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노, 남관표 대사 말 끊고 “한국 무례”… 정부 “무례한 건 일본”

도쿄=김범석 특파원 , 박형준 특파원

입력 2019-07-20 03:00 수정 2019-07-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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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적 비난공세 ‘외교 결례’
중재위 무응답에 南대사 초치
南대사 “함께 지혜 모으자” 발언 도중 고노 언성 높이며 한국비난 쏟아내
외무성 직원들 황급히 취재진 내보내… 결례에 대한 사과도 끝내 없어


“잠깐 기다려 주세요(ちょっと待って下さい·조토맛테쿠다사이).”

19일 오전 10시 20분경 일본 도쿄 외무성 4층 접견실. 모두발언을 하는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의 말이 일본어로 통역되는 중에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상이 돌연 말을 끊었다. 고노 외상은 결례를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이어갔다. 16일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경제산업상이 문재인 대통령을 직접 겨냥해 비판한 것, 12일 경제산업성에서 한일 실무회의가 열렸을 때 일본이 의자와 테이블을 쌓아둔 허름한 공간을 장소로 제공한 것 등에 이어 일본의 외교 결례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 도 넘은 결례

19일 외무성은 일본이 제안한 중재위원회 개최 기한(18일)까지 한국이 응하지 않자 남 대사를 초치했다. 지난해 10월 30일 일본 기업에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내린 한국 법원의 판결 후 벌써 다섯 번째 초치다. 고노 외상은 이날 오전 10시 10분에 도착한 남 대사를 약 5분간 기다리게 했다.

모두발언은 이날 오전 10시 15분경 시작됐다. 고노 외상이 먼저 발언하고 남 대사가 나섰다. 남 대사가 “일본에 한국 구상을 제시했고 이를 토대로 더 나은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함께 지혜를 모으자”고 하자 고노 외상은 말을 끊었다. 그는 “모르는 척하고 (다시) 제안하는 것은 지극히 무례하다”고 주장했다. 외상의 언성이 높아지자 외무성 실무진이 진행 요원을 향해 손가락으로 ‘X’자를 표시했다. 취재진을 내보내란 뜻이다. 요원들은 “나가 달라”며 취재진을 밀었다. 분위기가 어수선해졌고 고노 외상은 “이 이상은 취재진이 나간 후 진행하겠다”며 비공개 선언을 했다. 남 대사는 모두발언을 마치지 못했다.

둘은 10시 30분부터 약 10분간 비공개 회담을 진행했다. 남 대사가 외무성을 떠난 후 고노 외상은 10시 50분경 1층에서 취재진에게 “한국 제안은 문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고 이미 말했다. 한국 측이 이를 공식 석상에서 또 이야기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냐”고 주장했다. 상대국 대사의 발언 도중 말을 끊은 것, 상대방 면전에서 무례란 단어를 쓴 것에 대한 사과와 철회는 없었다.

고노 외상의 결례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30일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 직후 이수훈 전 주일 한국대사가 초치됐다. 그는 이 전 대사와 악수도 하지 않은 채 모두발언을 시작했다. 그의 발언이 끝나자 역시 외무성 실무진이 취재진을 밖으로 내보냈다. 이 전 대사도 모두발언을 하지 못했다.


○ 국장급 합의도 거부

겉으로 드러난 결례 이상으로 일본의 ‘내로남불’식 논리도 비판받고 있다. 고노 외상은 남 대사에게 “강제징용을 다른 문제와 연계시키지 말라”고 주장했다. 정작 수출 규제와 징용을 먼저 연계한 쪽은 일본이다. 경제산업성은 1일 수출 규제 강화 때 △징용 문제에 대한 적절한 해법 미제시 △한국과의 신뢰 관계 손상 △수출 관리에 대한 부적절한 사안 발생 등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19일 기자들이 이 점을 지적하자 고노 외상은 “(수출 규제는 한일) 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징용) 판결과 관계가 없다”는 기존 주장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경제산업성이 왜 징용을 언급했느냐’고 하자 “경제산업성에 물어보라”며 피했다.

이와마쓰 준(巖松潤) 경제산업성 무역관리과장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에서 한국이 제안한 국장급 협의를 사실상 거부했다. 이날 아사히신문은 한 경제산업성 간부가 “문재인 정부가 계속되는 한 수출 규제를 이어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고 전했다. 한일 갈등이 예상보다 훨씬 장기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도쿄=김범석 bsism@donga.com·박형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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