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흡입독성 실험 AI 활용해 동물 희생 줄인다

김민수 동아사이언스 기자

입력 2019-09-27 03:00 수정 2019-09-2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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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희 서울시립대 교수, ‘독성 화학물 예측’ 연구 발표
데이터 모아 딥러닝으로 분석



지금까지 14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화학물질의 위험성을 온 사회가 뼈저리게 느낀 계기였다. 8월 말 열린 ‘가습기 살균제 참사 진상규명 청문회’ 등을 통해 원인이 밝혀졌듯이 문제의 물질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과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MIT)’의 흡입독성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게 근본적인 원인이다.

전문가들은 가습기 살균제 원인물질을 특정 용도에 대해서만 평가했고 흡입독성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흡입독성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화학물질에 대한 실험과 실험을 할 수 있는 인프라가 필요하다. 보통 동물실험을 통해 흡입독성을 확인하는데 이 경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게다가 독성에 대한 동물실험은 동물복지에 반한다는 이유로 금지하거나 줄이려는 게 세계적인 추세다. 2009년 유럽연합(EU)의 화장품 원료에 대한 동물실험 전면 금지와 2016년 동물실험 화장품 유통·판매를 원칙적으로 금지한 국내 화장품법 개정이 대표적인 사례다.

최진희 서울시립대 환경공학부 교수(사진)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광범위한 화학물질 데이터베이스와 미국 환경보호국(EPA)의 독성 빅데이터 ‘톡스캐스트’를 토대로 인공지능(AI) 기술인 ‘딥러닝’을 적용해 특정 화학물질의 흡입독성을 동물실험 없이 예측할 수 있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5월 미국화학회(ACS)가 발간하는 학술저널 ‘독성학화학연구’에 발표된 연구논문은 ‘케미컬 워치’ 등 화학물질 관련 주요 해외 소식지에 소개됐다.

화학물질 빅데이터와 동물실험 독성 데이터를 바탕으로 독성을 예측하는 AI가 처음 개발된 것은 아니다. 토머스 하퉁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 연구팀은 지난해 7월 EU가 규제하고 있는 화학물질 약 1만 종의 동물실험 독성데이터를 바탕으로 독성예측 모델을 만들어 국제학술지 ‘독성과학’에 발표해 반향을 일으켰다. AI를 이용하면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있다는 연구였지만 동물과 사람의 화학물질 반응 메커니즘이 다르다는 점에서 완벽하게 동물실험을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평가도 있었다.

최 교수 연구팀의 접근법은 달랐다. 화학물질과 최종 독성의 상관관계만을 분석하는 게 아니라 ‘독성발현경로(AOP)’ 개념을 접목했다. 화학물질이 흡입됐을 때 생체 내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독성이 발현되는지 단계별 메커니즘을 찾아 화학물질의 흡입독성을 예측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연구팀은 전 세계에 쌓여 있는 화학물질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해 흡입할 시 유해성이 있는 화학물질 654개를 선별하고 톡스캐스트에서 AOP와 관련된 25개의 독성 데이터를 딥러닝 알고리즘에 적용해 독성 예측 모델을 만들었다. 그 결과 10여 개의 흡입독성 유발 물질을 선별하는 데 성공했다. 흡입했을 때 어느 단계에서 어떤 메커니즘으로 독성이 발현되는지 찾아낸 것이다.

최 교수는 “우선순위 후보군으로 설정한 10여 개의 물질이 실제로 흡입독성을 유발하는지 동물실험을 통해 검증해야 한다”며 “동일한 독성 동물실험이 전 세계에서 반복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에 내놓은 연구 결과는 동물실험 자체를 줄이는 동시에 동물실험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효율화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현재 이슈로 부각된 미세플라스틱과 미세먼지에 대해서도 동일한 AOP 개념을 접목해 연구를 진행할 계획을 세웠다. 최 교수는 “화학물질 독성평가 인프라를 갖추는 데 많은 비용이 드는 만큼 데이터와 AI 기술을 활용해 동물실험을 최소화하고 효율적으로 인프라를 갖추기 위한 방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수 동아사이언스 기자 r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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