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도 문화재도 하지 말고 작품만” 어머니의 당부 따른 ‘실그림’ 작가의 꿈

김지영 기자

입력 2019-08-09 16:12 수정 2019-08-09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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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인숙 씨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전통자수를 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면서 “전통자수 기능공은 그 한 분야에 통달한 장인이고 나는 늘 역발상으로 새로운 것을 창작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기 때문에 예술인이라고 불리길 원한다”고 말했다. 김동주기자 zoo@donga.com
손인숙 씨(69)의 자수 전시회가 9월 스위스 제네바 극동박물관에서 열린다. 한불 수교 130년을 기념해 2015년 프랑스 국립 기메박물관에서 전시회를 개최해 주목받은 그다. 서울 강남구 개포로의 한 아파트에서 최근 만난 그는 전시 준비에 한창이었다.

자신의 자수 작품들을 모은 아파트 1층은 작은 박물관과 다름없었다. 유명한 신윤복의 ‘미인도’가 벽에 걸려 있었다. 붓이 아니라 실로 짜인 그림이다. 손 씨는 “내 작품은 자수보다는 ‘실그림’으로 불리는 게 맞다”면서 “실그림은 창작적 사고를 담은 파인 아트 개념”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전통적인 자수 명인이 아니라는 얘기다. “전통자수 기능공은 화첩으로 내려오는 도안을 따라 생활소품에 사용하지만 나는 감성과 내면의 세계를 실그림으로 그리는 것”이라면서 “늘 새로운 것을 창작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기 때문에 예술가로 불리길 원한다”고 밝혔다. 그는 “재료와 기법에 얽매이지 않고 창작하고자 하는 내면을 무엇이든 표현해낼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연인의 길’을 예로 들었다. 분홍 노랑 하양 꽃들로 가득한 양재천을 수놓은 이 작품을 두고 “밑그림도 없이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표현해낸 회화 자수”라고 밝혔다. “마음이 맞는 친구와 자주 만나 양재천을 걷는데 그 친구와 함께 걷는 시간이 늘 따뜻하고 즐거워 이런 마음을 실그림으로 남겨놓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손 씨가 안내한 안쪽 방에 놓인 작품에도 예술가로 불리고자 한다는 그의 바람이 깃들어 있다. 가로 2.1m, 세로 2.5m 크기의 장(欌)이다. “처음엔 내가 그동안 만들어온 다양한 작품을 보관하는 ‘집’을 만들고자 하는 단순한 열망에서 시작됐는데 작업을 진행하다 보니 영역이 확대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에 얹혀진 지붕엔 용, 장 아래쪽엔 해태 조각이 새겨졌다. “처마엔 248개의 연화문양을 실그림으로 그려 넣었다. 건축물 전체에 만들어진 문이 96개다. 장 앞과 뒤는 물론 문 안쪽과 지붕 위까지 실그림을 수백 개 넣어 완성했다.” 그가 자신의 작업에 대해 “단순히 자수틀에 수만 놓는 게 아니라 내가 디자인한 큰 그림을 여러 영역의 파트너와 함께 만들어내는 종합예술”이라고 밝힐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손인숙 씨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전통자수를 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면서 “전통자수 기능공은 그 한 분야에 통달한 장인이고 나는 늘 역발상으로 새로운 것을 창작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기 때문에 예술인이라고 불리길 원한다”고 말했다. 김동주기자 zoo@donga.com
실제로 손 씨는 자수, 조각, 배접, 백골(자수틀), 옻칠, 침선, 매듭, 장석(목가구에 부착하는 경첩 등 금속) 등 8개 분야의 전통 장인들과 30년 넘게 한 팀으로 작업하고 있다. 그는 이들과 함께 목공예, 목가구, 함, 병풍 등 장르를 넘나드는 자수 작품을 만들어 왔다. 손 씨는 “각기 다른 분야의 장인들과 협업하면서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 힘들기도 했었다”고 돌아보면서 “그러나 돌이켜 보면 어려움을 어렵게 느낀 적이 없어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려울수록 더 좋은 작품이 탄생한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자수에 몰입할 수 있었던 자신의 삶은 어머니에게 빚졌다고 그는 돌아본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손 씨의 어머니는 틈날 때면 자수를 놓곤 했다. 손 씨도 어머니를 따라 열 살 때부터 실과 바늘을 잡았다. 딸의 솜씨를 눈여겨 본 어머니는 소질을 계발시키고자 딸에게 종종 숙제를 내줬다. “사과를 그리라던 숙제가 생각납니다. 평범한 사물을 그리는 게 아니었어요. 사과를 위에서 또 옆에서 보고, 빛에 비춰서 보고, 잘라놓고 보고… 사과 한 알도 얼마든지 다채롭게 그릴 수 있다는 걸 알려주셨지요. 창의적인 교육을 하신 겁니다.”

이화여대 자수과(섬유예술학과)에 입학해 본격적인 자수의 길에 들어선 그에게 어머니는 “미래엔 문화전쟁이 온다”면서 “교수도 하지 말고 인간문화재도 하지 말고 작품만 만들어라, 한국의 문화를 세계 최고로 만들어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작품 열 개를 하면 한 개만 보여라. 어설프게 나오지 말아라”라는 것도 어머니의 당부다. 그 말을 따라 그는 환갑이 다 되도록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고 작품에만 몰두했다고 했다. 아내의 작업을 이해한 남편은 사업으로 얻은 수익을 아낌없이 투자했다. “가족의 응원과 지원, 친정과 시댁의 인정과 지지가 고맙다”고 그는 말했다. 2009년 작품을 모은 아파트 1층을 공개하고 사람들과 교류하면서야 차츰 이름이 알려졌다. 2013년 소피 마카리우 기메박물관 이사장이 전시를 제안하면서 그의 자수 작품은 유럽에도 알려지게 됐다.

멀리서 보면 얼핏 붓으로 그린 그림으로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가는 실로 짜인 작품이다. 그 자신 ‘실그림’으로 부르지만 단순히 실로 표현한 회화를 뜻하는 단어는 아니라고 했다. “실그림은 물감으로 펼쳐내는 회화와 다릅니다. 실그림은 다양한 색감과 재질로 표현할 수 있고 실의 꼬임도 특징이어서 질감이 물감보다 훨씬 입체적이고 부드럽습니다. 비단실에 조명이 비치면 보는 각도에 따라 작품의 밝기가 달라집니다. 실은 나무나 도자기 등 다양한 오브제와 콜라보레이션으로 작업할 수 있는 무한 가능성의 소재이기도 하고요. 이것이 자수의 한계를 뛰어넘는 지점입니다.”

김지영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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