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건축물과 함께하는…담양에 죽녹원과 소쇄원만 있는 게 아니다

이중원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입력 2019-09-17 17:12 수정 2019-09-17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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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입구에 풀 위로 작은 다리가 있다. 이를 건너오면 경사로가 시작되고, 경사로 끝에서 회전하면 널찍한 기단이 나온다. 이곳에 서면 주변 산 능선이 시야에 들어온다

추석 연휴가 훌쩍 지나갔다. 요새는 연휴가 되면 인스타그램을 훑는다. 연휴 중에 혹시 가볼만한 곳이 없나 본다. 인스타그램 덕에 건축답사와 건축 전시회가 호황이다. 추천 따라 갔다가 사진만 못한 실물을 보고 후회하는 경우도 있지만, 간혹 사진을 훨씬 능가하는 곳도 있다.

담양에 가면 죽녹원이 있다. 우리나라 최고 대나무 숲이다. 숲에 빽빽이 선 대나무들 사이로 빛이 연두색 빗줄기가 되어 쏟아진다. 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대나무 줄기들이 서로 부딪히며 퉁퉁퉁 소리를 바람 리듬에 따라 낸다. 죽녹원은 자연은 스스로 위대한 건축임을 확인시켜 준다.

담양에는 소쇄원도 있다. 우리나라 최고 전통 계곡 정원이다. 조선 건축가 양산보는 계곡 물줄기를 따라 기단을 만들고 정자들을 짓고 담장을 헐렁하게 둘렀다. 비가 온 다음 날 소쇄원은 압권이다. 계곡에 물이 불어 정원 내 물소리가 힘차다. 또 평소에는 비어 있는 대나무 수로에 물들이 차며 졸졸졸 물소리를 낸다.

도시의 번잡함으로 잠자고 있던 몸의 감각들이 두 곳에서 꿈틀거리며 깨어난다. 그래서 연휴에 담양으로의 발걸음은 가볍다. 그런데 최근에 담양에 갈 목적이 하나 더 생겼다. 숲 속에 있는 호시담 카페와 펜션 건축(정재헌 경희대 교수 설계) 때문이다.

두 작품은 대한민국 땅의 특성을 말해주며, 그 위에 전통 건축의 지혜를 계승한 현대 건축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대한민국은 스위스나 노르웨이처럼 나라의 대부분이 산악 지형이다. 산은 건축 이전의 건축인 ‘원(元) 건축’이며, 우리가 짓는 모든 건축의 물리적 조건이다. 산은 우리 건축과 도시가 담아야 하는 조건이며, 동시에 닮아야 하는 형식이다.

전통건축은 다소 일반화해서 말하자면, 산지에 지어졌기 때문에 일종의 경사지 건축이다. 경사지에는 건물을 지을 수 없으므로 땅을 평평하게 고르는 기단은 우리 건축의 시작점이다. 우리 건축의 힘과 변화는 기단에서 시작한다. 그 다음 중요한 것은 산을 닮은 삼각지붕과 주변 산세가 대지 경계로 넘실거리며 넘어 들어올 수 있게 해주는 낮은 담장이다. 담장으로 중경을 지우고 원경과 근경을 살리는 기술은 우리 건축의 유전자다.

담양 카페는 우리 전통건축의 기단-지붕-담장의 특징을 현대적으로 재현했다. 이 건물에서 기단은 중요한 건축적 장치다. 물이 흐르고, 높이가 변하며, 바닥의 패턴이 변한다. 삼각 지붕은 담장 위로 살짝 띄웠다. 지붕 에지가 날카로워 부드러운 산세 지형과 대조를 이룬다. 담장은 일필휘지다. ‘리을(ㄹ)’자형 평면으로 끊어짐 없이 구성했다.

기단과 담장은 콘크리트로 질박하게 마감했다. 이에 반해 지붕은 골진 얇은 철판으로 마감하여 콘크리트의 두께에 대비되게 했다. 지붕을 지지하는 기둥의 개수는 최소화했다. 덕분에 지붕이 장중하게 길어 보인다. 종묘 정전의 기단과 지붕이 연상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담장은 중경을 지우고 있고, 원경과 근경에 집중토록 디자인 되어 있다. 담장 위로 산의 능성들이 원을 그린다. 이곳에서 첫 번째 울타리는 콘크리트 담장인 듯하고, 두 번째 울타리는 산인 듯하다. 담장을 넘나드는 것은 산이지만, 담장을 관통하는 것은 물이다. 카페 뒤에 있는 급수시설에서 물이 나와 풀을 만들고 천천히 담장들을 관통하며 흘러 두 정원을 지나 카페 뒤로 회수되는 방식이다. 소쇄원의 물이 연상되는 이유이다.

카페 옆에 펜션이 있다. 펜션은 카페와 유사하면서도 다르다. 유사점은 기단 활용과 산세 차경이고, 차이점은 카페가 외향적인데 반해 펜션은 내향적이다. 특히, 펜션에서 조경가 김용택의 인공 토양과 식재를 다루는 솜씨가 건축가의 솜씨와 멋진 시너지를 낸다.

건축가는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했다. 그는 르 꼬르뷔지에의 후예인 건축가 앙리 시리아니에게서 사사했다. 귀국 후 그는 전주대에서 4년간 한국건축을 강의했다. 이때 영호남 지역의 한옥들을 두루 답사했다. 역사가의 눈이 아니라 건축가의 눈으로 이들을 바라 봤다. 그의 건축에 전통건축의 지혜가 현대적으로 묻어나오는 이유다. 이제 담양에는 죽녹원과 소쇄원 말고도 볼거리가 생겼다.

이중원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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