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中압박 위해 WTO 흔들기… 한국, 농산물시장 불똥 우려

세종=최혜령 기자 , 뉴욕=박용 특파원

입력 2019-07-29 03:00 수정 2019-07-29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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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도국 지위 규정 수정 요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0일 내로 개발도상국 지위 규정을 개정하도록 세계무역기구(WTO)에 최후통첩을 하면서 국제사회에 파장이 예상된다. 미국의 가장 큰 목적은 최대 경쟁국인 중국을 압박하는 것이지만 한국도 개도국 지위를 주장하는 부자 나라 중 하나로 언급되면서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 당장 농산물 보호에 발등의 불


한국은 지금까지 WTO에서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면서 농업 분야에서 큰 혜택을 받아왔다. 최대 1조4900억 원까지 지급할 수 있는 쌀 변동직불금과 상대적으로 높은 관세 등 보호조치를 총가동해 국내 농가의 낮은 경쟁력을 보전하고 외국 농산물의 수입을 막을 수 있었다. WTO 협정에 따르면 개도국이 우대받을 수 있는 조항은 선진국으로 수출할 때 관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일반특혜관세제도(GSP)를 비롯해 총 150여 개에 이른다.

한국은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할 당시 국제사회에서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당시는 농업 이외의 분야에서는 개도국 특혜를 받지 않겠다고 회원국들을 설득해 지금까지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이 혜택을 계속 유지하는 게 만만치 않은 상황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은 OECD 회원국, 주요 20개국(G20) 회원국, 세계은행 분류 고소득국가, 세계 무역량의 0.5%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 등 4가지 기준에서 어느 하나라도 속하면 개도국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은 이 4가지에 모두 해당된다.

한국이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면 쌀(513%) 등 핵심 농산물의 고율 관세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고 농업 보조금도 감축 대상이 된다. 다만 미국의 압박에도 컨센서스 방식으로 운영되는 WTO가 개도국 지위 관련 규정을 전면 개정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관세와 농업 보조금 감축 등을 논의하는 농업협상이 사실상 중단됐기 때문에 앞으로도 의미 있는 논의가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 “미국의 WTO 무력화 의도” 분석도


미국의 이번 조치는 30, 31일 중국 상하이에서 개최될 예정인 미중 고위급 무역협상을 앞두고 나왔다. 미국은 중국이 세계 최대 수출국으로 성장했는데도 시장 개방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비난해 왔다. 28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는 미국에 대해 “정상적인 국제무역 질서에 대한 도전과 무시”라며 “미국이 고위급 무역협상을 앞두고 위협과 압박이라는 수작을 부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의 행보가 WTO의 기능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라는 분석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WTO가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와 정부 보조금 지급 등을 방관하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WTO의 무력화 작업은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를 비판하며 국제 여론전을 펼치고 있는 한국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미국은 WTO 상소기구의 재판관에 대한 임명을 거부하고 있다. 올해 말 WTO 재판관 2명의 임기가 끝나면 상소기구 재판관은 1명만 남게 돼 정족수를 채우지 못한다. 한국의 뜻대로 일본 수출 규제 문제를 WTO 차원에서 해결하는 것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세종=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 뉴욕=박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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