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의료-블록체인-자율주행… 활짝 아닌 살짝 열린 규제자유특구

김호경 기자 , 박성민 기자 , 조윤경 기자

입력 2019-07-25 03:00 수정 2019-07-2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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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구 7곳 첫 지정… 규제 58개 풀려

강원도에 사는 고혈압, 당뇨 환자는 앞으로 재진부터는 의료기관에 가지 않고도 집에서 의사의 진단과 처방까지 받을 수 있게 된다. 전남에서는 초소형 전기자동차의 교량 통행이 처음으로 허용된다. 부산에서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막혀 사업화가 사실상 불가능했던 블록체인 기술을 수산물 이력 관리와 관광 서비스에 활용하게 된다. 문재인 정부의 규제혁신 방안인 ‘규제 샌드박스’를 지역 단위로 확장한 ‘규제자유특구’가 첫발을 뗐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문 대통령이 강조해온 ‘과감한 방식과 혁명적 접근’에 못 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정부 “규제개혁 첫 단추 끼웠다”

규제자유특구위원회는 23일 이낙연 국무총리가 주재한 회의에서 규제자유특구 7곳을 지정했다고 24일 밝혔다. 규제자유특구는 △강원 ‘디지털헬스케어’ △대구 ‘스마트웰니스’ △경북 ‘차세대 배터리 리사이클링’ △부산 ‘블록체인’ △세종 ‘자율주행’ △충북 ‘스마트 안전제어’ △전남 ‘e모빌리티’ 등이다. 최종 심의에 오른 후보지 8곳 중 보완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울산(수소차)을 제외한 7곳이 모두 특구로 지정됐다.

규제자유특구에서는 앞으로 최소 2년간 지방자치단체가 정한 분야와 관련한 규제가 면제되거나 조건부 예외로 인정받는다. 이번에 풀린 규제는 총 58건이다. 기존 규제와 관련 법령 미비로 발목이 잡혔던 신기술과 신산업 분야의 ‘테스트 베드’가 생긴 것이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23일 브리핑에서 “특정 지역에서 신산업 관련 덩어리 규제를 완화하는 첫 단추를 끼웠다”고 강조했다.

부산에서는 블록체인을 활용해 수산물의 이력을 관리한다. 블록체인은 위조와 변조가 불가능하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개인정보보호법에 막혀 활용이 어려웠는데 이번에 사업화 길을 터준 것이다. 세종에서는 자율주행 버스의 시험 운행이 단계적으로 가능해진다. 경북에서는 고부가가치 친환경 산업으로 주목받는 전기차 폐배터리 재활용의 규정을 마련하기 위한 테스트가 진행된다.

정부의 연구개발(R&D) 지원과 세제 혜택도 제공된다. 지자체는 1회 연장 시 최대 5년까지 규제자유특구 지위를 누릴 수 있다. 정부는 향후 5년간 규제자유특구 7곳에서 총 400개 기업을 유치하고 3500명의 고용이 창출되며, 7000억 원의 매출 상승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 기대에 못 미친 규제특구


하지만 전문가와 업계에서는 기대에 못 미친다는 반응이 나온다. 사업 대상 등에 여러 조건이 붙다 보니 민간에서 느끼는 규제 개선의 체감도가 반감된다는 지적이다. 원격의료가 허용된 강원도가 대표적이다.

규제자유특구 지정으로 강원 격오지의 고혈압과 당뇨 환자 중 재진 환자를 대상으로 의사가 원격 모니터링과 상담과 교육을 할 수 있다. 간호사가 환자 집에 있을 때에는 원격 진단과 처방까지 가능하다. 원격 모니터링만 가능했던 기존 보건복지부의 시범사업보다 허용 범위가 넓어진 것이다.

하지만 원격의료의 핵심인 진단과 처방은 간호사가 환자의 집을 방문했을 때에만 가능하다. 일본은 2015년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를 전면 허용한 데 이어 지난달 로봇을 활용한 원격수술까지 허용했다. 반면 한국은 20년 가까이 시범사업 수준에 머물고 있는 상황이다.

동네의원(1차 의료기관)만 원격의료 사업에 참여하도록 제한된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당초 강원도는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한림대병원, 강원대병원 등 3곳과 함께 원격의료 사업을 할 계획이었지만 규제자유특구위원회가 참가 의료기관을 동네의원으로 한정했다.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쏠릴 것이라는 우려에 또다시 발목이 잡힌 것이다. 강원도는 앞으로 사업에 참가할 동네의원을 수소문해야 하는 상황이다. 윤영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사업 지역과 대상을 격오지와 만성질환자로 제한한 것은 아쉽다”며 “대형병원과 동네의원의 원격 협진을 활성화해 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과거 정부가 해오던 규제 개선 방식을 답습한 데 불과하다. 큰 틀의 규제개혁이 아니라 일부 지역에서 기업에 편의를 제공한 수준”이라며 “이미 기업가 정신이 무너지고 투자와 고용이 위축된 상황에서 이 정도 조치로 반전을 일으키기엔 미흡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 안에 규제자유특구 2차 지정을 한다.

김호경 kimhk@donga.com·박성민·조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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