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소독하고 해외 나간 적도 없는데…’ 돼지열병, 결국 뚫렸다

세종=송충현기자 , 김소영기자

입력 2019-09-17 21:04 수정 2019-09-17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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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국내 처음으로 발생한 17일 경기 파주시 발병 농장에서 방역당국 관계자들이 살처분 작업을 하고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돼지에만 발생하는 바이러스성 질병으로 제1종 가축전염병이다. 급성형의 경우 치사율 100%로, 백신이 개발돼 있지 않아 대부분 국가에서 살처분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뉴스1

“23년간 돼지를 길렀어요. 자식 같은 녀석들을 묻는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17일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진 판정이 나온 경기 파주시 연다산동 S양돈장의 농장주 채모 씨(59)는 본보와 통화에서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채 씨는 이날 S양돈장이 방역 조치로 폐쇄된 탓에 농장으로부터 400m 떨어진 자택에서 돼지 수천 마리가 땅에 묻히는 걸 지켜봐야 했다.

이날 방역당국은 S양돈장에서 약 1.6km 떨어진 공터에 펜스를 친 뒤 굴착기 2대와 용역 인원 30명을 투입해 구덩이를 파 돼지를 묻었다. S양돈장 돼지 2450마리와 농장주가 운영 중인 다른 양돈장의 돼지까지 모두 살처분했다. 그는 “그동안 출입차량 소독도 하고 매일 농장 소독도 했는데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겨 당황스럽다”고 했다.

17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정부는 이날 채 씨가 운영해 온 돼지농장의 돼지 3950마리를 모두 살처분했다. S양돈장의 2450마리, 파평면 농장의 1000마리, 채 씨 부인 소유의 법원읍 농장 500마리 등이다. 치사율이 100%에 달하는 치명적인 돼지 전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농장주가 길러왔던 모든 돼지가 땅에 묻혔다.

ASF는 1921년 아프리카 케냐에서 처음 발견됐다. 아프리카 풍토병으로 여겨졌지만 1957년 포르투갈에서 발병하며 유럽으로 넘어온 뒤 지난해 8월 중국에 상륙했다. 이후 몽골 베트남 캄보디아 북한 등 아시아 지역을 휩쓴 뒤 한국까지 퍼져나갔다.

ASF는 멧돼지와 사육돼지 등 돼지과 동물에 의해 전염된다. 돼지의 침, 콧물, 오줌, 분변, 혈액 등에 섞인 바이러스가 주요 매개다. 살아있는 돼지는 물론 죽은 돼지고기로도 감염된다. 감염된 돼지를 충분히 가열하지 않고 조리한 잔반을 돼지밥으로 줬을 때도 전염된다.

섭씨 70도로 30분간 가열하면 사라지지만 냉동된 고기에서조차 최장 1000일까지 살아남을 만큼 생존력이 강하다. 사람은 감염되지 않지만 바이러스가 묻은 차량이나 사료, 도구 등을 통해 바이러스가 확산된 사례도 있다.

문제는 이날 확진 판정을 받은 경기 파주시의 양돈농장의 감염경로가 아직 오리무중이라는 점이다. 농장에 멧돼지 침입방지 울타리가 쳐져 있고 농장주인과 농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해외에 나간 적이 없어 당국은 감염 원인을 찾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의 국적은 ASF가 발생하지 않은 네팔로 전해졌다.

농림부는 5월 30일 중국과 접한 북한 자강도에서 ASF가 발견된 뒤 파주시를 포함해 강화군 옹진군 등 14개 북한 접경지역을 대상으로 방역과 혈청검사를 진행했지만 당시엔 이상 징후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추석을 맞아 농장에 다른 가족들이 오갔을 가능성이 있고 한강 하구와 농가가 불과 2~3km 떨어져 있어 당국은 정확한 감염 경로를 파악 중이다.

감염경로가 확실히 밝혀지지 않으면서 인근에서 양돈장을 운영하는 주민들도 불안에 떨고 있다. 파평면에서 32년째 돼지를 키우고 있는 A 씨는 “(ASF) 발병 소식 듣고 황당하고 눈앞이 캄캄했다”며 “우리에게 양돈장은 삶 그 자체인데 우리 농장으로 옮을까봐 두렵다”고 말했다.

정부는 ASF의 잠복기가 최대 20일 정도지만 4~7일의 잠복기가 가장 흔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아직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양돈농가라 해도 일주일 내에 추가로 ASF가 발견될 수 있는 만큼 전국 6300여 농가에 대해 이른 시일 내에 조사에 나설 방침이다. 일주일간 경기도에서 다른 시·도로 돼지를 반출하는 것도 금지했다. 농림부 관계자는 “농가에서 키우는 돼지에 발열 증상이 발견되면 당국에 즉시 신고(1588-4060)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세종=송충현 기자 · 파주=김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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