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팬클럽과 왜 차별하나요”… 성난 팬덤, 일부는 ‘탈덕’까지

신규진 기자 , 임희윤 기자

입력 2019-07-27 03:00 수정 2019-07-2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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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아이돌 기획사와 팬클럽, 치열한 줄다리기 왜?

“다른 거 바라는 건 없고요…. 강다니엘!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25일 오후 5시 서울 광진구의 공연장 ‘예스24라이브홀’ 앞. 서예진 양(18)의 외침에 동료 강다니엘 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연장 외벽에 걸린 초대형 포스터 사진 속 강다니엘의 얼굴이 이들을 말없이 굽어보고 있었다.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이 말은 최근 아이돌 팬덤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금언이다. 팬과 아이돌 사이에 가요기획사가 있다. 아이돌과 전속 계약을 맺고 대개는 그들을 키워낸 회사다. 팬과 기획사. 둘 사이에 줄다리기가 치열하다. 때로 고성이 오간다. 정작 역학구도의 중심에 있는 아이돌 멤버들은 대개 고고한 백조처럼 말을 아끼며 활동에 정진하는 것처럼 보인다. 맹목적 추종의 시대는 갔다. 발언하고 행동하는 팬덤, 거대 연예기획사의 줄을 당기는 이들의 변화상을 들여다봤다.



○ 전우 같은 팬덤… 함께 말하고 함께 싸운다


서로를 전우처럼 느꼈다. 반년 가까운 강다니엘의 공백기에 팬들은 각개전투식 활동을 벌였다고 했다. 그룹 ‘워너원’에서 솔로로 전향한 뒤 공식 팬클럽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트위터, 포털사이트 카페, 소속사 팬 페이지로 소통했다. 특히 트위터에 ‘강다니엘 음원총공팀’ ‘강다니엘 이벤트팀’ 등 계정을 만들어 팬들의 단체 행동을 독려하는 게시글을 꾸준히 올렸다. 일부 팬들은 그의 “선한 이미지”를 위해 컴백에 맞춰 121만725원(12월 10일 강다니엘 생일과 7월 25일 컴백일을 조합한 숫자)을 모아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에 전달하기도 했다.

팬들에게는 불안과 기대가 혼재했다. 가요기획사 때문이다. 부산에서 올라왔다는 김모 양(19)은 “소속사 분쟁 등 안 좋은 일이 있었던 만큼 팬들이 소속사의 향후 계획이나 활동 방향에 민감해한다. 그래도 강다니엘이 대표로 있는 회사다 보니 믿고 맡겨 보자는 의견도 많다”고 했다. 김모 씨(23·여)는 “첫 솔로 활동이고 신생 소속사라서 팬들의 지원이 중요하다. 국내 팬과 만남만 자주 가진다면 기꺼이 굿즈(관련 상품) 충성 고객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국내 팬과 만남만 자주 가진다면.’ 김 씨의 말은 세계로 무대를 넓힌 케이팝 시장 상황에서 팬들이 느끼는 불안감을 잘 담고 있다.

연습생을 발굴하고 그룹을 만들어준 소속사에 느끼는 팬들의 감정은 미묘하다. 애증이다. 불만이 터져 나오는 시점 역시 미묘하다. 성공 가도를 탈 때, 즉 한국 시장에 주력하던 데뷔 초기를 지나 팬덤이 전 세계로 확장되는 시기다. 그룹의 해외 공연과 팬 미팅이 잦아지고 ‘본진’을 비우는 날이 많아질 무렵.

이름처럼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팬덤, ‘아미’도 예외가 아니다. 방탄소년단의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15일 “앞으로 팬클럽 모집 형태를 상시 모집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빅히트는 “매년 일정 기간에만 가입할 수 있었던 기수제 방식에서 벗어나 언제든 팬클럽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상시 회원을 모집하는 방식으로 변경됐다”고 공지했다. 특정 기간에만 가입할 수 있었던 팬클럽의 진입장벽을 낮추겠다는 취지다. 이로써 기수제 팬클럽 모집은 지난해 4월 ‘아미 5기’를 끝으로 사라지게 됐다.

지난달 출시한 팬 소통 애플리케이션 ‘위버스’, 상품 판매 앱 ‘위플리’에 가입한 팬들에 한해 3만3000원의 가입비를 내면 누구나 언제든 방탄소년단의 글로벌 팬클럽에 가입할 수 있다. 글로벌 아미에 속하면 콘서트 예매 기회나 팬 전용 상품 구매 가능 혜택을 누린다.

기존 아미에 가입한 일부 팬들은 반발했다. 그간 피, 땀, 눈물을 흘려온 국내 원조 팬들을 무시한 처사라는 것. 글로벌 팬클럽이 시행되면 한국 공연 예매도 해외 팬들과 동일선상에서 경쟁을 벌여야 하는데 이것이 역차별이라는 주장이다. 일부 팬들은 ‘팬 기만 빅히트, 상시모집 폐지하고 한국 팬 차별을 중지하라’는 성명문을 내고 “일본이나 미국 등 한국보다 콘서트 개최 횟수가 많은 국가와 비교해 한국 아미들이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8월부터 4월까지 진행한 월드 투어 ‘러브 유어셀프’ 기간 동안 한국에선 2번, 일본에선 9번의 콘서트가 개최됐다.

때로 국제 정세 긴장은 정부와 정부가 아닌, 팬덤과 팬덤 사이에도 발생한다. 서울의 아이돌 공연장에서 중화권 팬들의 무질서가 언쟁으로 불거진 일도 있다. 일본 팬덤과의 반목도 오래된 이야기다. 최근에는 일본 불매운동 등 한일 정세 악화까지 겹치면서 일촉즉발의 기세다.

아미 일각에서는 글로벌 팬클럽과 별개로 일본만 독자적 팬클럽이 운영되는 것에 대해 “특별대우”라는 비판이 나온다. 박모 씨(25·여)는 “BTS는 매번 발표하는 앨범마다 일본어 버전을 만들어 공연을 했다. 공연 횟수나 빅히트의 친일본적 행태를 보고 팬들 사이에선 ‘한국어를 쓰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올 정도”라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본에서만 열리는 방탄소년단 악수회에 참가하기 위해 친지의 일본 주소로 일본 아미에 가입하는 한국 팬들도 상당수다. 한 대형 기획사 관계자는 “아이돌 그룹들이 노래를 일본어로 따로 녹음해 발표하는 것은 보아, 카라 등 그간 일본 시장을 공략한 한국 가수들의 성공 사례를 따라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공연이나 이벤트를 일본에서 특히 자주 여는 것은 친밀도를 중시하고 관련 상품 구매에 더욱 적극적인 일본 특유의 팬 문화를 감안한 활동”이라고 귀띔했다.



○ 빈발하는 해시태그 전쟁… SNS도 발언권 확장에 한몫


빅히트가 공지에 넣은 ‘여러분 한 분 한 분 모든 행동은 방탄소년단의 이미지와 추후 활동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마저 반발을 샀다. 일부 팬은 ‘알계’(익명 계정)를 만들어 ‘#팬클럽_운영방식_피드백해’라는 해시태그(#) 운동을 벌이고 있다.

‘원조 아미들’의 반발은 역설적으로 그들의 유별난 충성심에서 나온다. 공식 팬클럽은 아니지만 아미의 필수 코스인 포털사이트 팬 카페 회원 가입 절차만 해도 문턱이 높았다. ‘아파트(AFAT·Army Fancafe Admission Test)’라 불리는 가입 시험은 ‘아미 고시’로까지 불린다. 그룹의 활동상 전반을 달달 욀 정도가 아니면 통과가 힘들다. 그렇게 한솥밥을 먹은 유대감은 진입 문턱만큼이나 높다.

공식 소통 앱이 생기니 팬 카페의 역할이 사라진다고 아쉬움을 토로하는 팬들도 많다. 3년 차 팬인 한모 씨(24·여)는 “재수하면서까지 힘들게 ‘아미 고시’를 통과해 일원이 됐는데 갑자기 그 메리트가 없어졌다. 문제를 풀기 위해 열심히 찾고 뒤적이던 추억을 그리워하는 팬들이 많다. 진입장벽이 낮고 질서가 없으면 쉽게 분열되는 팬클럽이 될 것”이라고 했다.

상당수 팬은 기수제 폐지를 반기기도 한다. 직장인 이선민 씨(26·여)는 “1년에 한 번 팬클럽에 가입할 수 있다는 기존 방식은 팬층을 지속적으로 확장해야 하는 아이돌 그룹 특성에 맞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2년 차 팬인 김모 씨(24·여)도 “조금이라도 BTS에 대해 관심이 있으면 누구나 팬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오죽하면 아미들에게 ‘카르텔’이라는 말까지 나왔겠느냐”고 말했다.

SM엔터테인먼트는 22일 엑소의 일본 공연 문제로 한 차례 홍역을 치렀다. 이날 발표한 투어 장소에 12월 미야기현의 공연장이 포함된 게 발단이다. 엑소엘(엑소 팬) 일부는 이곳이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발생 지역과 가까우며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를 취하고 있는 지역이라며 ‘멤버들을 진정 아낀다면 보내지 말라’고 반발했다.

트위터에는 ‘#SM_엑소_미야기콘_취소해’ 해시태그 달기 운동이 번졌다. 여기 동참한 한 팬은 “멤버들의 건강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일정을 강행하는 것은 아이돌 그룹을 소속사의 전유물로 보는 행위”라고 반발했다. 미야기현 공연을 환영하는 일본 팬과 반대하는 한국 팬이 트위터에서 다투는 일도 빈발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상황을, 아미와 비슷하게 일본 팬덤이 특별대우를 받는다고 여기는 한국 팬덤의 ‘한’이 쌓이고 쌓여 이번 이슈와 함께 터진 것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아이돌 그룹 데뷔를 위해 팬들이 소속사를 압박하는 일도 생긴다. 19일 종영한 엠넷 ‘프로듀스X101’의 투표 조작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일부 팬들은 그룹 ‘엑스원’에 참여하지 못한 9명의 차상위 연습생을 데뷔시키기 위해 분투한다. 가상의 그룹명 ‘바이나인(BY9·Be Your 9)’과 로고까지 직접 제작했다. 이들은 각기 다른 연습생 소속사에 e메일을 보내 “그룹 결성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프로듀스…’ 투표 조작 의혹 진상규명위원회에 참여한 강연지 씨(22·여)는 “납득할 수 없는 결과를 받았기에 팬들이 자발적으로 나서는 건 당연하다. 촬영 기간 동안 집중 트레이닝으로 실력과 감을 쌓은 만큼 빨리 무대 위에 올려야 한다”고 했다.

소속사에 대한 불신과 실망은 종종 ‘탈덕(팬 활동을 그만둠)’으로까지 이어진다. ‘번개장터’ 온라인 사이트엔 ‘탈덕’하려는 팬들의 중고 거래가 활발하다. 2016년부터 세븐틴 팬클럽 ‘캐럿(CARAT)’에서 활동했던 이모 씨(21)는 최근 트위터를 통해 앨범, 포카(포토카드), 멤버 포스터 등 30만 원 상당의 물품을 판매했다. 그는 “언제부턴가 기획사 ‘플레디스’가 해외 시장을 우선시하게 됐다. 다음 달 컴백하자마자 한국 콘서트 3일을 제외하고 월드투어에 나서는데 일본에선 공연도 10번이나 한다. 멤버들이 미운 게 아니라 소속사가 팬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보는 것 같아 ‘탈덕’을 결심했다”고 했다.

팬들의 적극적 행동과 발언은 업계에 긍정적인 신호로 비친다. 근년에 젠더 이슈가 불거진 데 즈음해 팬덤의 비판의식도 높아졌다. 웹진 ‘아이돌로지’의 미묘 편집장은 “케이팝의 이전 세대에서는 팬클럽이 수동적이었다”면서 “당시엔 기획사가 지침을 하달하거나 공식 팬클럽과 지역 팬클럽이 위계 구조로 움직이기도 했다. 기획사가 팬의 의견을 묵살하기도 일쑤였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새 분위기는 판이해졌다. 미묘 편집장은 “10대 위주이던 케이팝 팬덤의 연령대가 다양화되고 SNS라는 발언 창구가 발달하면서 팬덤에서도 ‘할 말은 해야겠다’는 분위기가 폭증했다”고 했다. 아이돌과 그 기획사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에서 적극적 발언과 참여로 팬덤의 행동 양태가 크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규진 newjin@donga.com·임희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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