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선영 작가의 오늘 뭐 먹지?]고소하고 쌉싸름한 여름맛, 들기름막국수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입력 2019-08-02 03:00 수정 2019-08-02 03: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서울 서초구 청류벽 ‘들기름 막국수’. 임선영 씨 제공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비 내리고 날이 더우면 하루를 보내는 일이 수월치 않다. 골목길에 가득한 고소함. 막국수 집에서 이번 여름에 내놓은 들기름막국수가 주범이었다. 사장은 매일 아침 들깨로 기름을 짰다. 손님이 주문하면 메밀가루를 반죽하기 시작해 국수를 뽑았다. 들기름막국수는 장마철을 맞아 엄청난 잠재력을 터뜨렸다. 흐느적거리는 사람들을 부지런하게 막국수 집으로 걸어가게 했고 입맛이 없다던 사람들도 마지막 기름 한 방울까지 남기지 않고 쓱쓱 비벼 먹게 만들었다.

들기름막국수를 먹을 때면 공기를 느낀다. 힘들이지 않아도 유동적으로 비벼지는 국수와 기름, 그 사이를 움직이는 손과 팔이 우아해지고 그 느낌에 머물고 있는 사이 구수한 향이 공기로 스며온다. 국수를 먹는 동안에도 온전히 감각 속에 빠져들 수 있다. 순도 높은 메밀면은 질깃하지 않고 지그시 씹히는데 그 안에서 유전자로부터 기억하는 듯한 고귀한 쌉싸름함이 스멀스멀 찾아온다. 이 향의 흐름은 이윽고 들기름에게 마술처럼 낚인다. 메밀면과 들깨는 서로 뒤엉키면서 하나의 생명체처럼 조화로운 결합 구조를 이루어 간다. 메밀면은 들기름을 부르고 들기름은 메밀면을 다시 활기차게 만든다. 만약에 메밀면 대신 밀면이나 쫄면을 넣는다면 이런 유려한 흐름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최근 주목받기 시작한 들기름막국수가 맛있으려면 육수나 비빔장에 의지하지 않고, 면은 면대로 들기름은 들기름대로 제대로 뽑아내야 한다. 일단 이 두 가지의 완성도가 높으면 독특한 느낌과 익숙한 향미로 빠른 시간에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다.

들기름막국수의 제맛을 알고 싶으면 고기리막국수에 가봐야 한다. 들기름막국수를 2012년부터 시작해 알음알음으로 유명하게 만든 원조다. 섬세한 메밀의 맛과 들기름의 조합이 완성도가 높은 곳이다. 통메밀을 직접 매장에서 제분해 날아가기 쉬운 메밀의 향을 고스란히 잡았다. 냉면용 메밀가루를 가져다 쓰는 식당과는 차원이 다른 면 씹는 멋을 전해 준다. 면의 본질에서부터 막국수의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운 곳이다.

청류벽은 순면에 그날 식당에서 착유한 들기름을 쓴다. 신선한 들기름을 쓰기 위해 매장에 아예 착유기를 설치했다.

선바위메밀장터도 들기름막국수를 시작했는데 수년간 유명했던 명태회냉면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순면 위로 참깨가 쏟아지니 메밀보다는 깨 향이 강하고 손님들이 아쉬울까 하여 삶은 계란 반 개를 올려준다. 절반 정도 먹은 후에 채소 육수를 더하면 물막국수로 변신한다.

○ 고기리막국수: 경기 용인시 수지구 이종무로 119, 들기름막국수 8000원

○ 청류벽: 서울 서초구 서초대로74길 29 1층, 들기름막국수 1만 원

○ 선바위메밀장터: 경기 과천시 뒷골로 5-7, 들기름막국수 9000원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nalgea@gmail.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