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변동에 잠시 눈감고… 글로벌 분산투자에 눈떠라

윤영호 기자 , 이건혁 기자 , 김형민 기자

입력 2019-08-10 03:00 수정 2019-08-1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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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락 증시에 애태우는 DC형 퇴직연금 가입자들의 대응법

국내 한 금융회사 박모 차장(44)은 요즘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가 가입한 DC(확정기여)형 퇴직연금 때문이다. 올 들어 코스피와 코스닥지수가 계속 하락세인 데다 5일에는 폭락장까지 나타난 ‘검은 월요일’을 맞은 영향이 크다. 박 차장은 주식형 펀드에 적립금의 70%를 배분해놓은 퇴직연금 수익률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7일 현재 그가 적립한 금액은 약 3700만 원이지만 평가액은 이보다 적은 3600만 원 정도다.

충남 천안의 한 중소기업 직원 강모 씨(35) 역시 DC형 퇴직연금 가입자. 그러나 박 차장과 달리 그는 요즘 상대적으로 태연한 편이다. 시중은행과 저축은행의 정기예금으로 퇴직연금 적립금을 굴리고 있어 시장의 변동성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는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원리금 보장상품으로 운용해 온 게 차라리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 증시가 급락세를 보이면서 스스로 적립금을 운용해야 하는 DC형 퇴직연금 가입자 두 사람의 반응이 엇갈렸다. 노후 생활의 마지막 보루가 무너지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떠는 박 차장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고 원금 보존에 안심하고 있는 강 씨가 느긋하게만 있어도 될까.

전문가들은 현재 박 차장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인내심이라고 말한다. 강 씨에게는 구매력 감소 리스크에 노출돼 있어 결코 안심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 떨어지는 칼날을 잡아라!

무엇보다 퇴직연금은 장기간 투자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단기적인 시장 변동에 지나치게 예민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스스로가 DC형 퇴직연금 가입자이기도 한 키움투자자산운용 퇴직연금컨설팅팀 민주영 팀장은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시장은 하락장 뒤에 반등하게 마련이어서 장기 투자자가 승리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DC형 퇴직연금은 주가 하락기에는 적립식 투자와 같은 효과도 얻을 수 있다. 투자 재원이 가입자의 퇴직연금 계좌에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회사 부담금이기 때문이다. 일정한 금액을 주기적으로 투자하는 적립식 투자의 경우 주가 하락시엔 저가 매수로 이어져 평균 매입 단가를 낮출 수 있다. 당연히 장기 수익률에서 매입 단가가 높은 경우보다 유리하다.

그러나 지금 같은 시기에 DC형 퇴직연금 가입자가 인내력을 발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떨어지는 칼날을 맨손으로 잡는 격이기 때문이다. DC형 가입자들의 투자자 수익률은 이런 행태를 잘 보여준다. 현실적으로 펀드 투자자는 시장이 좋을 때 투자했다가 하락하면 빠져 나가는 경향이 있어 총수익률을 그대로 얻기 힘들다. 총수익률이란 시간이 경과하면서 얻게 되는 것으로, 자산운용사나 펀드 평가회사에서 발표하는 수익률을 말한다.

투자자들에겐 총수익률보다 ‘투자 자금을 언제 펀드에 넣었고 그 자금으로 얼마를 벌었는지’를 나타내는 투자자 수익률이 중요하다. 퇴직연금펀드 가운데 일부는 투자자 수익률이 총수익률보다 낮다. 펀드 평가사 모닝스타코리아 정승혜 리서치담당 이사는 “아직도 일부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시장의 변동에 휘둘리면서 단기 투자를 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국내자산에만 다걸기하면 안돼

한국 경제는 수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미국과 중국의 무역·환율전쟁, 일본의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배제 조치 등 대외 환경 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비중은 전 세계의 2%도 안 되는 수준이어서 퇴직연금 적립금을 국내 자산에만 다걸기(올인)하는 것은 분산 투자가 될 수 없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투자운용팀장을 지낸 홍춘욱 박사는 “국민연금이 최근 10여 년 간 6%대의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는 이유는 달러 표시 채권, 선진국 주식, 국내 채권, 국내 주식 등에 분산투자했기 때문”이라면서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참고할 만한 포트폴리오 전략”이라고 말했다.

분산 투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자산배분 조정 작업. 가령 위의 네 가지 자산 군(群)에 각각 25%씩 투자하기로 했다면 항상 같은 비중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물론 모두가 공포에 질려 시장을 빠져 나가는 상황에서 쉬운 일은 아니다. 홍 박사는 “국민연금이 폭락장에서 주식 매수에 나서는 것도 ‘미운 주식에 떡 하나 더 주자’는 전략에 따른 것이고 그 덕분에 지금까지 안정적인 수익률을 기록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감한 저가 매수 전략도 나쁘지 않다는 조언이다.


○ 구매력 감소는 또 다른 리스크

지난해 말 현재 DC형 퇴직연금(가입자 10인 미만 기업에 적용하는 DC형인 기업형 IRP 포함) 적립금은 전체 적립금(190조 원)의 26.1%인 49조7000억 원. 이 가운데 원리금 보장상품 비중은 84.1%인 41조8000억 원이다. 가입자 스스로 적립금을 운용해야 하지만 강 씨처럼 금융지식 부족 등의 이유로 예적금 등 원리금 보장상품에 묻어둔 경우가 많다.

KG제로인 연금연구소 김성일 소장은 “원리금 보장상품은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 수익률은 마이너스일 수 있기 때문에 명목상 수익을 올렸다고 해도 실질적으로는 원금 손실을 본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장기에 걸쳐 투자해야 하는 퇴직연금은 물가 상승에 따른 구매력 감소 위험을 방어할 수 있는 수익률을 올려야 한다는 의미다.

윤영호 yyoungho@donga.com·이건혁·김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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