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로 건너간 북아일랜드의 클라렛 저그

고봉준 기자

입력 2019-07-23 05:30 수정 2019-07-23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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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인 로리(아일랜드)가 22일(한국시간) 영국 북아일랜드 로열 포트러시 골프클럽에서 열린 제148회 디 오픈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에 입맞춤하고 있다. 북아일랜드 출신 캐디와 호흡을 이뤄 이뤄낸 우승이라 의미가 남달랐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전설적인 록밴드 U2는 1983년 ‘선데이 블러디 선데이(Sunday Bloody Sunday)’라는 곡을 발표한다. 이 노래가 담고 있는 아픔은 1972년 1월 30일 북아일랜드 데리에서 발생한 ‘피의 일요일’ 사건이다. 비폭력 시위를 전개하던 군중에게 무차별적으로 발포된 영국 공수부대의 총탄으로 청소년들을 포함해 10명이 넘는 무고한 생명이 희생된 참변. 이는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놓고 찬성과 반대로 갈라진 아일랜드섬의 오랜 분쟁을 그대로 드러내는 비극이었다. 아일랜드인들로 결성된 U2는 “과연 승자는 누구인가”라고 외치며 분쟁의 역사를 꼬집는다.

그로부터 약 반세기가 지난 2019년 7월 22일. 당시 아픔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북아일랜드에서 기념비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북아일랜드와 분단된 아일랜드 출신의 셰인 로리(32)가 영국이 자랑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골프 대회에서 정상을 밟은 것이다.

로리는 북아일랜드 로열 포트러시 골프클럽(파71·7344야드)에서 열린 제148회 디 오픈(총상금 1075만 달러·약 126억7000만 원) 최종라운드에서 합계 15언더파 269타를 기록하고 대회 상징인 ‘클라렛 저그’를 안았다.


1951년 이후 68년 만에 자신들 품으로 돌아온 디 오픈을 맞아 북아일랜드인들은 자국 출신 선수들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기를 기원했다. 특히 ‘차세대 황제’로 불리는 로리 매킬로이(30)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역사의 아이러니처럼 디 오픈의 영광은 또 다른 ‘로리’에게 돌아갔다.

로리는 매킬로이가 일찌감치 컷 탈락한 상황에서 2라운드부터 사흘 내리 선두를 달리면서 싱거운 레이스를 펼쳤다. 4타차 단독선두로 출발한 최종라운드에선 버디 4개와 보기 5개를 기록하며 다소 기복을 보였지만, 추격자들이 힘을 쓰지 못하면서 여유 있게 생애 첫 메이저 왕관을 품었다.

이날 경기를 생중계로 지켜보던 아일랜드인들의 뜨거운 응원을 받으면서 우승상금 193만5000달러(22억3000만 원)를 안은 로리는 “오늘 아침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내가 지금 여기 서있다는 사실 자체를 믿기 어렵다”며 감격을 표했다.

아일랜드와 영국이 견원지간인 점과 달리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사이에는 적대감이 다소 덜하다. 영토는 분단돼 있지만, 서로 왕래가 가능하고 뿌리가 같다는 인식이 짙은 덕분이다. 북아일랜드 출신 캐디인 브라이언 마틴과 함께 영광을 누린 로리는 “골프 안에서 우리는 한 나라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편 이번 디 오픈에서 박상현(36)은 2언더파 282타 공동 16위를 차지해 8명의 한국 선수들 가운데 가장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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