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WTO 개도국 지정 개혁 지시…한국도 거론해 향후 파장 예상

뉴욕=박용 특파원

입력 2019-07-28 16:03 수정 2019-07-28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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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이 시장 개방 의무를 회피하는 데 이용한 개발도상국(개도국) 지위 규정을 90일 내로 개정하도록 세계무역기구(WTO)에 사실상 ‘최후통첩’을 했다. 이는 미·중 무역협상을 앞두고 중국을 겨냥한 조치이지만 이 과정에서 한국도 개도국 지위를 주장하는 부자 나라 중 하나로 거론해 향후 파장이 예상된다.

● “WTO 시스템 망가져” 개혁 지시

트럼프 대통령은 26일(현지 시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들이 WTO 규칙을 피하는 특혜를 받기 위해 개도국이라고 주장하면서 WTO는 망가졌다. 더는 안 된다. 오늘 나는 미 무역대표부(USTR)에 이 국가들이 미국을 희생해 WTO 시스템을 속이지 못하도록 조치하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USTR에 WTO 개도국 지위 규정의 개혁을 지시하는 내용의 문서에 서명했다. 그는 이 문서에서 “WTO는 일부 회원국들이 국제 무역에서 불공정한 이익을 얻게 하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낡은 이분법에 계속 의존하고 있다”며 “USTR은 WTO 규정 및 협상에서 유연성을 얻기 위해 개도국으로 선언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가용한 수단을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 “90일 내에 개혁 없으면 미국 일방 조치”

WTO의 개도국 지위 규정에 따르면 회원국은 시장 개방 조치에 대한 유예나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는 개도국을 선언할 수 있다. WTO 165개 회원국 중 약 150개 국가가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도국의 경우 공산품과 농산물에 대한 관세 인하 등 시장 개방에서 예외를 인정해주고 WTO 분쟁 해결 과정에서도 배려를 받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WTO가 90일 내에 이 개도국 지위 규정을 바꾸지 않으면 미국이 일방적으로 일부 국가에 대한 개도국 지위 인정을 철회하겠다고 위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서에서 “USTR이 90일 내로 이런 변화를 달성하기 위한 근본적인 진전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한다면 USTR은 부적절하게 개도국으로 선언한 WTO 회원국을 더는 개도국으로 대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WTO에 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거나 주요 20개국(G20) 회원국인 국가, 세계은행이 고소득 국가로 분류하거나 세계 상품 교역의 0.5%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를 개도국에서 제외할 것을 요구했다.

● 미중 무역협상 앞두고 중국 압박

이번 조치는 30~31일 중국 상하이에서 개최될 예정인 중국과의 고위급 무역협상을 앞두고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WTO 규칙 준수에 대한 무시가 억제되지 않고 계속될 수 없다. 중국이 이 점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다”며 중국을 겨냥했다.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금융 통신 등의 시장을 개방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이 이후 세계 최대 수출국으로 성장했는데도 시장 개방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비난해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중 무역협상 직전 나온 이 조치는 중국 정부가 미국산 상품을 더 구매하겠다는 새 조치를 약속하고 외국 기업을 위해 자국 시장을 더 자유화하도록 압박하는 데 목표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중국을 압박하고 WTO 개혁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해석하고 있지만 한국 등 중국 이외 국가의 개도국 지위까지 문제 삼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서한에서 “브루나이 홍콩 쿠웨이트 마카오 카타르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 등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 기준 세계 10대 부자 나라 중 7개국이 개도국 지위를 주장하고 있다. 멕시코 한국 터키 등 G20 회원국이자 OECD 회원국인 나라들도 이 지위를 주장한다”고 언급했다.


● 한국 개도국 지위, 일본 수출규제 여론전에 불똥

미국의 압박에도 컨센서스 방식으로 운영되는 WTO가 개도국 지위 관련 규정을 전면 개정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자의적으로 WTO가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개도국 대우를 취소하더라도 기존 합의나 관세나 무역 쿼터 등에 대한 즉각적인 영향은 크지 않다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어업용 면세유 등 수산보조금 제한을 위해 WTO 회원국 간 현재 진행 중인 협상 등에서는 중국 한국에 대한 개도국 지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산파 역할을 한 다자간 국제무역 질서인 WTO 분쟁 조정 시스템을 무력화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도 커질 수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건 트럼프 대통령은 WTO가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와 정부 차원의 보조금 지급 등을 방관하고 미국의 관세 부과 등의 조치를 제한하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WTO 분쟁 조정 절차의 무력화는 일본의 대(對) 한국 수출규제 조치를 비판하며 국제 여론전을 펼치고 있는 한국에도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WTO 상소기구의 재판관에 대한 임명을 거부하고 있다. 올해 연말 WTO 재판관 두 명의 임기가 끝나면 상소기구 재판관은 1명만 남게 돼 정족수를 채우지 못한다. WTO 분쟁 조정 기능이 사실상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

뉴욕=박용 특파원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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