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마다 체감온도 다른데… 기상청은 ‘33도 폭염특보’ 일괄 발령

강은지 기자 , 최혜승 인턴기자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입력 2019-08-06 03:00 수정 2019-08-06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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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에 ‘맞춤형 폭염예보’ 절실
창문 없는 집-도심 빌딩 사이 등 주변 환경 따라 온도 차이 커
지형-인구분포-도시화 등도 영향
야외근로자 위한 폭염 영향 예보 눈길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앞에서 국립기상과학원 연구원이 이동형 관측차량으로 측정한 지열과 복사열, 태양열, 습도, 바람 세기 등을 확인하고 있다. 국립기상과학원과 한국외국어대 등이 참여한 연구진은 도심 열섬 현상의 특성을 파악한 뒤 효과적인 기온 저감 방안을 찾을 방침이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밖은 바람이라도 불지…안은 더워요.”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의 쪽방촌에서 만난 김용수 씨(74)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김 씨가 있던 쪽방은 3.3m²(1평) 남짓. 어른 두 명이 앉으면 남는 공간이 없을 정도로 좁았다. 한쪽에는 휴대용 가스버너와 선풍기, 소형 냉장고, TV 등이 붙어 있었다. 창문이 없어 방 안에 들어간 지 1분도 안 돼 코와 이마에 땀이 맺혔다. 이날 서울은 낮 최고기온이 27.5도에 60mm가량의 비까지 내려 더위가 한풀 꺾였지만 김 씨의 방은 선풍기가 향하는 곳을 제외하면 후끈했다.

기상청은 낮 최고기온이 33도를 넘기는 날이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면 ‘폭염특보’를 발령한다. 발령 기준은 기상청에서 측정한 온도다. 그러다 보니 김 씨의 집처럼 여름철 쪽방은 늘 ‘폭염특보’ 상태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가 2016년 8월 이곳의 온도를 측정한 결과, 바깥 기온은 26.5∼35.6도였지만 방 안은 30.5∼38.8도였다. 이곳에 사는 홀몸노인 20명을 조사한 결과 70%가 어지러움과 두통, 무력감과 호흡곤란 등의 건강 이상을 호소했다. 이에 폭염 발령 기준을 다양화하고 폭염 대응도 맞춤형으로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맞춤형 폭염 대책 절실

“지금 지표면에서 50cm 높이 온도는 37.5도, 1.5m 높이는 36.8도네요. 지표면은…우아, 50.9도예요.”

5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의 기온을 체크하던 한국외국어대 대기환경연구센터 연구원의 입에서 탄성이 나왔다. 약 1km 떨어진 서울기상관측소에서 측정한 당시 온도는 35.3도였지만 빌딩과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도심의 기온과는 차이가 컸다.

국립기상과학원과 한국외대, 서울기술연구원, 공주대, 강원대, KT는 5일부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상청 측정값과 실제 온도 차이를 확인하고 있다. 열섬현상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이동형 관측차량으로 도로의 온도와 바람 등을 측정하고, 모바일 관측 장비를 실은 이동형 카트로 사람들이 다니는 도로를 매 시간 돌아다니며 측정했다.

박문수 한국외대 대기환경연구센터장은 “키가 작은 어린아이들이 걸으며 느끼는 열기는 예보된 기온과 다를 수밖에 없다”며 “살수차가 지나간 직후나 쿨링포크(대기 중에 인공 안개처럼 물을 뿌려 온도를 떨어뜨리는 장비) 사용 직후의 온도도 측정해 온도 저감 효과를 함께 확인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역 간에도 기온 차이가 존재한다. 지난해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이 인구 대비 온열질환자가 많이 발생한 곳을 조사한 결과 전북 임실군(1만 명당 44.5명)의 발병률이 가장 높았다. 이어 전남 신안군(28.5명) 고흥군(20.6명) 보성군(18.3명) 장성군(17.6명)의 순서였다. 폭염일수는 서울이나 대구가 훨씬 많았지만 온열질환자 발병률은 이와 비례하지 않은 것이다. 폭염에 취약한 고령 인구가 많고 농업 종사자가 많은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환경부가 1일 발표한 전국 229개 기초단체의 2021∼2030년 폭염위험도 평가 결과도 이런 점을 고려해 지역별 평균기온 상승 등 위해성과 고령화 등으로 인한 노출성, 도시화 비율 같은 취약성 등 3개 지표를 기초로 했다. 지역별 기온은 물론이고 지형, 인구 분포, 주요 산업, 도시화 정도, 보건시설 유무 등에 따라 폭염 위험성이 어떻게 다른지 지방자치단체가 알고 맞춰서 대비해야 한다는 취지다.


○눈길 끄는 폭염 영향 예보

지난해 폭염이 자연재난에 포함되는 등 폭염에 의한 위험성이 커지면서 기상청은 6월부터 ‘폭염 영향 예보’를 시작했다. 기온이 높아지면 농·수산업에 피해가 발생하고, 야외근로자의 건강 이상 등 산업에도 영향을 끼치는 만큼 일 최고기온에 따른 폭염특보를 발령할 때 분야별 영향 수준도 함께 알리겠다는 취지다. 현재는 보건, 축산업, 산업, 교통 부문의 위험 수준을 초록, 노랑, 주황, 빨강으로 나눠 표시하고 있다. 빨간색일수록 해당 부문에 폭염이 미치는 위험 수준이 높아 대비를 잘해야 한다는 의미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개개인이 느끼는 온도지수를 더 정교화하려는 노력도 진행되고 있다. 국립기상과학원에서는 한국형 인지온도를 개발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인지온도는 단순히 온도계에 기록된 기온뿐만 아니라 공기 중 습도, 노면에서의 바람, 지표면에서 반사되는 복사열, 옷을 입어서 얻는 쾌적성 등을 모두 고려한 폭염진단지수다. 하종철 국립기상과학원 응용기상연구과장은 “해외에서 활용되는 인지온도를 그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습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여름철 기온 특성 등을 반영한 인지온도를 개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는 남성을 기준으로 한 인지온도를 개발 중인데, 향후 성별과 연령별 차이를 고려한 인지 온도도 개발할 계획이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최혜승 인턴기자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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