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선계현]“열악한 수도사업 환경에 관심을”

선계현 한국상하수도협회 상근부회장

입력 2019-08-26 03:00 수정 2019-08-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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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계현 한국상하수도협회 상근부회장

유니세프에 따르면 오염된 물로 인해 목숨을 잃는 어린이가 하루 800명에 이른다. 콜레라, 설사병, 기생충 감염 등 수인성 질병으로 회복이 어려운 신체·인지적 손상을 입은 5세 미만 어린이는 1억5600만 명이다. 미얀마, 아프가니스탄, 예멘 등 분쟁 지역에서 폭력보다 오염된 물로 인해 사망하는 아동이 3배 정도 많다.

좀처럼 믿기 어려운 이야기다. 하지만 세계 인구의 30%는 오염된 물로 생존하고 있다.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북한 주민 3분의 1은 오염된 식수 사용으로 고통받고 있다. 국제사회가 안전한 물에 대한 접근을 인간 생존의 ‘기본권’으로 규정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상수도 보급률 99%.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수도꼭지만 틀면 깨끗한 수돗물이 흘러나오고, 정수처리 기술 일부 분야에서 세계기술을 선도하는 대한민국이지만 우리 역시 물로 인한 고통이 없지 않았으며 일부는 현재 진행 중이다.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 사고로 온 국민이 놀랐다. 몇 해 전부터는 기후변화로 가뭄이 반복되면서 안정적인 수량 확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며, 4대 강의 보와 녹조 영향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먹는 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물과 관련한 사회적 합의가 진행됐으며, 수질·수량·수생태계 통합 관리와 복원 노력이 가속화됐다.

그런 가운데 5월 30일 공촌정수장 수계 전환 과정에서 20년 이상 노후 관로 등의 문제로 인천 일부 지역에서 발생한 ‘붉은 수돗물 사태’는 앞서 그 어느 사고보다 상황이 안 좋았다. 여타 사고들이 상당 부분 우발적 또는 불가역적 상황에 기인한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오랜 환부가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번 사고는 노후시설 개선을 위한 예산 미확보와 수도요금 현실화 부족,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지역별 차등 상황에서 매뉴얼의 표준화 미흡, 지방자치단체 사업으로만 치부되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이중 가장 큰 논란의 핵심은 운영 인력의 전문성 부족에 따른 ‘인재(人災)’라는 것이다.

한국상하수도협회는 수도법에 따라 정부와 수도사업자인 전국 171개 지방자치단체, 공단·공사, 학회, 기업, 전문가 등 1000개 회원사와 함께 활동하고 있다. 회원과의 소통이 가장 중요한 기능인데, 협회 사무국이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 중 하나가 “현장에서 관심받지 못하는 상하수도 업무, 담당 인력 운영의 개선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상하수도 시설은 대부분 지하에 매설돼 있거나 외진 곳에 있다. 24시간 교대, 비상 시 주말 출근, 오지 근무와 주말 부부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열악한 경영 환경에 있는 기업들과 함께 부족한 예산으로 신설 및 보수 공사를 진행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명감 하나로 열심히 뛰어도 칭찬받거나 승진하는 경우는 많지 않고, 문책이나 징계받을 사안이 아니면 주목하지 않는다. “국민 기본권 사수를 위해 함께 뛰자”는 말이 공허할 수 있음을 느끼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 국민의 기본 생존권이며 국민을 위한 가장 보편적 복지라 할 수 있는 수도 사업의 문제점을 정확히 진단해 이를 바탕으로 관련 정책과 제도를 개선하고, 적시 예산 투입과 전문 인력이 강화될 수 있는 변화가 필요하다.

정부에서 붉은 수돗물 사태에 대한 해결책 마련을 위해 유관 기관, 각계 전문가와 시민 단체 등과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새삼스럽지만 물의 소중함에 대해, 그리고 그 물을 대한민국의 모든 수도꼭지에 전달하기 위해 오늘도 묵묵히 일하고 있는 상하수도인들에 대한 관심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선계현 한국상하수도협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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