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병 어린이 웃게 한 ‘의약품 규제혁신’

전주영 기자

입력 2019-09-19 03:00 수정 2019-09-19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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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서 허가 안 난 희귀의약품, 식약처가 12세 미만도 사용 승인
정부 ‘규제신문고 우수 사례’ 선정


강형진 서울대병원 교수(왼쪽)가 지난달 19일 서울대병원에서 박모 양과 박 양의 어머니에게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사용 승인을 받은 희귀의약품 복용 후 효과를 설명하고 있다. 식약처 제공
희귀난치병을 앓는 9세 여아를 위해 식품의약품안전처(처장 이의경)가 적극 행정을 통해 희귀의약품 사용을 승인해 안정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 아동은 항암치료와 조혈모세포 이식수술을 받지 않아도 될 확률이 커졌다. 이 같은 적극 행정은 최근 식약처 자체 ‘2019년도 상반기 적극행정 우수 사례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고 국무조정실 ‘2019년 상반기 규제신문고 개선성과 주요 사례’로도 선정됐다.

18일 식약처에 따르면 중증재생불량성빈혈에 걸린 박모 양(9)은 수입 의약품 ‘레볼레이드정’을 복용해야 했다. 레볼레이드정은 수입 허가를 받은 희귀의약품이지만 소아용량은 허가가 나지 않았다. 소아용량은 저용량 정제(12.5mg)와 현탁액(12.5mg, 25mg/팩)으로 미국에서는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수입사는 시장성이 작다며 수입 허가를 받을 계획이 없었다.

국내 수입, 시판되는 레볼레이드정은 25mg, 50mg 정제다. 하지만 12세 미만은 1일 37.5mg만 복용해야 한다. 25mg, 50mg 각 1정을 반으로 잘라 복용하는 방식도 고려했지만 적은 용량 차이가 어떤 부작용을 부를지 몰라 불가능했다. 혈관 내 혈소판 수를 모니터링하며 용량을 조절해야 하는 등 용법이 까다로워 미국, 유럽에서는 정제를 자르거나 씹지 말고 통째로 삼키도록 했다.

박 양의 가족은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해 외국에서 레볼레이드정 소아용량을 바로 구매할 수 있었지만 비용이 너무 커서 포기했다. 12.5mg 정제의 경우 4주에 600만 원, 6개월에 3600만 원이나 되고 건강보험도 적용되지 않는다.

답답한 마음에 박 양의 어머니는 국무조정실 규제개혁신문고에 사정을 토로했다. 박 양이 치료를 받는 서울대병원 강형진 교수는 올 4월 병원 임상시험심사위원회(IRB) 심의를 거쳐 본인 전액 부담(보험 적용 가능)으로 해당 약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희귀·난치질환자들이 의약품을 허가 사항(효능·효과, 용법·용량 등)을 벗어나 사용하려면 각 의료기관의 IRB 심의를 거친 후 식약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혈소판 감소증 치료제 레볼레이드정. 한국노바티스 제공
식약처는 치료가 시급하다는 점을 고려해 같은 달 박 양이 레볼레이드정을 복용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기존 연구 사례를 검토해 소아 용량(12.5mg)이 아닌 국내에 시판되는 성인용 약품으로 치료받을 수 있게 했다. 해당 연구에 따르면 성인 용량(25mg, 50mg)을 격일 간격으로 복용해도 비슷한 효과가 났다. 식약처는 “복용 일정을 조정하고 혈소판 수 모니터링 대책을 마련해 복용할 수 있다”는 내용의 ‘허가 외 사용’을 승인했다.

강 교수는 18일 “6개월간 복용하고 효과를 기다려봐야 하지만 이전 비슷한 사례의 환자를 치료한 적이 있어 결과는 긍정적으로 나오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희귀·난치 질환같이 임상시험을 수행하기 어려운 경우 최신 과학지식을 활용해 환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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