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관, 생태·환경에 주목하다

김민 기자

입력 2019-07-19 03:00 수정 2019-07-1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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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나 ‘멸종위기동물’ 그룹전, 백남준아트센터 ‘생태감각’전 등
생태 주제 전시 최근 잇달아… 다큐영상-텍스트가 갖는 한계
예술만의 감각적 이미지로 전달


백남준아트센터 ‘생태감각’전에서 선보인 백남준의 ‘사과나무’(왼쪽 사진). 미디어를 새로운 환경이라고 본 백남준의 시각과 생태학이 긴밀하게 연결된 작품이다. 오른쪽 사진은 아트선재센터 ‘색맹의 섬’에서 화제가 된 임동식의 작품 ‘자연예술가와 화가―가을’. 백남준아트센터·아트선재센터 제공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생태·환경 이슈가 국내 미술관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했다. 최근 경기 용인시의 백남준아트센터에서는 기획전 ‘생태감각’이, 18일에는 서울 은평구 사비나미술관에서 ‘우리 모두는 서로의 운명이다―멸종위기동물, 예술로 HUG’(이하 ‘멸종위기동물’)가 개막했다. 이미 진행 중이거나 폐막한 전시까지 합하면 4곳 이상의 미술관에서 생태에 관한 전시가 열렸다.


○ 자원 아닌 생명으로서의 생태계

러스 로넷의 드로잉 ‘흰 코뿔소’. 사비나미술관 제공
사비나미술관의 ‘멸종위기동물’은 직설적이고 대중적인 캠페인의 성격으로 출발했다. 미국 중심으로 활동하는 화가 러스 로넷의 멸종위기동물 드로잉을 본 기획자가 취지에 공감해 그룹전을 열게 됐다. 이꼬까 큐레이터는 “학술적 성격보다 대중을 겨냥해, 여러 생태 이슈 중에서 멸종위기동물을 구체적인 주제로 잡았다. 사람들이 일상에서 환경보호를 실천하는 모습을 30초 영상으로 찍어서 보낸 것을 전시하는 ‘30초 허그 프로젝트’를 통해 환경보호 실천 방식에 관한 여러 사람의 참여를 이끌어내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아트선재센터에서 이달 7일까지 열린 ‘색맹의 섬’은 생태와 환경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보려 했다. 김해주 아트선재센터 부관장은 “수년 전부터 생태학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면서 환경문제, 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넘어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려면 어떤 방식이 가능한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시된 작품들은 동물이나 숲의 권리, 자연의 의미에 대한 탐구가 주를 이뤘다. 1980, 90년대 ‘야투’ 등 자연미술을 해온 임동식 작가와 우평남 작가의 작업이 호평을 받았다.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생태감각’의 출발점은 역시 백남준이다. 백남준의 미디어아트와 생태학은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플럭서스(1960, 70년대에 일어난 국제적인 전위예술 운동) 작가 등 진보적 예술가와 교류했던 그가 생태학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구정화 큐레이터는 “백남준이 말년에 남긴 글이 생태학을 언급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며, 그가 ‘전파’를 공공재로 인식한 것처럼 자연 역시 상업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생태학은 다른 학문의 분과가 아니라 그 자체로 세계관이 되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백남준의 ‘TV정원’과 ‘사과나무’, ‘다윈’으로 문을 연다. 그리고 자연을 활용 자원이나 착취의 대상으로 봤던 관점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보여준다. 박선민의 ‘버섯의 건축’에서는 버섯이, 조은지의 ‘문어적 황홀경’에서는 문어가 사람보다 더 크다. 동물도 인간과 같은 주체로 인식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 ‘감각’ 통해 더 많은 의미 전달

현대 미술이 사회적·정치적 이슈를 다루는 것이 국제 미술계에서는 익숙한 일이다. 지난해 열린 타이베이 비엔날레가 ‘생태계로서 미술관’을 다룬 것은 물론이고 ‘20세기 다빈치’로 불리는 현대미술의 거장 요제프 보이스도 1970년대 나무를 심는 퍼포먼스 ‘7000그루의 오크나무’를 선보였다. 그러나 여전히 미술을 장식이나 예쁜 볼거리로 보는 관점도 많고, 이런 시선에서 미술관이 생태 이슈를 다루는 것은 생소할 수 있다. 미술관이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이유를 기획자들에게 물어봤다.

기획자들은 예술만이 갖는 ‘감각’을 통해 사회의 이슈에 다른 시각을 제시하는 것이 미술관의 오랜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구정화 큐레이터는 “백남준도 사적재산이 아닌 공공재로서 예술의 전망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성이나 텍스트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감각’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공공미술관의 당연한 역할이며 한국은 다소 늦은 감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해주 아트선재센터 부관장은 “예술적 형식만이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가령 에콰도르의 숲이 하나의 주체로 법적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다큐멘터리나 기사를 통해 보여줄 수도 있지만, 이를 이미지로 표현하면 더 많은 의미를 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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