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기금형 퇴직연금 경쟁 도입… 수익률 뛰어나”

윤영호 기자

입력 2019-09-18 03:00 수정 2019-09-24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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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M인베스터스 게리 위븐 前회장
기업들 기금 참여로 규모의 경제… 비용 줄이고 다양한 자산 분산투자
5년 수익률 호주 9% 한국 1.9%… 성과 나쁘면 합병 등 경쟁 시켜야


호주의 업종별 퇴직연금 기금 설립을 주도해 ‘호주 퇴직연금의 선구자’로 불리는 게리 위븐 전 IFM인베스터스 회장은 “퇴직연금은 최고의 투자 성과를 낸다는 목표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호주가 오늘날 퇴직연금 선진국이 된 것은 1980년대 호주노동조합협의회(ACTU)가 근로자들을 위한 퇴직연금 전면 도입 운동을 벌인 것을 계기로 1992년 퇴직연금 의무화가 이뤄진 덕분이다.”

6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서울파이낸스센터에서 만난 호주 자산운용사 IFM인베스터스 게리 위븐 전 회장은 “1980년대 초만 해도 호주는 공무원이나 극히 일부의 대기업 근로자만이 퇴직연금 혜택을 받았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전날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한-호주 퇴직연금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그는 1980년대 중반 ACTU 부위원장으로 퇴직연금의 기초를 닦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가 ‘산업형 퇴직연금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다.

호주는 미국 캐나다 스위스 네덜란드 등과 함께 연금 선진국으로 꼽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호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퇴직연금 자산 비중은 136%로 네덜란드(167%)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6월 말 현재 호주 퇴직연금의 5년 연환산 기준 수익률은 9.0%로 우리나라의 1.88%(지난해 말 기준)를 크게 웃돈다.

ACTU가 주도한 운동은 산하의 산업별 노조가 중심이 된 업종별 퇴직연금 기금 설립으로 결실을 봤다. 호주 근로자 10명 중 한 명이 가입한 최대의 기금 ‘오스트레일리안슈퍼’, 건설업 근로자들을 위한 기금 ‘시버스슈퍼’ 등 산업형 기금이 탄생한 것. 이들 기금을 운영하는 수탁법인 이사진은 노사 양측이 동수로 추천하는 기금 운용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다. 위븐 전 회장은 “당시 기업들은 퇴직연금 확대에 반대했지만 근로자들의 노후 소득이 안정되지 않으면 과도한 임금 인상 요구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설득했다”고 설명했다.

산업형 기금은 금융기관이 설립한 소매형 기금이나 단일 대기업 근로자들을 위한 기업형 기금 등 다른 유형의 기금보다 더 뛰어난 투자 성과를 보이고 있다. 위븐 전 회장은 그 비결로 △최고의 투자 성과를 낸다는 단 하나의 목표에 집중 △금융기관 수수료 등 비용 절감 △동일 업종 내 여러 기업이 함께 기금 설립에 참여해 규모의 경제 확보 △비상장 자산이나 인프라 자산, 글로벌 자산 등 다양한 자산에 대한 분산 투자 등을 들었다.

그의 또 다른 업적은 1990년 자산운용사 IFM인베스터스 설립을 주도한 것. 그는 20년 가까이 회장으로 재임하면서 이 회사를 인프라 투자에 강점을 가진 세계적인 운용사로 성장시켰다. 그는 “여러 산업형 기금을 한데 모아 운용하면 규모의 경제를 확보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산업형 기금 27곳으로부터 출자를 받아 IFM인베스터스를 설립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한국도 호주를 벤치마킹해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4월 기금형 제도 도입을 위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위븐 전 회장은 “우선 모든 근로자에게 퇴직연금을 확대해야 한다”고 전제한 후 “기금형은 도입 이후가 더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는 기금은 합병 대상이 되도록 하는 등 기금 간 경쟁을 촉진해야 기금 설립의 당초 의도를 제대로 살릴 수 있다는 의미다.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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