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도체에 敗戰” 日은 칼을 갈았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 도쿄=김범석 특파원 , 조유라 기자

입력 2019-08-06 03:00 수정 2019-08-07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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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 리셋하는 일본]<1>아베의 한국 때리기, 왜?
전자분야 밀리자 타격 방법 궁리… 아베 독주속 경제보복으로 현실화


일왕이 교체되는 신시대 레이와(令和)를 보름도 남기지 않은 올해 4월 18일. 새로운 미래에 대한 기대에 가득 차 있던 일본 국민에게 충격을 준 언론 보도가 나왔다. 요미우리신문은 헤이세이(平成)를 마감하는 기획특집 시리즈로 일본 전기(電機·전자기기) 제품의 흥망을 다뤘다. 헤이세이가 시작되고 1년 뒤인 1990년, 세계 반도체 시장 톱10 중 일본 회사가 6개였다. NEC와 도시바(東芝)가 각각 세계 시장 점유율 7.9%, 7.7%로 세계 1, 2위였다. 히타치(日立)의 한 엔지니어는 “한국 삼성? 안중에도 없었다. 경쟁사는 도시바와 NEC였다”며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2018년 일본 회사는 톱10에서 모두 사라졌다. 삼성전자(15.5%)가 1위, SK하이닉스(7.6%)가 3위로 올라섰다. 요미우리신문은 ‘전기 패전’이라는 제목으로 세계 반도체 시장 변화와 일본의 후퇴에 따른 충격을 전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지난달 4일부터 반도체 소재 등 3개 품목에 대한 한국 수출 규제 강화에 나선 배경에는 이런 일본의 충격도 깔려 있다. 일본 외교 소식통은 5일 “주한 일본대사관에 근무했던 고위 관료가 ‘한국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타격 방법은 반도체 분야를 규제하는 것’이라고 경제 관료들에게 자주 말했다”고 전했다.

그런 한편으로는 올해 11월 전후 최장수 집권 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일강 독주가 본격화되고 있다. 정치적 자신감을 바탕으로 ‘정경분리’ 원칙을 깨뜨리면서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에 나서는 움직임이 ‘과거에 알던 일본’과 다른 행태로 비치는 것이다. 이렇게 장기적으로 개헌과 보통국가라는 목표로 한 걸음씩 나서면서 한일 관계나 주변국 관계를 무시하는 행보는 점점 강화되고 있다.

▼日, 한국 급속성장에 초조감… 아베, 경제 무기화로 역습 나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관저병(官邸病)’에 걸린 것 같다.”

일본 정계에서 이런 말이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 관저병은 총리 집무실인 ‘관저’와 ‘병’의 합성어로 총리 권력이 강할 때 흔히 걸린다는 병이다. 아베의 1강 독주가 오래되면서 몸에 쓴 정보를 외면하고, 정치인과 관료들은 총리의 뜻에만 맞춰 ‘손타쿠(忖度·윗사람이 원하는 대로 알아서 행동함)’를 한다는 얘기다. 상황이 심각해질 땐 이미 손쓸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 견제 세력이 없는 아베 총리는 전례 없이 강한 톤으로 한국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한국이 일본과 어깨를 겨눌 정도로 경제 성장을 한 것도 ‘한국 때리기’의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정치적 불만으로 경제적 보복에 나서는 행보는 과거 일본의 모습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접근법이다.


○ 경제적 초조감과 한국 견제

2000년대 초반 삼성전자의 한 홍보담당 임원은 “삼성전자가 소니 실적을 앞질렀다는 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기자들에게 요청했다. 영업이익은 소니를 앞질렀지만 여전히 소니로부터 배워야 할 기술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당시엔 가전 기술은 일본 의존적이었다. 일본에 고개를 숙여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한일 간 경제 격차는 최근 크게 줄어들었다. 과학기술, 인력, 노동기술, 정부지원제도 등을 종합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2019년 발표한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한국(28위)은 일본(30위)을 추월했다. 2010년 이래 이어지던 일본의 추락세가 굳어지는 건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을 맺을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08달러에 불과해 900달러인 일본에 크게 뒤졌다. 하지만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을 보내는 사이 한국 경제는 급속히 성장하면서 2000년 그 격차는 3.2배로 줄었다. 지난해 한국의 1인당 GDP는 3만1362달러(27위)로 3만9286달러의 일본(24위)을 바짝 뒤쫓고 있다.

도쿄, 오사카 등지에서 열리는 혐한시위 때 일본 우익세력은 “한국인이 일본에 와 좋은 일자리를 모두 차지하고 있다. 한국인은 돌아가라”고 외쳤다. 한국의 경제 성장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이다. 아베 정권이 국내외 지식인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강화 조치에 나선 것은 이런 ‘한국에 대한 경계감’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일강 독주와 손타쿠

“일본 국민의 마음을 짓밟는 전시로 유감이다.”

가와무라 다카시(河村たかし) 나고야 시장은 5일 아이치현문화예술센터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에 대해 이처럼 말하며 전시 중지를 합리화했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속죄하는 마음 없이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로 다 해결됐는데 왜 시비를 거느냐’는 투의 언급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정확하게 아베 총리의 속마음과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아베 총리는 2013년 4월 국회에서 “침략에 대한 정의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하며 일본의 침략 사실을 부정하면서 한국에 대한 과거와 다른 행보의 포문을 열었다. 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도 부정했다. 그러면서 학교에서도 정부 방침대로 교육하라고 지속적으로 강요했다.

과거엔 아베 총리가 속마음을 겉으로 드러내면서 국내외의 질타를 받은 일도 있다. 이젠 측근과 각료들이 알아서 손타쿠를 하고 있어 직접 손에 피를 묻힐 필요가 없어졌다. 2017년 초 아베 총리 부부가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는 모리토모(森友), 가케(加計) 등 각종 학원 비리가 터져 아베 정권이 코너에 몰렸다. 하지만 ‘관료들이 손타쿠를 해 스스로 부정을 저질렀고, 아베 총리는 몰랐다’고 결론 내리면서 위기에서 벗어났다.

각료들도 마찬가지다. 2017년 8월 외상이 된 고노 다로(河野太郞) 의원은 한국과 인연이 깊은 ‘친한파’다. 1993년 군 위안부 존재를 인정하고 사과한 ‘고노 담화’의 주역인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관방장관의 아들이다. 하지만 그는 외상이 된 이후 강경 자세로 돌아섰다.

한국에 2차 경제 보복을 한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더 올랐다. NHK는 2∼4일 18세 이상 일본인 225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 지지율은 49%로 3주 전 조사 때의 45%보다 4%포인트 높아졌다고 5일 보도했다. 응답자의 55%는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 것에 대해 ‘지지한다’고 답했다.


○ “악화된 한일 관계, 끝까지 간다”


문재인 대통령이 “외교의 장으로 돌아오라”고 하고, 최근 청와대에서 고위 인사를 두 차례 파견하며 강제징용으로 생긴 갈등을 해결하고자 노력했지만 아베 정권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 이유에 대해 아베 총리의 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자민당 간사장 대행은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위안부 문제는 2015년 12월 한일 합의로 이미 다 끝났는데 한국에서 정권이 바뀌면서 없던 일이 됐다. 외교의 장에서 뭔가 협의하면 다음 정권이 또 밀실야합이라고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외교적으로 한일 관계를 이른 시일 안에 풀기가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 셈이다.

도쿄=박형준 lovesong@donga.com·김범석 특파원 / 조유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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