 설명하는 것은 과학적 근거가 불충분하다.”


―세계적인 난임학회에서도 그렇게 임상결과가 나온 건가.

“그렇다. 1950년부터 2011년까지 NK세포에 관한 7백83개 연구보고 중 과학적 분석을 충족한 12개 논문을 분석한 결과 말초혈액에서 채취한 NK세포 표현(phenotype)과 세포독성(cytotoxic) 검사는 습관성 유산 진단을 위한 의미 있는 검사법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난임 의사들은 NK세포 활성화 수치가 12 이상이면 유산 방지 차원에서 면역처방을 내리고 있다. 이는 과잉이다. NK세포 검사는 실험적인 차원이지 임상에서의 적용이 공인되지 않았다.”


―유산이 반복되면서 NK세포 활성화 수치가 높게 나오면 유산 방지를 위해 백혈구 주입법, 인혈청 면역글로불린 처방, 인트라리피드 처방 등을 하는 경우가 많다.

“선진국에서는 NK세포 검사가 습관성유산의 진단법으로 공인되어 있지 않다. 1999년 미국에서 ‘백혈구 주입법’이 원인불명습관성 유산환자에게 효과적 치료법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인혈청 면역글로불린 처방’도, ‘인트라리피드 처방’도 마찬가지다. 유산 경험자가 느끼는 두려움을 잠재우고 심리적 안정을 위한 것일 뿐 효과는 크게 기대할 수 없다.”


―NK세포 활성화 수치가 높아지는 이유는 뭔가.

“NK세포 수치는 언제든 높아질 수 있다. 스트레스, 생리주기, 성관계, 질염 등으로도 NK세포의 활성도가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뇌 과학자들은 웃을 일이 없어도 억지로라도 웃으라고 한다. 웃을 때 엔도르핀이 많이 나오고 면역력이 좋아지기 때문인데, NK세포가 활성화된다는 의미다. 감기나 폐렴과 같은 감염성 질환에 걸려도 NK세포 수치가 높아진다. NK세포는 우리 몸을 적(바이러스, 균 등)으로부터 지키는 임무를 수행한다. NK세포가 활성화되었다고 해서 겁낼 필요가 없다.”


○ 병원 로비 도서관처럼 꾸민 이유

―그렇다면 유산의 원인은.


“첫째, 착상 초기에 유산이 되는 것은 배아의 세포분열 실패가 대표적이다. 둘째, 임신 12주 이전에 심각한 기형이거나 염색체 이상이 있을 때 우리 몸은 유산이 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셋째, 면역학적 문제가 있으면 유산이 될 수 있다. 넷째는 부부 중 염색체 이상이 있는 경우 배아 염색체 이상으로 유산 확률이 높아진다.”


―첫 번째(부실 배아)와 두 번째(비정상적 태아) 이유에 해당되면 유산을 막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다고 봐야 한다. 진정한 난임 극복은 임신 소식이 아니라 건강한 아기 출산이다. 난임 여성들은 임신이 너무 간절해서 유산을 불행으로 생각하지만 유산이 되어야 할 태아라면 다행한 불행이라고 봐야 한다. 하지만 유산이 반복되면 자궁내막 손상이 될 수 있어서 최근에는 배아 이식 전에 염색체 등을 검사할 수 있는 착상 전 유전자 진단(PGT-A)으로 정상 수정란을 선별하는 시험관아기 시술을 권한다.”


―면역 불균형 상태이거나 각종 면역질환 환자가 유산이 잘 되는 이유는 뭔가.

“반복 유산자 중에 종종 면역검사에서 자가항체(루프스항체, 항인지질항체)가 양성인 경우가 있지만 이것이 초기 유산을 초래할 가능성은 낮다. 자가면역질환은 외부로부터 내 몸을 공격하는 항원(외부의 적)에 대항해야 할 면역세포가 오히려 내 몸의 세포나 장기를 공격하는 상황인데, 자가면역질환이라고 모두 유산을 초래하진 않는다. 따라서 무분별한 자가면역 검사(류마티스항체, 항핵항체 등)는 학술적 근거가 부족하다. 다만, 자가면역 항체 중 루프스항체, 항인지질 항체가 양성인 경우는 태반 미세 혈관벽에 손상을 주어 혈전을 초래해 정상적인 혈액순환을 방해해 유산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런 경우 면역치료(유아용 아스피린, 면역글로불린, 헤파린주사)를 받으면 유산을 막는 데 효과적이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건 모든 면역치료는 효과와 부작용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의사는) 치료 전에 환자에게 충분한 이해와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반복 유산을 막을 방법이 없는 건가.

“유산이 3회 이상 반복되면 검사를 통해 원인을 추적해야 한다. 기본검사로 호르몬검사(당뇨, 갑상선 호르몬 검사), 자궁 내 세균 감염, 자궁 해부학적 검사(자궁난관조영술, 자궁내시경검사), 자가면역 검사(루프스항체, 항인지질항체), 유전적인 혈전 검사, 부부염색체 검사 등을 추천한다. 원인불명 습관성 유산의 원인 중 40∼60% 정도는 면역학적인 기전으로 접근해야 한다. 지금까지 학자들이 끊임없이 진단법과 치료법을 제시해서 기존 이론을 뒤엎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임상적으로 적용이 되려면 국제적인 교과서(Novac’s Gynecology)에서 공인되어야 한다. 그 전에 실험적인 접근을 적용하거나 상업적으로 도입하면 안 된다.”


―유산 방지 치료와 예방에 정답이 없다니 답답하다.

“의학적 처방에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근본적으로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난임 환자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인터넷에 접속해 잘못된 정보를 접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 시집이나 고전을 읽는 게 한결 마음 안정에 도움이 된다. 면역 불균형 상태가 균형 상태로 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시엘병원 로비가 도서관처럼 책들이 많은 게 인상적이다.

“병원을 도서관처럼 꾸미고 나니 환자들 반응이 바뀌었다. 기다리면서 스마트폰 안 만지고 책을 읽고 있더라. 난임 극복에 독서가 도움이 된다. 심적으로 불안하면 호르몬 분비에서부터 불균형이 된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다스려지면 한결 편해지고 믿음이 생겨서 매사에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 좋은 책이 나오면 언제라도 사서 꽂아놓는다.”


―25년 넘게 난임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지켜온 원칙이 있다면.

“습관성 유산 환자들은 임신이 되면 기쁨보다는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우울증, 불안 증세를 나타내며 자신감을 상실하기도 한다. 그러다 강박 관념으로 공인되지 않는 진단법과 치료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하버드의대 유학시절부터 지켜온 원칙이 있다. 국제적으로 공인된 진단법으로 치료를 하자는 거다. 의사 개인적인 신념과 욕심보다는 과학적 접근이 중요하다. 그래서 결국에는 ‘최범채 원장의 진료가 옳았네’라고 인정받고 싶다.”


▼외국 의사 최초 몽골 북극성 훈장 수여▼
최범채 원장은 지난 7월 몽골 최고 명예 훈장인 ‘북극성 훈장’을 받았다.
2000년 8월에 개원한 광주 시엘병원은 연간 IVF(시험관아기 시술) 시술 건수가 1천 건 이상으로 현재까지 시험관아기 시술 건수 2만3천여 건, 출산한 아기는 8천6백여 명에 이른다.

또한 해외 진출에 성공해서 몽골, 러시아에 이어 중국 진출까지 꿈꾸고 있다. ‘몽골시엘’에서는 지난 2년간 6백여 쌍의 부부에게 새 생명 잉태의 기쁨을 안겨줘 지난 7월 몽골 차히야 바툴가 대통령으로부터 외국인 의사 최초로 몽골 최고 명예 훈장인 ‘북극성 훈장’을 받았다. ‘북극성 훈장’은 몽골 내에서 10년 이상 몽골 공공의료 발전에 혁혁한 공로가 인정되었을 때 수여하는 훈장이다.

최호열 기자 honeypa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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