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교사 바꿔달라” 교장에 압력 넣는 학부모들

최예나 기자

입력 2019-08-06 03:00 수정 2019-08-06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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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 자녀 ‘생활지도’ 문제 삼아… 변호사 동원해 소송 위협도
교사 병가 형식 바뀌는 일 많아
교육계 “잦은 교체땐 불신 커져… 교장이 바람막이 역할해야”


올해 1학기 말 수도권 A초등학교는 2학년 담임교사 한 명을 교체했다. 여름방학을 코앞에 둔 시점이었다. 학교 측은 의아해하는 학생들에게 “선생님이 아파서 병가를 갔다”고 말했다. 담임교사가 병가를 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학부모 몇 명이 수차례에 걸쳐 교장에게 “담임을 바꿔 달라”고 요구한 탓이다.

학부모들은 담임교사의 ‘생활지도’를 문제 삼았다. 이따금 교사가 학생들을 조용히 시키려고 목소리를 높였는데, 이에 깜짝 놀란 한 아이의 부모가 교장에게 민원을 제기한 것이다. 다른 학부모 5, 6명도 함께 “담임으로서 부적절하니 교체하라”고 요구했다. 자녀들에게는 “담임교사 말을 듣지 말라”고 시켰다. 견디지 못한 교사는 교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알아서 처리하라’는 식의 반응이 돌아왔다. 학부모들 요구는 점점 거세졌다. 결국 교사는 병가를 냈고 다른 교사가 담임을 맡았다.

과거에는 교사가 3월 새 학기에 반을 배정받으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1년 동안 담임을 맡았다. 간혹 담임이 바뀌는 건 건강상 문제가 있을 때였다. 하지만 요즘은 학부모 민원 때문에 담임교사가 바뀌는 일이 잦다. 대부분은 초교에서 벌어진다. 어린 자녀가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를 무조건 담임교사 탓으로 돌리는 일부 학부모 때문이다.

5일 서울교사노동조합에 따르면 올 1학기에만 A초교 말고도 담임 교체 때문에 상담을 요청한 교사가 여러 명이다. 박근병 서울교사노조 위원장은 “정확한 수치를 밝힐 수는 없지만 담임 교체와 관련한 상담이 많이 들어온다”며 “어떤 초교에서는 올 1학기에 담임 교체가 2차례나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에도 올 1학기에 담임 교체를 둘러싼 정신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초교 교사의 상담이 이어졌다. 접수된 사례 중에는 담임교사가 폭력적 성향의 아이를 혼자 앉게 하자 “아이에게 낙인을 찍었다”며 담임 교체를 학교에 요구한 학부모가 있었다. 학생이 온도계를 던져 깨뜨리자 담임교사가 큰 조각을 치우고 학생에게 작은 것을 스스로 치우게 했는데 “다른 학생들 앞에서 수치심을 줬다”며 담임 교체를 말한 경우도 있었다. 아이가 “학교 가기 싫다”고 하자 담임의 정서적 학대를 주장하며 담임 교체를 요구하기도 했다. 학생끼리 다툼이 발생하자 “생활지도를 잘못한 탓”이라며 담임 교체를 주장한 경우도 있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대부분의 학교는 쉬쉬한다. 담임 임명 권한을 가진 교장들은 “학부모가 언론 제보나 교육청 민원까지 언급하며 교체를 요구하면 적극적으로 방어하기 힘들다”고 호소한다. 담임을 바꾸기 위해 변호사까지 동원하는 경우도 있다. 법적 대응을 거론해 학교 측을 압박하는 것이다. 서울의 한 변호사는 “초교 담임교사의 자녀 괴롭힘 문제를 형사고소까지 가지 않아도 해결할 수 있다”며 학부모들을 상대로 홍보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교장은 손쉬운 담임 교체를 선택하는 것이다. 강제로 담임 교체가 이뤄지기 전, 정신적으로 지친 담임교사가 병가를 내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교육당국은 현황 파악도 못 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소송이 진행되면 교육청에 반드시 보고해야 하지만 담임 교체는 교장 권한이라 보고 의무가 없다. 학교 입장에서는 감추고 싶은 일이라 조용히 처리한다”고 말했다.

교육계에서는 잦은 담임 교체가 교사는 물론이고 학생에게도 좋지 않다고 지적한다. 일부 문제가 있는 담임교사도 있지만 담임과 학생 사이 갈등을 무조건 교체로만 해결하면 교육에 대한 불신만 커지기 때문이다. 교사들이 담임 맡기를 꺼리는 환경에서 기피 현상이 더 심해질 거라는 우려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교사와 학부모의 상호 신뢰가 필요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교장의 적극적인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담임교사에게 객관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교장이 학부모 민원에 끝까지 막아서야 한다”며 “이런 일로 힘들어하는 교사는 교육청 교원치유지원센터에서 상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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