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도-온도 치밀한 ‘데이터 사육’… 특허 메주 만든 애그테크

옥천=김자현 기자 , 하동=최혜령 기자 , 주애진 기자

입력 2019-08-13 03:00 수정 2019-08-13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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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팜, 농촌의 4차 산업혁명] <2> 농업-기술융합 미래 여는 청년들

창농에 도전한 청년 농부들이 자신만의 아이디어에 기술력을 더해 성과를 내고 있다. 여진혁 씨(왼쪽 사진)는 스마트팜으로 ‘꽃벵이’를 키웠고 건강즙을 파는 이정호 씨는 동영상 플랫폼을 통해 소비자에게 다가가고 있다. 옥천=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이정호 씨 제공
충북 옥천군 동이면에서 꽃벵이(흰점박이꽃무지 유충) 농장 ‘여가벅스’를 운영하는 여진혁 대표(36)는 하루 한 번 이상 컴퓨터로 사육실의 온도와 습도 변화 데이터를 확인한다. 8일 오후 여 대표는 컴퓨터로 간밤에 온도와 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됐음을 확인하고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가벅스는 사육실에 설치된 가습기, 히터, 환풍기 등을 스마트폰과 연동해 원격 조종할 수 있는 스마트팜이다.

농업(Agriculture)에 기술(Technology)을 결합한 ‘애그테크(AgTech)’로 미래를 찾는 청년 농부들이 늘고 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억대 매출을 이룬 이들의 성공비결을 들어봤다.


○ 스마트기술로 ‘특허 메주’ 개발한 청년 농부


여 대표는 서울 토박이에 해외 유학파다. 25세에 캐나다로 가서 비즈니스마케팅을 공부했다. 한국에 돌아온 그의 눈에 들어온 건 곤충산업이었다. 캐나다에서 만난 부인과 함께 아무 연고가 없던 옥천으로 내려와 꽃벵이 농사를 시작했다. 꽃벵이 유충 10kg을 분양받아 농장 운영을 시작한 초기엔 시행착오가 많았다. 스마트팜을 도입한 덕분에 추위와 건조함에 민감한 꽃벵이를 일정한 크기로 키울 수 있었다. 남는 시간은 상품 연구개발과 마케팅에 쏟아부었다. 그 덕에 지난해 콩 대신 꽃벵이를 이용한 동물성 단백질로 발효식품인 메주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해 특허를 출원했다.

꽃벵이를 키우는 충청지역 청년 농부들이 중심이 돼 지난해 초 설립한 충청곤충산업협동조합은 여 대표가 성공적으로 농장을 운영하게 해준 1등 공신이다. 서로 설비, 마케팅, 가공에 대한 정보를 공유했다. 여기서 정보를 얻은 여 대표는 직접 스마트 설비들을 설치해 비용을 4분의 1 수준으로 줄였다. 조합이 운영하는 가공시설에서 꽃벵이 환, 진액, 분말 등을 만들어 공동 브랜드를 붙여 팔고 있다. 여 대표는 “한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여섯 사람이 머리를 맞댄 덕분에 해낼 수 있었다”고 했다.


○ ‘저온 보관 종이박스’에 넣어 신선 배달

경남 하동군 악양면에서 ‘에코맘의 산골이유식’을 운영하는 오천호 대표(38)는 자신만의 아이디어에다 스마트 기술을 더해 성과를 냈다. 서울에서 죽집을 운영했던 오 대표는 사업이 어려워지자 2011년 고향인 하동으로 내려왔다. “아기 이유식이니 죽에 간을 하지 말아 달라”고 했던 한 손님의 부탁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2012년 창업했다.

지리산에서 나는 친환경 농산물을 주원료로 썼다. 맑은 지리산 약수에 방사유정란, 하동 솔잎한우, 하동 유기농 쌀 등 112가지 농수산물을 사용해 이유식을 만들었다. 매일 1만 명분의 주문을 미리 받아 조리하고 포장한 뒤 24시간 안에 배송했다. 이유식을 포장하는 용기로는 환경호르몬 의심물질이 나오지 않아 젖병 재질로 널리 쓰이는 비스페놀A 프리 용기를 사용했다. 내부에 보랭(保冷)재를 붙여 신선하게 배송하는 택배 종이박스는 특허도 받았다.

입소문을 탄 산골이유식은 매년 성장했다. 2013년 8명이었던 직원은 올해 52명으로 늘었다.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을 비롯해 11개 백화점과 아웃렛에도 매장을 냈다. 지난해 매출은 70억 원, 누적 고객은 10만 명을 넘어섰다.


○ 온라인 마케팅으로 건강즙 판로 개척


강원 홍천지역 농산물로 칡즙, 도라지즙 등 각종 건강즙을 파는 ‘파머대디’의 이정호 대표(39)는 과거 소셜커머스 플랫폼을 운영해본 경력을 활용했다. 직접 운영하는 블로그와 포털사이트의 동영상 플랫폼을 통해 제품을 만드는 과정이나 먹는 방법 등을 설명하며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전략을 썼다. 그가 판매하는 건강즙과 직접 키워 파는 감자, 옥수수 등 농산물의 90% 이상을 온라인을 통해 팔고 있다.

이 대표는 2014년 서울에서 운영하던 한정식 가게를 접고 귀농했다. 몇 차례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5년 만에 연매출 5억 원의 실적을 냈다. 그는 창농을 하려면 교육이나 실전 경험을 충분히 쌓아야 한다고 했다. 시장 분석과 마케팅도 강조했다. 그는 “새로 농업에 뛰어든 청년 농부에겐 기존 판로를 뚫는 것이 쉽지 않다. 살아남기 위해선 끊임없이 시장 트렌드를 분석하고 온라인 마케팅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성공적인 창농을 꿈꾸며 농촌에 정착하는 20, 30대 청년 농부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30대 이하 귀농 인구는 2013년 1174명에서 지난해 1365명으로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다. 하지만 막연한 환상만으로 도전해서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이 청년 농부들의 조언이다. 자신만의 기술과 아이디어를 갖고 도전한다면 농업은 가능성이 큰 청년 일자리의 보고(寶庫)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기웅 순천대 농업경제학과 교수는 “새로 농업에 뛰어드는 청년들은 스마트 기술을 활용하고 생산과 유통의 혁신을 이루는 차별화 전략을 써야 한다”고 했다.

옥천=김자현 zion37@donga.com / 하동=최혜령 / 주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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