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게인 1990’… 그 시절 그 패션이 돌아왔다

임희윤 기자 , 김민 기자

입력 2019-09-16 03:00 수정 2019-09-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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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 까talk]거리에 넘치는 ‘세기말 감성’

화려한 색상이 돋보이는 가수 룰라의 1997년 패션(왼쪽 사진), ‘청청패션’과 베레모, 타원형 선글라스로 완성한 마마무 화사의 90년대 스타일. 동아일보DB
반투명 색안경 위에 착용한 헤어밴드와 똑딱이 머리핀. 상반신에는 홀치기염색 크롭티(배꼽티)를 걸쳐 건강미와 활동성을 드러냈다. 한 손엔 형광색 파워숄더(어깨가 각진) 재킷을 들고 하의는 펑퍼짐한 배기팬츠(힙합 바지) 차림. 금방이라도 무리 지어 힙합 댄스를 출 듯하다.

1990년대 여성그룹 ‘디바’를 다시 본 이야기가 아니다. 제니, 설현, 선미, 현아 같은 아이돌 가수들의 요즘 공항 패션이나 화보 속 옷차림이다. 래퍼 비와이는 얇은 빨간 띠 로고가 선명한 벙거지 모자를 썼다.

1990년대 패션이 돌아왔다. 유별난 소수의 극한 ‘뉴트로(새 복고)’ 체험이 아니다. 올여름 배꼽티를 입은 젊은 행인들에게서 20여 년 전의 환영을 봤다면 그것은 환영이 아닌 실제다. 시내 곳곳에선 요즘 1990년대 패션 파티도 열린다.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도 1990년대생 벨라 하디드, 켄들 제너 같은 유명 모델이 약속한 듯 1990년대 스타일을 뽐내는 화보가 넘실댄다. 그 시절 그 패션은 어떻게, 왜 슬그머니 우리 곁에 다시 왔나.


○ ‘내 파티에 이승연, 문희준이?’

지난달 유명 블로거 김혜영 씨가 주최한 1990년대 콘셉트의 베이비샤워 파티 ‘83년생 김혜영’의 모습. 화려한 색상의 옷은 물론 짙은 립스틱 등 ‘세기말 감성’이 폭발했다. 참석자들은 서울 종로구 동묘시장과 SPA 브랜드 매장을 다니며 취향에 맞는 90년대 패션을 완성시켰다. 박지훈 씨 제공
블로거 김혜영 씨(36)는 최근 출산을 앞두고 지인 15명을 초대한 베이비샤워 파티, ‘83년생 김혜영’을 열었다. 드레스코드는 ‘90년대 스타일’. 초청받은 참가자들은 행사 2주 전부터 분주해졌다. 서울 종로구 동묘시장 광장시장부터 온라인 쇼핑몰까지 뒤지고 돌아다녔다. 눈길을 사로잡을 ‘그 시절 아이템’을 찾기 위해서다.

당일 파티 현장에는 어두운 색 립 라이너로 빈틈없이 입술을 채우고 베레모를 쓴 배우 이승연, 힙합 바지에 헤어피스를 단 가수 문희준이 등장했다. 물론 연예인 본인이 아니다. 1990년대의 그들을 흉내 낸 참가자들. ‘모조 이승연’은 1990년대 TV 토크쇼 ‘이승연의 세이세이세이’ 진행 당시의 스타일을 감쪽같이 재현했다.

당대의 통신기기 삐삐부터 록그룹 ‘Y2K’의 사인 CD, 루즈삭스, 헤어피스, 크롭티, 배기팬츠, 플라스틱 헤어핀과 베레모(빵모자)까지…. 이른바 세기말 감성이 폭발했다. 여성그룹 ‘샤크라’의 패션 콘셉트로 꾸며 파티에 참가한 박지훈 씨(33)는 “1990년대에 초중학생이었는데 당시에는 구매력이 없어서 해보지 못했던 루즈삭스 같은 것들을 이번에 직접 체험하니 즐거웠다. 이정현 같은 1990년대 가수를 보면 분장과 무대가 굉장히 파격적이다. 평소 무채색 옷만 입다 세기말 감성으로 꾸미니 자유로워진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 Z세대 울린 X세대 감성

패션 브랜드 마이클코어스가 11일 미국 뉴욕 패션위크에서 내년 봄·여름 컬렉션으로 선보인 물방울무늬 드레스. 뉴욕=AP 뉴시스
“캘빈(클라인)과 나 사이에 뭐가 있는지 알아요? 아무것도 없어요.”

1981년 배우 브룩 실즈가 모델로 등장한 캘빈클라인 의류 광고 문구다. 당시 15세이던 실즈가 이 문구에 맞춰 도발적 포즈를 취했는데 논란과 함께 여성성과 섹시함을 강조한 캘빈클라인의 인기도 반등했다.

38년 뒤, 캘빈클라인의 새 모델인 17세 가수 빌리 아일리시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 사람들에게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절대 알리고 싶지 않아. 그래서 나는 펑퍼짐한 옷을 입지. 아무도 그 속을 모르니까 몸매 품평을 못 하잖아. 난 내 캘빈 속에서 진실을 말해.”

근 40년 차의 두 광고는 일견 비슷해 보이지만 내면은 판이하다. 전자가 사회가 만든 전형적 여성상을 강조했다면 후자는 개성과 다양성을 내세운다. 1980년대의 레이거노믹스와 보수적 분위기를 1990년대 X세대가 자유와 개성으로 탈피하려 한 움직임이 패션에 남아 Z세대에 울림을 주는 형국이다. 최근 소셜미디어에서는 1990년대 TV 뉴스 화면 속에서 배꼽티를 입은 여성이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좋거든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화제가 됐다.


○ 친숙함과 과감함 사이

1990년대 패션 붐은 업데이트나 재해석이 아닌 동일 재현으로 가고 있다. 패션 회사들도 적극적이다. 프라다는 얇고 붉은 띠 모양 로고인 리네아 로사를 부활시키고 당시 유행한 나일론 백팩을 그 모습 그대로 재출시했다. 타미힐피거도 1990년대의 로고 장식을 다시 사용한다.

과장된 색채 등 맥시멀리즘의 이면에 담백한 미니멀리즘이 공존한 것도 1990년대 패션의 강점으로 꼽힌다. 진정아 더블유 매거진 디지털 에디터는 “(고 존 F 케네디 2세의 부인) 캐럴린 베셋케네디, 모델 케이트 모스가 1990년대에 보여준 정제되고 담백한 스타일이 현재 스타일리시하게 받아들여진다. 첨단 경향을 과하게 좇는 것을 촌스럽게 생각하는 20, 30대에게 1990년대 문화는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친숙함이 있다. 1960∼80년대 패션에 비해 동시대와 접점이 많고 실용적이란 점도 90년대 패션의 매력이다”라고 했다.

임희윤 imi@donga.com·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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